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것은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Q. 다육이가 갑자기 마디가 쭈욱 길고 못 생겨졌어요. 왜 이런 건가요?
A. 다육식물의 경우, 빛이 아주 부족할 때, 물을 잘못 주었을 때 이렇게 웃자라기 쉬워져요. 이미 웃자라버린 마디는 다시 좁혀지지 않아요. 잘라서 삽목을 해 주시거나, 그대로도 더 빛이 잘 드는 곳에서 키워주세요.
뱅갈고무나무, 로즈마리, 올리브 등 식물 상담이 들어올 때마다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하는 몇몇 식물이 있지만, 그 중 가장 곤란한 것을 꼽으라면 다육이라고 말하고 싶다.
다육이. 젤리 같은 말캉말캉한 질감을 가진 귀여운 이파리, 빛을 받으면 예쁘게 물드는 특성도 있어 전 세계적으로 오랜 사랑을 받고 있는 관상용 식물이다. 잎과 줄기에 수분을 저장하는 특성이 있어 물을 그렇게 자주 줄 필요가 없는지라 얼핏 보면 관리가 쉬운 초보자용 식물로 보이지만 ,이건 큰 착각이다.
다육식물은 가드너가 뭐 어떻게 할 틈도 없이 웃자란다. 빛이 조금 모자라서, 물을 주어야 할 시기가 아닌데 물을 줘서, 갑자기 환경이 바뀌어서 등등 원인은 다양하지만, 아무튼 눈치챈 순간에는 이미 늦어 있다. 이미 마디가 길쭉길쭉, 잎이 삐죽삐죽 자라버린 다육이는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는다.
어쩔 수 없다. 포기해야 한다. 그대로 잘라서 새 뿌리를 받아서 심거나,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어떻게 웃자람까지 사랑하겠어, 너를 사랑하는 거지.
가장 곤란할 때는, 이렇게 웃자란 다육을 가져오며 이름을 찾는 분들이다. 다육이가 웃자랐을 경우, 식물의 완전한 이름을 찾는 것은 매우 어렵다.
완전히 역변한 현재 카톡 프사를 보여주고 아 얘 같은 초등학교 나왔는데 이름이 뭐였더라? 혹시 기억나니? 하고 묻는 친구에게 대답해주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식물을 잘 모르는 사람일 수록 식물을 제어할 수 있는 존재, 혹은 정형화된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대로, 사진에서 본 모습대로 식물이 자라지 않으면 무언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일조량 부족 등의 문제가 있어서 모양이 변할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식물들은 그냥 제 멋대로 자란다. 살아있는 생명이니 성장도 하고, 노쇠도 하고, 변화도 겪는다.
식물이 조용하고 얌전하고 약한 생명체라서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큰 착각이다. 이 경이로운 생명체들은 오랜 시간 동안 이 지구의 대부분의 육지를 지배해 온 존재들이라는 것을 잊어선 안된다.
우리는 식물의 의지를 꺾을 수 없다. 나도 우리 엄마가 원하는 대로 자란 적이 없는데 요 만한 식물 하나가 내 맘대로 자라기를 바랄 순 없는 법이다.
원하는 대로 자라십시오. 못생겨도 됩니다, 죽지 말고 건강하기만 하면 나는 바랄 게 없단다.
가끔 식물이 제멋대로 자라 스트레스를 받는 가드너를 만날 때도 있다. SNS의 폐해라고 볼 수도 있는데, 인플루언서들이 키우는 식물들의 예쁜 모습은 나름대로 ‘가공’된 것임을 모르고, 식물이란 가만히 두어도 예쁘게 자라는 것이라 인식하기 때문이다. 보정일 수도 있고, 예쁘게 보이도록 묶어둔 것일 수도 있고, 그 식물이 예쁘게 자랄 수 있는 최적의 환경(외국이라던가)일 수도 있다. 물론, 식물이 예쁘게 클 수 있도록 가드닝 테크닉으로 보완할 수 있지만, 대부분이 초보에겐 쉽지 않으니 조심스레 포기를 권한다.
우리 앱 식물 상담에도 웃자라버린 식물을 가지고 울상을 지으며 찾아온 사람이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하고 위로의 말을 찾던 찰나, 다른 유저분께서 이렇게 답했다.
“속상해 보이시는 와중에 죄송하지만, 저는 그대로도 너무 예쁜 것 같아요.”
곧 그 말에 동조하는 다른 코멘트들이 날아왔다. 그제서야 깨달았다. 아, 나는 모르는 사이에 그 웃자라버린 식물들을 못나다고 생각하고 있었구나. 원래의 성장 모습과 다르기 때문에, 눈 앞에 보이는 생기롭고 건강해 보이는 식물을 있는 그대로 판단하지 못하고 있었구나. 그제야 식물이 다시 보였다. 의뢰자 분께서 정성을 다해 돌봐주셨는지 식물은 아주 건강했고, 새 잎은 잘 나고 있었다. 그렇게 말해주자 의뢰자 분도 생각이 달라진 듯, ‘그대로 잘 키워볼게요’ 하는 답이 돌아왔다.
경이로운 경험이었다. 내가 부족하다고, 못나다고 생각한 부분조차 사랑스럽게 여겨주는 사람이 있다. ‘그대로도 충분히 예쁘다’ 고 말해주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부족하게 느껴질 때, 내 어떤 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자신감이 사라져버린 것만 같을 때, 있는 그대로의 현재의 아름다움을 봐 주는 사람들이 있다. 또 다른 장점들을 찾아내 주는 사람들이 있다.
스스로가 싫어지고 부족하게 느껴질 때, 어딘가에 있을 그 목소리에 집중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인 것 같다.
오늘의 식물용어
웃자라다 : 질소나 수분과다 또는 일조량부족 등으로 식물의 줄기나 가지가 보통보다 길고 연하게 자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