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수업 중 산만하거나 예의 없는 행동을 보일 때면, 문득 그 부모는 어떤 훈육을 하고 있을지 궁금해집니다.
기억 속에 남아 있는 한 아이와 엄마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아이와 2년 가까이 수업을 함께했으며, 마지막에는 학부모 코칭을 맡게 되면서 다시금 깊이 연결될 기회를 가졌기 때문일거에요.
처음 그 아이를 만났을 때의 인상은 솔직히 쉽지 않았습니다. 정확한 진단은 알 수 없지만, 산만하고 버릇없어 보였으며, 제 말에 경청하려 들지 않았거든요. 예의 없는 말투는 기본이었고, 활동도 성의 없이 대충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안타깝게도 그런 아이가 반에서 주도권을 잡는 편이었고, 다른 아이들은 그의 활발함에 묘하게 이끌리며 수업 후에도 교류가 있는 듯 보였습니다. 부모들 간의 관계도 친밀했어요. 그래서였을까. 아이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시험하듯 끊임없이 간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저 또한 쉽게 물러서지 않았죠. 수업을 시작할 때마다 반드시 허용과 금지의 경계를 분명히 약속했고, 그것이 지켜지지 않을 경우 다른 아이들에게 피해가 갈 수 있으며, 부모에게도 알려질 것임을 명확히 했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잘 지켜지지 않았어요. 그 아이는 부모에게 말해볼테면 말해보라는 식이었거든요.
그런 이유로 저는 아이들이 수업 속에서 더 집중할 수 있는 방법을 꾸준히 연구하는 데 몰두했고, 다양한 시도를 이어가던 중, 마침내 그 아이까지 몰입하게 만드는 순간이 찾아왔습니다. 저는 속으로 걸려들었다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어요. 진로와 연계된 책을 읽은 날, 아이들에게 ‘어떤 직업을 갖고 싶은지’가 아니라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를 가치 단어로 찾아보게 했습니다. 그리고나서 그 모습이 된 자신을 상상하며 그림으로 표현하게 했는데, 그 아이가 꽤 귀여운 그림을 그려내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은 그림을 보는 것도 좋아하고, 그리는 것도 좋아한답니다. 저는 놓치지 않고 폭풍 같은 칭찬을 쏟아냈어요. 늘 비웃듯 비소를 짓던 아이가, 그날만큼은 천진한 미소를 지어보였습니다. 저는 그제야 비로소, 그 아이에 대한 긴장을 내려놓을 수 있었어요. 이후로는 아이의 적극적인 참여가 반 분위기를 이끌었고, 다른 아이들까지 집중력을 높이는 변화가 뒤따랐습니다.
어느 날에는 수업 중 아이가 제게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기 시작했어요. 친구들이 자신에 대해 뒷말을 했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함께 놀자던 친구가 갑자기 거절을 하기도 하고, 일종의 돌림을 경험한 듯 보였습니다. 아이의 말을 들으며 상황의 이해와 함께, 한편으로 그 안에 담긴 외로움과 상처를 느낄 수 있었어요.
그러다 아이들의 부모 대상으로 코칭을 진행하게 되었을 때였어요. 그 아이의 어머니가 제일 먼저 신청을 하셨더라고요. 어머니는 아이 이야기를 들려주다가 결국엔 눈물을 흘렸어요. 외동이어서 그런지 외로움을 많이 타는 아이라 친구에게 의존하다 실망하는 경우가 잦다는 것이었어요. 듣다 보니, 어머니는 아이 한 명의 양육 자체만으로도 지쳐 있었어요. 본인의 어린시절 부모님에게 너무 호되게 훈육을 받았다고 생각하여, 아이에게 직접 훈육하기를 회피하는 듯 했습니다. 그 때마다 아이의 아버지가 그 역할을 맡았고, 어머니는 아이에게 눌려 제대로 따끔하게는 말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더 적극적으로 훈육을 하다 보니 그 강도가 좀 강했던 것 같습니다. 아이가 저에게도 자기가 잘못하면 “아빠가 가끔 무섭게 변한다”고 털어놓았지만, 그만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에 저는 그것을 충분히 ‘훈육을 들을 만한 상황’이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결국, 제대로 훈육한 아버지는 아이에게 좋다가도 무서운 사람이 되어 버렸고, 제대로 훈육할 수 없었던 아이 어머니는 자신이 먼저 경직될 수밖에 없었던거죠.
아이의 산만함과 버릇없음 뒤에는 사실, 부모의 긴장과 불안으로 인한 경직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었습니다. 아이는 그 틀 안에서 버티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존재감을 드러내려 했던 것이었죠.
남들은 둘셋씩 키우는데, 자신은 아이 하나만으로도 힘들다며 눈물을 쏟아내는 아이 어머니의 등에 원을 그리며 따뜻해질 때까지 어루만져 주었습니다. 나 역시 똑같은 엄마이지만, 코치로써 그날만큼은 마치 오은영 박사가 된 듯, 가만히 보듬어 보았습니다. 그러자, 어머니는 여태껏 아이 일로 누구에게도 고민을 털어놓은 적이 없고, 늘 괜찮은 척만 해왔다며 진심으로 고맙다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아이 앞에서는 눈물 자국을 보이고 싶지 않다며, 앞문이 아닌 뒷문으로 돌아 나가겠다고 했어요. 경직된 마음이 조금은 풀렸던 지 부드러워진 아이 어머니의 뒷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그날 이후, 수업을 귀찮아하던 그 아이는 휴강일을 제외하고 한 번도 수업을 빠진 적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한 해의 마지막 수업 날, 아이들은 그날이 끝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유독 그 아이만 다가와 물었어요.
“선생님, 우리 내년에도 만날 수 있는 거죠?”
저는 그 아이를 통해 깨달았습니다. 수업 중 문제 행동처럼 보이는 것 뒤에는 언제나 이유가 있었고, 그 이유는 아이가 잘못할까봐, 실패할까봐 불안한 부모의 경직된 마음과도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한편으로, 그 아이 덕분에 저는 수업 속에서 문제 행동을 보이는 아이들을 조금씩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을 배워 나갔습니다.
아이는 부모에게서 허용과 금지의 경계가 분명히 제시될 때 신뢰와 안전함을 느낍니다. 그리고 사랑으로 연결될 때 비로소 집중하며 웃음을 되찾습니다.
결국 아이를 변화시키는 길은 어른이 먼저 굳어진 마음을 내려놓는 데 있었던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