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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빛아빠 Oct 23. 2022

01. 금요일 17시 55분

이 글은 창작 소설로 실존 인물이나 지명 등 실제와 관련이 없습니다. 




 현재 시각 금요일 17시 55분, 퇴근 5분 전, 눈은 모니터에 집중하는 척하며 손은 바쁘게 마우스를 움직이지만 사실 나는 다른 사람들의 기척을 경계하며 땡 치면 여고 점심시간처럼 바로 뛰쳐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 17시 57분, 퇴근 3분 전 ‘띵동~! 메일이 도착하였습니다.’ ‘아․․․. 이런 씨․․․.’ 입으로는 쌍욕을 중얼거리지만 불만을 토해내는 입과 달리 나의 손은 순응하여 열심히 받은 메일함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제목 : 보고서 오늘까지 제출 요망

 내용 : 오늘까지 지난번 계약 건 정리해서 보고하도록


 간단한 메일 내용이었지만, 부아가 치밀었다. 금요일 퇴근 3분 남겨 놓고 오늘 까지라니! 오늘이 얼마나 남았는지 알고 하는 말인가! 원래 보고서 제출은 다음 주 화요일까지라고 했잖아! 더 이상은 참지 못하겠다.

 “박진태! 이 개새끼야!” 사무실에 머리를 박고 있던 모두가 숨어있던 맹수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미어캣이 되어 파티션 위로 고개를 내민다. 그중에서도 자신도 모른 사이 개가 된 박진태 부장은 토끼눈이 되어 고개를 내밀었다. 나는 한 바탕 포효를 하고 곧장 박진태 부장의 자리로 내달려 멀리뛰기 선수처럼 자연스럽게 달리는 힘을 이용하여 도약한다. 그대로 날아올라 몸을 웅크렸다 펼치며 다리를 내지른다. ‘퍽!’ 박진태 부장의 얼굴에 발 도장이 새겨지며 둔탁한 소리가 사무실을 메웠다. 그리고 박진태 부장의 머리가 뒤로 날려지며 뒤로 벌러덩 널브러진다. 나는 곧바로 박진태 부장의 몸 위로 올라타 UFC 선수로 빙의하여 파운딩 소나기를 퍼붓는다. 

 “야! 이 개새끼야! 오늘? 오늘이라고? 오늘 이제 3분 남았는데! 어떻게 오늘 끝내? 저번 회의 때 다음 주 화욜일까지 보고서 제출하기로 했잖아! 왜 맨날 네 맘대로 하는 거야? 학창 시절이었으면 내 눈도 똑바로 못 쳐다봤을 새끼가! 내가 만만하냐?”


 휴우... 상상만으로 부글거리던 속이 좀 가라앉는다. 항상 상상만 하는 일이지만 가능하다면 진심으로 박진태 부장을 줘 패고 그 더러운 성격을 고쳐주고 싶다. 항상 생각만 하는 일이지만 저런 놈들은 매가 약이다. 현재 시각 17시 58분 상상하는 데 1분을 낭비했다. 오늘도 누군가가 감탄하는 야경의 불빛 중 하나가 돼야 하는 처지다. 내 처지를 돌이키고 보니, 누가 누구한테 욕을 하는지ㆍㆍㆍ. 결국 하고 싶은 말 한마디도 제대로 못하고 시키는 대로 하는 내가 개새끼고 돈의 노예였다.


 나는 어려서부터 원래 이런 사람은 아니었다. 벌이는 시원찮지만 자신의 기술에 자긍심이 높은 아버지와 동네의 작은 마트의 야채 코너에서 힘든 내색 없이 우직하게 일을 하며 가족들에게 헌신하신 어머니 밑에서 부족하긴 하지만 또 그렇게 많이 부족하지는 않은 집안의 평범한 자식으로 태어났다. 그런 집에 태어난 나는 평범하면서도 또 평범하지 않았다. 나는 뽀로로처럼 노는 게 제일 좋았다. 중학생이 되고부터 힙합에 꽂혀 자유를 갈망했고, 사회의 부조리에 저항했다. 나의 자유를 갈망하고 부조리에 저항하는 방법은 하나였다. 공부하지 않고 놀기. 

 수업시간에 강의는 안 하고 교과서를 읽기만 하는 주제에 제 기분 따라 애들 꼬투리 잡아 매타작 하는 멍청한 선생들, 자기들도 공부하지 않으면서 우리에게는 공부해야 하는 이유를 설교하고 목적 없는 공부를 강요하는 무능한 어른들, 전부 다 나를 옭아매는 존재로 인식하고, 저항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렇다고 내가 학교에서 잘 나갔던 것도 아니다. 꼬박꼬박 학교에 출석하여 개근상을 받으며, 수업시간에 집중하는 척하며 당시 유행하던 만화를 머릿속으로 복기하며 학교가 끝나기를 고대했고, 사회인이 되어 서로 바빠져 지금은 자연스럽게 연락이 끊긴 당시의 절친들, 강정환, 진태현과 맨날 똑같은 주제의 뻔한 이야기를 하며 PC방, 노래방, 공원을 배회하며 시간을 죽이기 바빴다. 또 괜한 객기로 가방 좀 들라고 말하는 일진한테 “싫은데. 내가 왜?”라고 말했다가 얻어터지기 일쑤인 근처에 흔해빠진 그냥 지질이었다.

 그래도 춤과 노래, 패션 센스로 나름 유명했다. 돈이 여유가 되면 노래방에서, 돈이 없으면 공원에서 우리는 우리가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따라 부르고, 춤을 연습했고, 학교 축제 무대에도 올랐다. 그리고 전단지를 돌리며 푼돈을 모아 유행을 따르기보다는 내 눈에 예뻐 보이는 옷을 사서 입고 다녔다. 나만의 옷을 입고 나만의 춤을 추고 노래하는 순간이 나에게는 자유의 순간이었다.

 그렇게 자유롭고 사회의 부조리에 저항하던 나는 성적 저조로 결국 대학을 못 갔다. 근데 나는 대학을 못 갔어도 천하태평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주제에 그저 나는 모든 걸 해낼 수 있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넘쳐흘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일단 군대부터 다녀오기로 했다. 그때부터였던 거 같다. 내가 개새끼가 되기 시작한 것은.

 군대에서 만난 박운규 일병은 나를 처음 보자마자 이렇게 말했다. 

 “고참들이 혼내면 그냥 닥치고 “죄송합니다.”라고 해. 그래도 계속 갈구면 그냥 내가 시켜서 그랬다고 해. 어차피 나는 너보다 덜 혼나.” 

 박운규 일병은 현명한 사람이었다. 이미 기분이 상해버린 비이성적인 인간에게는 이런저런 해명을 해봤자, 그 해명이 변명과 말대꾸로 들리기 때문에 불난 집에 휘발유를 붓는 것과 같다는 사실을 일찍이 깨달은 사람이었다. 박운규 일병 덕분에 나는 덜 괴롭힘 당하며 이등병과 일병 생활을 할 수 있었지만, 질책이 들어올 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죄송합니다.”하고 말하는 버릇이 생겼다.

 병장이 되자 쉬는 시간에 누울 수도 있고, 괴롭히는 사람이 없어 비교적 몸은 편해졌지만, 가슴은 답답해졌다. 전역을 앞둔 말년들이 모두 갑자기 같은 행동을 했기 때문이다. 책 한 권도 읽지 않던 백치미 박 병장도, 운동만 좋아하던 몸짱 신 병장도, 여자만 밝히던 변태 김 병장도 모든 고참들이 말년들이 되어 사회로 진출할 때가 되자 여러 참고서를 공수해와 공부하기 시작했고, 전역하는 날 하나같이 웃고 있지만, 무거워진 어깨를 뒤로 보이며 사회로 나갔다. 결국 나도 말년이 되고 그들과 같아졌다. 나도 그토록 바라던 전역하는 날에 웃는 얼굴과 무거운 어깨가 따로 놀며 사회로 추방당했다.

 전역 후 그렇게 떠밀려 사회로 내보내진 나는 나의 잃어버린 청춘을 되찾을 시간을 갖지도 못한 채, 곧바로 취업 전선에 뛰어들어 여러 스펙을 쌓기 위해 고군분투하였다. 토익학원을 다니고, 여러 자격증을 취득하려 노력하며, 블라인드 테스트로 공채를 뽑는 회사를 찾아다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어깨의 회전근개가 파열되어 더 이상 일을 못하게 되신 아버지 때문에 집안 형편도 전보다 어려워져 취업준비와 아르바이트를 병행해야 했다.

 그렇게 5년을 땅을 파다 보니 하늘께서 알아주신 걸까? 수많은 거절 후에 단 한 번의 승낙이 떨어졌다. 그렇게 나는 지금 다니고 있는 JJ무역에 인턴으로 채용되었다. 인턴 생활 2년은 정말 간이고 쓸개고 다 빼내고 다녔다. ‘무엇이든지 다 시켜만 주십시오!’ 하는 눈을 하고, 시키는 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해냈다.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일했다. 물론 일만으로는 안 된다. 마음에도 없는 귀에 듣기 좋은 달달한 소리를 못하던 나였지만, 그 당시에는 입에 꿀을 바르고 살았다. “김 대리님 패션 전공이셨습니까? 오늘 넥타이 선택 지리셨지 말입니다!”, “항상 차 과장님 덕분에 인생사는 법을 배웁니다. 앞으로도 잘 지도해주십시오!” 내 위에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가리지 않고 넙죽 엎드려 지문이 없어질 정도로 열심히 손을 비볐다. 나의 열정과 노력이 빛을 발한 결과, 나는 정직원으로 채용되어 영업팀의 박진태 부장 밑으로 들어가 1년째 구르고 있다.


 보고서를 마무리하고 모니터 오른쪽 하단 구석의 시계를 보니 어느덧 금요일 23시 30분이 되었다. 지시대로 오늘 안에 일을 끝냈다. 지친 손가락에게 ‘힘내! 버튼 하나만 더 누르면 돼!’라고 응원하며 메일의 ‘보내기’ 버튼을 눌렀다. 컴퓨터를 끄고 책상을 정리하고 고개를 들었다. 내 눈에 비친 파티션으로 가득 찬 사무실에는 아무도 존재하지 않았다. 보는 사람도 없는데 착잡한 마음을 숨기며 담담한 척하며 사무실 출입구로 향한다. 불을 끄고 문을 닫으며 돌아본 사무실은 너무 깊고 어둡다. ‘띡. 보안이 가동되었습니다.’ 보안 카드를 찍고 나서야 나의 어깨가 솔직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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