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 시간에 아이들과 궁궐을 지키는 수호신 이야기를 나누며
권선징악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착한 사람은 복을 받고, 나쁜 사람은 벌을 받는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런데 아이들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세상이 꼭 그렇게만 흘러가지는 않는다는 사실을요.
“착한 사람은 왜 자꾸 당하기만 해요?”
“그럼 착한 사람도 방패가 있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아이들의 질문은 늘 정직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착한 사람도 방패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요즘 세상에서
눈에 띄게 내 편이 되어주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를 대신 지켜주는 ‘수호신’ 같은 존재를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상상해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수호신이 있다 해도
나쁜 일은 늘 예고 없이 찾아옵니다.
빌런은 어느 조직에나, 어느 동네에나 존재합니다.
동네에서 봉사활동처럼 진행하는 수업이 하나 있습니다.
다른 지역 아이들에게는 많은 에너지를 쏟으면서도,
정작 제가 사는 동네 아이들,
그리고 우리 아이에게는
시간을 충분히 쓰지 못하는 것 같아
한 타임이라도 짬을 내어 이어오던 수업입니다.
이번에 다시 들어가게 된 곳은 몇년 전에 수업을 했던 곳이었는데,
담당자가 바뀌어 있었습니다.
보통은 사업총괄 운영자인 주무관과만 소통하면 되고,
현장 담당자와는 수업 시작 전 인사 정도만 나누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수업이 아직 한두 달이나 남은 시점에 장문의 메일이 도착했습니다.
제가 신규 강사인 줄 알았는지 제 입장에선 불편한 말투로
이건 이렇게, 저건 저렇게 해달라는 요구가 이어졌고,
강의가 모두 끝난 뒤 제출하는 확인서까지
벌써부터 첨부되어 있었습니다.
순간 마음속에서 무언가가 끓어올랐지만,
감정은 잠시 눌러두고 마음을 얼음장처럼 차갑게 만들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먼저 담당부서에 전화를 드려 관련 절차를 다시 확인했습니다.
그쪽에서도 신청 내용과 다르다는 점을 알고 계셨고,
불편한 점이 있으면 이야기하라는 말도 들었습니다.
그제야 다시 전화를 걸었습니다.
몇년 전 이곳에서 수업을 했던 강사라는 점,
담당자가 바뀐 것 같다는 점,
저의 경력과 동네 주민이라는 사실,
그리고 우리 아이도 이 수업에 참여할 예정이라는 점까지.
숨 돌릴 틈 없이 차분하게 말씀드렸고,
“수업이 있어서 이만 끊겠습니다”라는 말로 전화를 마쳤습니다.
전화를 끊을 즈음, 상대방의 태도가 조금은 달라진 것이 느껴졌습니다.
아마 그분은 자기 일에 철두철미한 분이었을 것입니다.
본인 입장에서는 맡은 일을 성실하게 해내고 있다고 생각하셨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아직 두 달이나 남은 시점에 그렇게 공을 들여 긴긴 메일을 보내셨을 것입니다.
다만, 일을 잘하려는 마음이
언제나 존중으로 전달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그날 다시 한 번 실감했습니다.
저는 그동안 강의기관의 담당자 앞에서 늘 저를 먼저 낮추는 쪽이었습니다.
강사라는 이유로 거만해지지 말자.
초심을 잃지 말자.
그것이 제가 지켜오던 신념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그 신념이 오히려 저를 힘들게 한다는 생각이 자주 듭니다.
조용히 있으면 만만해지고, 겸손하면 당연하게 여겨지는 순간들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 신념이 강한 사람은 선을 넘지 않으려 애씁니다.
상대가 불편해질까 봐,
관계가 어그러질까 봐,
늘 한 발 먼저 물러섭니다.
하지만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
착한 사람에게도 방패가 필요하다는 것을.
겸손과 당당함은 같은 말이 아니라는 것을.
나를 지키기 위해 조금은 단단해져야 하는 시기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을요.
수호신은
어쩌면 밖에 있는 존재가 아니라, 이제는 제가 제 편이 되어주는 순간
비로소 생겨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