찰리 맥커시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
책 두께에 비해 여백이 많아 맘만 먹으면 순식간에 읽어낼 수 있어 좋았다. 좋은 느낌을 받았지만 너무 빨리 끝나서 감정 탑을 쌓을 겨를이 없다는 아쉬운 생각도 들었다. 그러다 송년 모임에 이 책 읽고 만나자 해서 책장에서 꺼내 들었고 다시 읽으니 그 아쉽던 마음이 채워지는 기분이 들어 참 행복했다. 책 속에는 많은 밑줄들이 있었다.
-거친 들판은 삶과 닮았습니다. 때로는 두렵지만 아름답다는 점에서
-우리가 어떤 일에 어떻게 대처하는가,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가진 가장 큰 자유다.
두더지가 덫에 걸린 여우를 구하면서 한 말이다. 죽음을 각오하고 여우를 구해준 두더지의 내공이 얼마나 대단한지 보여주는 말이다. 이 말은 생각할수록 멋지고 숙연해진다. 그동안 나도 이런 결단을 내린 적이 있었던가? 착한 척 갈등했지만 어쩔 수 없다며 대부분 외면했다. 이런 행위가 결국 세상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착한 사람이라 인정받고 싶은데 손해는 보고 싶지 않다는 이율배반. 그러면서 계속 자기 합리화를 했다. 차라리 욕을 먹을 각오가 나을 때도 분명히 있다.
-남들이 친절하게 대해 주기만을 기다리지 말고 자신에게 친절 하라.
-사람들은 그저 집을 향해 걷기만 하느라 여념이 없어.
-네가 했던 가장 용감했던 말은 도와줘!
-정말 강하다고 느낀 때는 약점을 대담하게 보여줄 수 있었을 때야.
-때로는 그저 일어서서 계속 나아가기만 해도 용기 있고 대단한 일 같아
-컵이 반이 빈 거니, 찬 거니? 컵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좋은데
-살면서 얻은 멋진 깨달음은 지금의 나로 충분하다는 것
-우리가 얼마나 많이 왔는지 뒤돌아봐.
책 속 가장 맘에 드는 인물은 두더지로 그의 치트키(game over)는 케이크다. 나에게도 케이크 같은 치트키가 있나 생각해 봤다. 책이라고 말하자니 심심하고 밥이라고 말하려니 미련해 보인다. 커피라고 해두자.(고백하자면 커피 맛도 잘 모른다. 각성 효과로 먹고 향 좋은 분위기를 좋아할 뿐이다.)
케이크를 탐닉하는 두더지치곤 말마다 현답이다. 시간을 낭비하는 가장 쓸데없는 일이 뭐라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일이라고 대답한다. 지금은 그러지 않지만 나도 타인을 부러워하며 부질없는 한숨을 쉰 적도 많았다. 이제는 마음에 근육이 생긴 건지 무뎌진 건지 그런 맘이 든 적이 없다. 다행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소년과 두더지, 상처 많은 여우와 묵묵하고 듬직한 말이 보여주는 세상은 거칠지만 아름다웠다. 이 책은 우정에 관한 책이라고 작가님은 말하며 고마운 사람들 이름을 불렀다. 나에게도 고마운 분들이 너무도 많다. 오늘의 나로 살아오기까지 많은 분들의 도움과 애정이 있었다.
짧은 글이지만 내 삶을 돌아보게 했다는 점에서 이 책을 나는 삶에 대한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삶의 구석구석 막다른 골목길에서 탄식하고 좌절하고 있을 때 이 책 속 문장들은 살아낼 용기와 위로를 줄 것이다. 컵이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고 지금의 나로 충분하니 나를 믿고 그저 일어서서 계속 나아가기를! 책은 응원한다.
찰리 맥커시 작가님 인스타그램이 있어 들어가 봤다. 열심히 글을 올리고 계셨고 따르는 사람들이 아주 많았다. 며칠 전 올린 피드는 “네가 어디에 있든 괜찮고 좋은 크리스마스 보내길 바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