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 앞에서 내가 지키고 싶은 태도
강의를 다니다 보면, 학교마다 분위기가 참 다르다는 걸 느낍니다.
그 차이를 저는 ‘교문 앞 첫 얼굴’에서 가장 먼저 발견합니다.
밝게 인사해주는 보안관님이 있는 학교는
교실 안 기운도 이상하게 밝고 따뜻합니다.
반대로 처음부터 퉁명스러운 말투로
“어디서 왔어요?”, “명찰은요?”, “차 끌고 오면 안 됩니다.”
이렇게 막아세우는 분이 계신 곳은
문을 들어서는 순간부터 마음이 움츠러들곤 합니다.
출강하던 학교 중 한 곳은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일주일에 두 번 가야 했던 곳인데, 어느 날부터 보안관 두 분이 새로 오셨죠.
첫 방문에서 분명 신분을 밝혔고,
이틀 뒤 두 번째 방문이었는데,
제 앞차는 그냥 통과시키고
저에게는 창문을 내리라며 언성을 높이더군요.
“누구세요? 어디로 가세요?”
인적 사항 적을까요? 하고 여쭤도
“됐어요!” 하고 소리를 치고…
그 뒤로도 두 달 가까이,
매번 비슷한 상황이 반복됐습니다.
물론 업무 특성상 이해합니다.
많은 사람이 드나드는 곳이니까요.
하지만 마음 한편에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조금만 친절하게 물어봐 줄 수도 있지 않았을까?
내가 강사라서 이런 대우를 받는 걸까?
속상함이 쉽게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그 학교에 들어갈 때마다
원래의 밝은 미소조차 억지로 만들어야 했죠.
반면 어떤 학교는
한 번만 방문한 뒤에도
똑같은 절차를 차분하고 친절하게 안내해주셨습니다.
그 작은 태도 하나가
그날의 수업 컨디션까지 바꾸곤 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습니다.
어떤 조직이든 사람과 사람이 얽혀 있고,
그 안에서 우리는 누구나 자기 본질을 드러내기 마련이라는 것.
나만 상처받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마주하는 다른 사람들도 각자의 자리에서 버티는 중일지도 모른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그런 감정 때문에 내가 내 일을 포기할 이유는 없다는 것.
수업의 진짜 고객은 학생들입니다.
나는 그 아이들을 만나러 가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어떤 한 사람의 태도 때문에
내 마음과 일을 흔들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두 달 동안,
마음속으로 깊게 숨을 들이쉬며 교문을 통과했습니다.
기분에 지지 않겠다고,
누군가의 태도에 휘둘리지 않겠다고 스스로에게 말하면서요.
그리고 얼마 뒤, 그 학교의 만족도 조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100%.
나는 그제야 다시 활짝 웃으며
그 학교 정문을 들어설 수 있었습니다.
혹시 또 같은 일이 생겨도
예전보다 훨씬 더 유연하게 웃으며 대처할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책무에 경직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한 발짝만 물러나 바라보면, 그렇게까지 화낼 일도 아닙니다.
티끌 같은 오해가 쌓여 괜히 마음을 흔드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조금 더 마음에 여유 있는 사람이 결국엔 상황을 이기는 날이 옵니다.
아이들 세계도 똑같습니다.
감정이 요동치는 아이는 게임 활동에서 꼭 져요.
그리고는 친구 탓을 하며 엉엉 울죠.
반면 차분하고 여유로운 아이는
집중도 잘 되고, 결과도 좋아요.
우리도 그래요.
삶에서 마주하는 작은 불의와 퉁명스러움 앞에서,
기분에 지지 않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오늘도 저는 스스로에게 말합니다.
“기분에 지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