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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현 Jan 17. 2024

8.페페에 이상한 것이 생겼어요

곱지 않아도 꽃이다

 

Q. 청페페 줄기가 이상하게 길쭉하게 자라요. 새 잎인줄 알았는데, 잎은 안 나고 계속 키만 키우네요. 빛이 부족한 걸까요?
 

A. 그건 줄기가 아니라 청페페의 꽃이랍니다. 페페는 보시는 것처럼 독특한 모양의 길쭉한 가죽 끈 모양의 꽃을 피워요. 보기에 좋지 않으신다면 잘라 주셔도 무방해요.





 

페페로미아.

후추과에 속하는 식물로, 여러 가지 다양한 색과 모양을 가진 잎, 낮은 광량에도 잘 자라는 강인함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키우기 쉬워 초보에게 많이 추천하는 식물 중 하나이다. 

주로 잎을 보기 위해 많이 키우는 식물이지만, 꽃을 피우지 않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이 꽃이 참 알아보기 어렵게 생겼다는 거다. 네이버 지식백과에서도 대놓고 ‘관상가치는 그다지 크지 않다’ 라고 나와있는 페페의 꽃은 흰색의 막대기가 불쑥 솟은 것처럼 생겼는데, 얼핏 보면 길쭉하게 자라난 수술 같기도 하다. 가죽 끈 같기도 하고, 더듬이 같기도 하다. 처음 보는 사람들은 식물에 이상한 것이 생겼다며 사진을 찍어 올리기도 한다. 


모든 식물의 꽃이 꽃 같이 생긴 것은 아니다. 수세미 같은 홍페페 꽃도 꽃이고, 화장실 솔 같이 생긴 아글라오네마 꽃도 꽃이고, 작고 옹졸한 불꽃놀이처럼 피어나는 필레아페페 꽃도 꽃이다. 하긴, 우리 보기 좋으라고 피는 꽃도 아닌데, 꼭 꽃다워야 하는 법은 없는 법이다. 

하지만 위의 질문을 한 의뢰자님은 그 기묘한 가지의 정체가 꽃이라는 것을 알자 매우 즐거워했다. 모양이야 어땠든, 키워낸 식물이 꽃을 피워냈다는 사실 자체가 기뻤던 모양이다. 식물을 키우는 사람들은, 이런 순수함으로 나를 반성하게 만들고, 동시에 매우 기쁘게 만들 때가 있다. 


예전에, 앱 이벤트로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식물을 소개하는 ‘최애 식물 소개하기’ 이벤트를 한 적이 있다. 나는 어렴풋한 편견으로, 대부분의 가드너들이 화려하고 예쁘고 비싼 희귀 식물들을 올리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대다수의 식물들이 흔하게 구할 수 있고 가격이 높지 않은, 흔히들 말하는 ‘흔둥이’ 식물들이었다. 


흔하고 어디서든 볼 수 있지만, 그 식물을 좋아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키워보니 가장 잘 자라는 식물이라, 거의 시들어가다가 살려낸 식물이라, 소중한 사람이 선물해준 식물이라, 가장 처음으로 키우기 시작한 식물이라 등등. 이렇게 순수한 마음으로 식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보니 처음에 그런 생각을 했던 것이 부끄러웠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페페의 꽃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경우, 제아무리 열심히 꽃을 피워내도 수형을 해친다며 가지치기 당하거나, 잎에 비해 예쁘지 않기 때문에 가지치기 당하기 일쑤이다. 


하지만, 그러다 보면 의뢰자님 같은 사람을 만날 수도 있다. 작고 보잘것없고, 다른 식물들과는 달라도 이 꽃의 귀여움과 아름다움을 눈치채고 사랑해주는 사람 말이다. 


사람의 가치도 분명 그럴 것이다. 각자 자신만의 꽃을 피워내고 있는데, 그게 꽃인지 알아보지 못할 뿐이다. 아직 아무도 찾아내지 않았더라도, 우리는 열심히 꽃을 피워내야만 한다. 언젠가 찾아올 누군가가, 내가 피워낸 꽃에 매료되어 곁에 기꺼이 머무를 수 있도록.


나는 아직 그런 사람을 못 찾았다. 거 참, 다들 보는 눈이 없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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