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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둡잖은 지각생

추억을 요리하는 랩소디

여러분 저는 오늘도 여전히 지각이란 걸 했습니다.

교통 여건이 좋지 않다는 건 핑계일 뿐이죠.

"1시간 넘게 걸린다면서 안 가?"

서두르라고 재촉하는 아내의 말과 전 달랐죠.


저는 지각의 매력을 알고 있었거든요.

아침 연기수업은 제가 좋아서 하는 거지만 지 일찍 가는 게 손해 보는 기분이기도 합니다.


일전에 어떤 지인이 제게 그러더군요.

"이봐 자네 정치를 해보면 어떻겠어?"

사양했어요.

정치를 한다는 거 보통 사람들보다 양심 있고 의리 있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 아닌가요?


아무튼 저는 뒷줄에 서고 싶습니다.

제일 뒤에 서서 앞에 서있는 사람들이 다 먹고 실컷 장기자랑할 때까지 기다리겠습니다.

소주 한 병 오징어 다리 쳐들고 꼴찌에 앉아 기분을 낼 작정입니다.


"오늘 안 나가?"

출근시간을 놓쳤던 일이 있었습니다.

"왜 이렇게 게을러?"

전 아내가 차려놓은 아침도 먹지 못한 채 부랴부랴 달렸습니다.


"일직이세요?"

당직서던 부하직원이 하는 말에 오늘이 일요일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아내가 미웠습니다.

근처 사는 친구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관악산을 빙 돌아 모처럼 휴식을 도왔습니다.

그리고 달린 맛있는 술파티.


귀가가 늦었습니다.

새벽 5시는 정말 늦기도 하지만, 너무 이른 시간이었죠.

"벌써 출근해?"

현관문 열리는 소리에 안방문을 빼꼼히 열던 아내가 덜 깬 눈으로 말하더군요.

전 급히 문 밖으로 나갔습니다.


월요일 새벽거리는 생각 외로 쌀쌀하더군요.

숙취가 밀려온 덕에 사우나탕으로 향했습니다.

수면실에 누웠습니다.

또 지각이 예상되는 때입니다.

"윤팀장 또 지각인가?"


중학교 때 담임선생님 목소리가 꿈속 저 멀리에서 저를 깨웠습니다.

허둥지둥 옷을 갈아입고 뜁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여유를 갖는 지각생(그림 윤기경)

비록 게으른 신세이지만, 그나마 이런 빡빡한 현실 속에서 어둡잖은 여유로 지각을 하는 저에게 갈채를 보내주지 않으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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