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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통찰 0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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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rco Oct 15. 2022

4차 산업시대 인류는 점점 가난 해진다.

역사상 가장 참혹한 암흑기가 다가오고 있다.

이 글은 '새로운 가난이 온다'에서 영감을 많이 얻었다. 저자 김만권 교수님께 다시 한번 찬사를 보낸다. 

독자 여러분은 다음의 주제에 관하여 생각해 보았거나, 관련된 기사를 읽은 적은 있으신가요?

AI는 무엇인가?, AI는 인류에게 대재앙이 될 것인가?, Ai는 정말 인류를 지배할까? 

AI는 수많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인간이 만든 인공지능 시스템이다.

이런 대규모의 데이터를 얻기 위해서는 상상보다 많은 분업과, 단순한 작업이 필요하다.

이런 작업을 데이터 라벨링이라 하며, 이 작업을 통해 데이터가 쌓이게 되는 것이다.

즉, 세상의 모든 정보를 활용해서 가장 효율적인 결과를 도출할 수 있게 도와주는 장치다. 먼저, AI의 알고리즘은 If 구문이다. 즉, 논리적 진행은 가능하나, 비 논리는 배제할 수밖에 없다. 특히, 신학(종교)은 논리적으로 접근할 수 없기 때문에, AI의 알고리즘으로는 종교를 이해하기 어려워 보인다. 

현시점 AI와 인류의 차이점은 명백하게 존재한다. 인류는 AI를 통해 무엇을 얻으려고 하는가?

인류 최대 과업인 불사의 방법을 얻어내 신에 도달하려는 것 일까? 인간과 신의 차이는 일차원적으로 접근하자면, 영속한 시간이다. 즉, 언젠가 사멸할 존재라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의 생각에는 한정된 시간적 제한점이 오히려 인류를 고뇌하게 만든 장점이 된 것 같다. 영화, 공상과학 소설 속에서 인류는 로봇에게 지배당하는 것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역사적으로, 한낱 유인원에 불과했던 인류는 누구보다 높은 지능 하나로,  세계를 지배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먹이 사슬의 최정점에서, 그보다 꼭대기를 창조하니 두려움이 생기는 것은 지극히 정상이다. 그러나, 이는 단순한 불안감일 뿐이다 걱정 말자. AI 로봇을 제작할 때는 3원칙이 존재한다.

1. 로봇은 인류에게 해를 가 할 수 없다. 

2. 방치를 하는 결과가 해를 입히는 것도 안된다.

3. 다만 위의 원칙과 위배될 시 예외를 인정한다.

AI의 본질은 편리성을 위해 인류가 만든 도구일 뿐이다. 인류 자체가 가장 무서운 적이지, 시스템 자체는 아무런 해가 없다. 전쟁과 학살 모두 인류의 끝없는 욕심에서 시작된 점을 잊지 말자. 

본격적으로, 왜 새로운 암흑기가 오는지 설명하겠다.

지난 역사로부터, 산업혁명 이후 인류는 반성의 기미가 없는 듯하다.

그 당시 영국에서 발생한 적기 조례, 러다이트 운동을  반복이라도 하듯, 다가오는 급변하는 시대에

여전히 미래를 못 보고 있다. 단편적으로, 현시대 명예과 부를 나타내던 직업들을 아직도 무 비판적으로 그 직업군을 택한다. 예를 들어, 이미 법(판사), 금융업 업계는 AI로 대처가 되어가고 있는 시점인데 말이다.

더욱이, 로봇밀도는 이미 현실이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단순 반복하는 직업군에서 미래를 보고 있다.

앞으로 이 사회는 어떻게 변화가 될 것인지를 같이 알아보자.  

기술의 발전이 자본주의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설명하겠다. 산업 혁명 또한 빈부 격차를 크게 만들었으나,

아이러니하게도, 악몽의 1,2차 세계대전이 이를 해소하게 된다. 엄청난 전쟁 비용을 부자에게서 걷었기 때문이다. 전 세계가 전쟁 후유증으로 고생하는 동안, 통제된 자본주의라고 불리는 브레튼 우드 체제는 점차 세계를 안정적으로 만들었다. 즉, 서로를 지키는 협의라 보면 되겠다.

내수 경제 위주와 자본의 이동이 제한된다라는 점에서, 자본의 투명성으로 인해 복지국가로 가는 밑거름을 만들었다. 잊지 말자. 현대의 복지라는 개념은 자연스럽게 등장한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의 많은 헌신과 노력이 있었기에 국가에서는 고용, 실업, 기근, 교육 등 많은 부분에서 국민을 보호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높은 성장률은 계속될 수는 없었고, 오일쇼크, 스태그 플레이션 등, 신흥 강국과 강대국들의 이권 문제 등으로 신자유주의가 등장하게 된다. 즉, 자유 무역이 전 세계의 장벽을 허물어 버린 것이다. 물론 장, 단점은 존재한다. 그 결과로 다국적 초 거대 기업과, 다양한 세계기구를 설립하게 되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는 복지국가는 악의 근원이라 표할 만큼, 선대가 이루어놓은 복지를 하나씩 없애기 시작했다. 특히, 정부는 평생교육을 강조하는데, 급변하는 시대에 올바른 방향은 맞지만, 깊게 파고들면 책임의 전과이다. 핵심은, 너의 잘못됨은 국가에서 책임지지 않는다고 신자유주의의 이데올로기다.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인해, 지금 세대는 포노 사피엔스라는 말이 등장했다.

그로 인해 초국적 기업,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에어 비엔 비등이 나타났으며, 한번 더 시장 경제를 격변시켰다. 부의 격차를 점점 더 크게 만들고 있다. 우버를 예로 들어, 전통적인 택시회사는

고용부터, 4대 보험, 차 수리 등의 복지를 제공했지만, 우버만 보더라도 실제로 고용은 했지만 현재는, 개인 사업자로 만들어 자차에 대한 관리, 보험 등 알아서 해라 라는 시스템을 만들었고, 당연하게 수수료만

챙긴다. 에어비엔비도 같은 이치이다. 물론 생각의 혁신은 나도 존경하는 바다.

그러나, 빈부 격차를 점점 크게 만드는 점에서 법의 제재가 필요하다.

미국의 록펠러도 독점방지로, 공중분해가 되지 않았는가?    

왜 우리는 왜 점점 가난해지고, 빈부 격차는 더 심해지는 것 일까?

이런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해선? 선대가 어렵게 만들어놓은 국가 복지는 왜 사라진 것 인가?

풍요롭게 모든 것을 받은 세대는 복지에 대한 대단함을 간과하고 당연시 생각했다.

복지가 주는 제약이 오히려 성장을 둔화시킨다 라는 터무니없는 생각을 했고, 그것이 없더라도 더 성장할 수 있다는 착각 하에 지금의 시대가 만들어졌다. 신자유주의는 국가 간 경계를 허물고, 초국적기업의 이동 또한 자유롭게 만들었다. 거대 기업으로부터 세금을 걷어야, 정부에서 복지에 관한 예산안을 만들 수 있는데,

일명 '구글세'라고 불리는 신박한 방법을 이용해서 탈세를 한다. 또한, 산업구조의 변경과 쇠퇴로 노동자의 수가 줄어드는데, 단순하게 수가 줄어드는 문제가 아니란 소리다. 정치에서 중추적 힘을 내는 노동자의 힘 또한 약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장 풍요로운 시대, 하나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는 정치에 대한 관심을 끄고 있다.

트럼프의 대선 승리와, 영국의 브랙 시트, 우파 포퓰리즘의 결과가 아니던가. 

궁극적 해결책은, 이상적인 민주주의 권력은 국민에게 있지, 소수의 정당 대표와 기업 ceo가 아니다는 점을 명확하게 해야 한다. 아직도 선거날에는 많은 젊은이들이 쉬는 날로 생각한다. 정치에 참여해서 기본적인 것들을 되찾아와야 한다. 법과 제도는 전 국민을 위한 것이지, 소수의 사람을 위해 만든 것이 아니다.

가장 원초적인 방법, 제1원칙으로 접근해보자. 즉, 과학자처럼 생각해보자. 근원까지 찾아가는 것이다. 왜 사회가 점점 힘들어졌을까? 법과 사회가 이렇게 되었다면, 법을 개정하면 되는 것이고, 가장 기본인

정치에 대한 이해와 참석이다. 다시 한번 샌더스, 코빈 영향이 있길 바란다. 본인은 기본소득제, 로봇세, 고용보험 등 모두 긍정적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란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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