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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 영욱 Sep 20. 2023

물집의 성분

(2021년 시산맥 신인문학상 당선작)


기분 따라 다른 꽃들이 피어나는 꽃밭,

그곳은 무섭게 고요했다


고요는 물끄러미의 동사, 

곧 축축해지는 건조체였다 


엄마는 활짝 핀 꽃을 옮겨

현실을 허구로 바꾸려 했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날마다 내 귀에 꽂은 것은 

바람,


곧 시들해지는 아이와는

어울리지 않는 조화였다 


그래도 그곳은 꽃의 무덤,

눈물을 부어주면 

신기루처럼 젖었다 


다리 밑에서 주워온 아이는 

부끄럼이 많고

부끄러움은 구멍 난 빤스 같았다


아침마다 방문을 열어보는 엄마도 

가랑이 사이에 낀 빤스 같아

구멍 많은 오아시스에 

엄마를 꽂았다 


너, 그렇게 살면 세상이 좁아져,

꽃들이 농담을 했다 


피부가 차갑고 투명한 농담,

썰렁한 사후경직이 일어났다 


진짜 같은 조화를 

물끄러미 들여다봤다 

엄마는 죽어서도 엄마 같았다


다래끼를 터뜨렸을 뿐인데 

구멍마다 엄마가 새어나왔다 


몽정처럼 부드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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