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직지신인문학상 당선작)
옆방에서 건너온 남자가 서성거린다,
입에는 치약을 묻힌 채
한 손엔 칫솔을 든 채
자기 방이 어디냐고 묻는 질문에
거울을 닦던 고무장갑을 벗어두고
옆방으로 도로 데려다준다
고작 벽 하나를 건너 온 여덟 걸음쯤에서
자신의 이름표가 매달린 침대 앞에서
자기 방으로 데려다 달라며
발을 동동거리는 남자
그래, 삶의 온갖 난간을 넘어왔을 순례자에게
지금 이 방은 허방일 터,
내게도 낮잠에서 깨어나면
낯선 방에 홀로 남겨진 오후가 있고
어스름이 침착하게 내려앉던 네 시는
버려진 지난 세기의 우주정거장처럼 쓸쓸했으니
참 멀리까지 왔구나 싶다가도
내게 허락된 방문이고
내 머물 곳인가 싶다가도
잠시 머물 뿐인 하루
서글픈 날에는 입김을 호호 불어가며
거울을 닦는다,
지금 내가 있는 방은 어느 방일까
닦아도 닦아도
제 소가지도 몰라보는
요양원 삼층 화장실에서
고된 몸을 슬며시 떠나갔다
돌아오는 넋을 마중하는
거울의 문턱에서
남자가 종종걸음으로 서성인다,
실습생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어느 문을 통과한 그가
남은 순례의 길을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