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를 놓아 주는 법
Q : 어제 까지만 해도 초록초록하던 잎이었는데, 갑자기 완전히 노랗게 변하고 말라가고 있어요. 어디 아픈 건가요?
A : 가장 오래되고, 작은 잎이네요. 줄기를 보니 지금 새 잎이 나고 있어요. 새 잎이 나올 때, 새로 분갈이를 했을 때 가장 오래된 잎이 떨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예요. 보통 하엽이라고 불러요. 문제가 있을 경우와 구분하는 방법도 알려드릴 게요. 하엽은 대부분 잎이 한순간에 전체적으로 노랗게 변하고, 과습이나 해충에 의한 변화는 잎이 점점 연두색으로 색이 빠지거나, 가장자리부터 서서히 노랗게 변해요.
많은 초보들이 식물의 변화를 식물이 잘못되어서 일어난 현상으로 여긴다. 물론 그런 경우도 있지만, 계절의 변화나 수명에 의한 자연스러운 변화 또한 존재한다. 식물은 살아 있는 생명이다. 처음 만난 그대로인채로 쑥쑥 자라만 준다면 제일 좋겠지만, 성장에 따른 노화로 잎이 마르고, 색이 변하고, 휴면을 위해 줄기 자체가 다 말라버리기도 한다. 처음이라면 많이 놀라겠지만, 익숙해진 가드너는 능숙한 손길로 오래된 잎을 잘라낸다.
나는 늘 다른 가드너들에게 많은 사진을 찍어 둘 것을 권장한다. 특히 막 샀을 때, 가장 예쁠 때 많이 찍어 두어야 한다. 가드너들 사이에서는 흔히 ‘영정사진’이라고 부르는데, 지금 산 식물은 높은 확률로 지금보다 못생겨지고, 때로는 죽기 때문이다. 그러니, 모든 사진은 식물이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남기는 사진이 될 수 있다.
많이 찍어 둬라. 특히 예쁠수록 더 많이. 처음 구매했을 당시의 아름다운 원형을 잃고, 점점 못 생겨지는 식물의 모습이 낯설어지는 경험은 많은 좌절감을 안겨주겠지만, 이는 결코 잘못된 일이 아니다.
그만큼 당신이 키워낸 거다. 처음 모습에 집착해서는 현재 식물의 아름다운 모습에 집중할 수 없게 된다.
과거는 과거대로 남겨두고, 지금 자라고 있는 식물에, 지금 올라오는 새 잎에 집중해야 한다. 단순히 식물을 보는 기쁨보다, 식물의 변화에 집중하고, 키워가는 경험에 많은 기쁨을 느껴줬으면 좋겠다.
오래된 잎은 보내주고, 올라오는 새 잎에 집중하자.
아, 새 잎이 올라온다고 너무 만지작거리는 것은 금물. 연약한 새 잎은, 인간의 체온에 화상을 입을 수도 있다. 말린 잎을 억지로 펼치면 찢어지기 쉬우니 이것도 주의할 것.
현재의 자신이 싫은 것은 아니지만, 과거의 나 자신의 어느 ‘뛰어넘을 수 없는 지점’이란 분명히 존재한다. 더 기운이 넘치고, 의욕적이고, 지금은 잊어버린 어떤 감정에 눈을 빛내던 스무 살 남짓의 철없는 어린애.
그 어린애는 지금 생각해도 놀라울 정도로 열심히 삶을 가꾸어 냈다. 도전하고, 부딪히고, 열심히 표현하고, 행동하고 겁 없는 듯하면서도 신중했다.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많은 것들은 그때 그 어린애가 해내지 않았더라면 주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서른이 가까워지는 나이에, 노력해도 잘 풀리지 않는 일상에 지쳐버린 나에게는, 그게 참으로 눈부셨다. 그래서 거기에 매달렸다. 집착했다. 한 때 가지고 있던 어떠한 모습이 지금도 남아 있노라고 우겼다. 이제 와 인정하지만, 나도 많이 변했다. 더 이상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겠지.
포기하는 것은, 그 때보다 더 성숙해진 내가 어린 날의 나보다 더 잘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다. 한때 참 예쁜 잎이었지, 하고 그 때의 그 모습만 떠올리고 있다간, 노랗게 변한 잎들이 새 잎의 성장을 방해하도록 계속 방치하고 있을 뿐이다. 잘라내야 한다. 보내주어야 한다. 그만큼 현재에 집중해야 한다. 새로 나는 잎에 집중하고, 지금 자라고 있는 가지에 집중하고, 맺혀 있는 꽃망울에 집중해야 한다.
나아가야 한다. 새 잎과 새 봄을 위해.
쉬어가는 시간
가끔 오타쿠들에게 어리석은 질문 (ex : 만약 애인이 있는데 네가 좋아하는 아이돌이 널 좋아하면 어떻게 할 거야?) 을 던지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 자리를 빌어 내가 받은 질문 중에 가장 어리석은 질문에 답해 본다.
화분이랑 사람이 물에 빠지면 사람 구할 겁니다.
일부 생장점과 식물 조직이 있으면 본체를 재생해낼 수 있는 강한 생명체를 구해낼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약해빠진 인류야말로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나약한 종족이다. 자만하지 마라.
두 번째로 바보같았던 질문 :
“식물은 불에 타면 죽잖아요. 왜 그렇게 좋아해요?”
나 : 그럼 사람은 삽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