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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현 Jan 10. 2024

7.선인장이 말라 죽었어요.

메마르게 두지 마세요.

Q. 선인장이 갑자기 줄기가 무르더니 검게 변하면서 쪼글쪼글 말라 죽어버렸어요. 물을 너무 자주 준 건가요?
 
 A. 물을 너무 안 주신 것 같아요. 줄기가 많이 쪼글쪼글하게 말라버렸어요. 무른 이유는, 물이 너무 없어 식물이 스스로를 유지할 수 없게 되면서 말라비틀어지는 과정 중에 그렇게 보이게 된 것 같아요. 선인장은 척박한 환경에서 잘 살아남을 수 있도록 잎과 줄기에 많은 수분을 저장하는 식물이지만, 실내 환경에서는 자연과 달리 가끔 비가 내리거나 지하수가 있는 것이 아니라, 물을 주기적으로 챙겨주지 않으면 식물은 서서히 말라 죽어가요

 




흔히들 식물 초보에게는 손이 안 가는 식물들을 추천하지만, 사실 이는 그다지 좋은 추천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식물 초보들은 자주 들여다보지 않으면 곧 식물의 존재를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2주에서 한달에 한번 물을 주는 것으로 충분한 다육이나 선인장 등의 식물은, 변화가 거의 없고 미동도 없다 보니 집안 한 켠에 놓고 잊어버리기 너무도 쉽다. 식물을 돌보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초보의 경우, 그러다가 물주기를 잊어 말려 죽이는 경우도 많고, 창문 앞에 두었다가 날씨가 추울 때 문을 열었다가 얼어 죽는 경우도 있다. 

흔히들 식물을 못 키운다며 ‘나는 선인장도 말려 죽였어’라고 하는 분들이 계신데, 아마 이래서가 아니었을까? 하고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선인장이나 다육이, 괴근식물등 식물체 내에 많은 양의 수분을 저장할 수 있는 식물들은, 물을 자주 주지 않아도 되는지라 손이 덜 가서 좋지만, 그래도 너무 마르게 두는 것은 좋지 않다. 알게 모르게 식물들이 데미지를 입고 있기 때문이다. 잎과 줄기는 점점 얇아지며 주름이 지고, 가뜩이나 그렇게 많지 않은 뿌리는 점점 쪼그라들며 말라버린다. 그렇게 ‘손이 안 가서 덜 신경 쓰이는 식물’들은 곧 ‘언제 죽었는지 모르게 죽은 식물’이 되기 마련이다. 이 경우에는 내게 데려와도 대부분 이미 늦어 있다.


극히 일부의 식물, 마리모나 스칸디아모스같은 식물들을 제외하고는, 관리를 거의 하지 않아도 되는 식물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스투키나 산세베리아도 습도를 잘 챙겨주지 않으면 줄기 끝이 마르기 일쑤고 틸란드시아 이오난사도 분무를 해 주고 가끔 간접광을 쐬게 해 주어야 하며, 어디서나 대충 잘 자랄 것 같은 이끼조차 사실은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 


어머니가 말씀하시길, 나는 손이 덜 가는 아이였다. 식성이 예민하지도 않고, 사춘기 한 때를 제외하곤 크게 까다롭게 군 적도 없다고 한다.

어렸을 때나 지금이나 무뚝뚝하고 조용한 이재현 어린이는 가만히 두니 알아서 대학도 가고, 취직도 하고, 안 본 사이에 쑥쑥 자랐다. 어른이 된 지금도 이재현 청년은 아무거나 잘 먹고, 아무 장소에서나 잘 자고. 굶기지만 않으면 적당히 잘 살아있다. 제법 곱게 자란 것치고 어쩜 이리 천덕꾸러기처럼 사는지, 신경을 못 써서 이렇게 된 건지 어머니는 조금 후회하신 것 같다. 어느 날 저녁 문득 미안하다고 말씀하시는 어머니를 보고 아니 뭐 괜찮은데, 하고 머리를 벅벅 긁으면서도 만약, 엄마가 그렇게 말하지 않았더라면 조금 상처받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보살핌이 필요하지 않은 아이는 없다. 알아서 살아갈 수 있는 생명은 없다. 조금 더 강하고, 질기고, 튼튼할지 몰라도,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다. 분명, 마음 속 어딘가가 서서히 깎여 나갔을 것이다. 어머니가 솔직하게 미안하다고 말해준 것으로, 나의 마음 속 뿌리는 봄비를 맞았다. 사실 크게 소홀함을 느낀 적도 없었다. 띠동갑 동생을 돌보느라 늘 바빴던 어머니는, 그럼에도 항상 표현과 대화를 아끼지 않았고, 잘한 것은 칭찬하고 부족한 것은 나무랐다. 자식에게도 늘 솔직했고 소탈했다. 귀찮게 하지 않는 아이라고 방치하거나, 다른 자식들에 비해 조금 덜 신경을 쓰거나, 괜히 화를 내거나 당신께서 가진 괴로움을 무작정 털어놓거나 했다면, 내 마음 속 뿌리는 알게 모르게 쪼글쪼글 쪼그라들었을 것이다. 내가 이 세상에 제대로 뿌리를 내리고, 튼튼하게 줄기를 키워 잎을 낼 수 있게 된 것은, 필요할 때 적절하게 뿌리를 적셔 주는 보살핌 덕분이다. 늘 감사한다.



감사한 사람에게 감사를 전하는 것을 아까지 않도록, 미안한 사람에게 사과를 전하는 것에 인색하지 않도록. 늘 스스로에게 경계를 세우면서도, 아직 제대로 못 하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메마르게 두어선 안 된다. 전할 수 있었지만 전하지 않은 마음들은 결국 관계를 메마르게 만든다. 한 마디라도 더 해야 한다.

고맙고, 또는 미안하다는 마음들.




오늘의 식물용어


괴근식물 : 아프리카 등에서 자생하는 식물류로, 환경에 맞게 생존하기 위해 줄기나 뿌리가 둥글게 팽창한 모습을 띄고 있다. 스테파니아 에렉타 등이 대표적이다.

마리모 : 공 모양으로 뭉쳐서 자라는 녹조류의 일종.

스칸디아모스 : 보존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천연 이끼. 다양한 색깔로 가공된 스칸디아모스가 인기다. 물을 주어선 안돼는 것이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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