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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겨줄 줄 아는 개똥철학

엉뚱한 아이가 신나게 사는 별 - 9

by 바람비행기 윤기경

"여기 콩 벌레가 있다."

"와! 지렁이다."

아이들의 들뜬 목소리가 좁은 골목길을 흔들어 놓았죠. 아무렇게나 흩어진 흙더미 속에는 어떤 움직임도 포착되지 않았어요.


어디에 지렁이가 있다는 건지.

다행스럽게 시멘트 바닥에 나동그라진 지렁이 한 마리가 눈에 띄었어요.

다만, 그는 미동도 없었는걸요.


준용이가 작은 작대기 하나로 툭툭 건드려 보았지만 아무 대응도 안 했던 거예요.

이미 죽었다는 진단을 서둘러 내린 준용이가 울 것만 같았어요.

아이들은 자그마한 일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거든요. 아이들은 지렁이의 주검을 작대기로 들어 보았어요.

혓바닥처럼 불그스름한 몸이 축 늘어져 있었어요.

"삼존이 그랬어. 지렁이는 사람들에게 유익한 친구라고."

준용이 말에 아이들이 신기한 듯 축 늘어진 지렁이 몸을 툭툭 건드렸어요:

적당한 곳에 놔주면 도로 살아날 수도 있다고 말했어요.


그러나, 주변에는 땅이 없었어요.

숲도 보이지 않았어요.

준용이는 이 작은 주검조차 놔줄 수 없는 현실에 애가 탔어요.


주검을 묻을 수 없는 커다란 콘크리트의 현실에서 준용이는 두려웠어요.

이 세상에서 흙이 사라질 수도 있잖아요.


지렁이가 없으면 우리 미래는 불행할 게 뻔했어요. 더럽혀진 땅을 일구어 건강한 흙을 만들던 용감한 투사 지렁이가 모두 사라지기 전에 산을 깎지 마세요."


골목길에서 콘크리트를 골라내 주세요.

" 이제야 생각해 보니, 먼 훗날 아이들이 땅을 모를 것 같았어요.

그렇지 않으려면, 요만큼 조만큼은 내가 흙을 남겨둬야 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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