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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빛아빠 Oct 23. 2022

03. 무료한 주말

이 글은 창작 소설로 실존 인물이나 지명 등 실제와 관련이 없습니다. 




 어제 혹사당한 심장을 달래기 위해 조각 치킨과 맥주를 먹고, 생산만을 위해 소모했던 평일의 시간을 이제라도 소비를 위해 소모하려고 침대에 누워 한 손에 핸드폰을 들고 밀린 웹툰을 보고 인스타그램으로 운동하는 여자들의 피드나 훔쳐보며 허송세월을 보내다 03시경 잠들어서인지 눈을 떠보니 이미 오후 1시였다. 이럴 때는 그냥 라면 2개 끓여 먹고 다시 눕는 게 상책이다. 찬장을 열어보니, 라면이 하나도 없다. 

 ‘들어올 때 라면도 샀어야 했는데ㆍㆍㆍ.’ 

 별 수 없이 주섬주섬 슬리퍼를 신고 역 앞 편의점까지 장장 10분이나 걸리는 먼 길을 나선다.

 오늘따라 유난히 편의점으로 향하는 길에 들뜬 사람들이 많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마주 오는 가족이었다. 가운데에서 엄마와 아빠를 이어주는 미소가 예쁜 꼬마 아가씨는 아마 나들이를 떠나는 길인가 보다. 그 미소가 너무 해맑아 나의 마음까지 정화되는 거 같아 고개를 돌려 뒷모습까지 눈에 담으려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다음 타깃이 눈에 띄었다. 뒤에 따라오는 여자를 봤다. 꽃무늬 원피스를 입은 사랑에 빠진 듯 설레는 얼굴을 한 아리따운 아가씨는 아마 데이트를 하러 나서는 길인 거 같다. 나와는 다른 세상을 사는 그들을 보는 것을 멈추고 조용히 다시 고개를 돌려 정면을 보며 담담하게 편의점으로 향한다. 

 주말에 딱히 할 일이 없어진 지는 연애 못한 기간만큼 오래되었다. 둘 뿐이었던 친구, 강정환과 진태현은 군대 다녀오고 취업 준비를 하며 자연스레 연락이 끊겼고, 취업 준비하다 만난 은영이와 헤어지며 주말에 약속을 잡을 사람이 없어졌다. 1년에 한두 번 들어오는 소개팅을 제외하면 매번 특급 방콕행 VVIP가 되어 주말을 보내야 했다. 문득 강정환, 진태현과 은영이는 뭐하고 사는지 궁금해졌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역 앞의 편의점에 도착했다. 편의점 앞의 좁은 나무 데크 계단을 올라 문을 열고 들어가자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학생 4명이 컵라면과 이런저런 즉석식품을 먹으며 휴대폰 게임을 돌리며 이야기하고 있다. 

 “야, 얘 벌써 200 렙 찍었어!”

 “아ㆍㆍㆍ. 학원 가기 너무 싫다.”

 “뭐야, 벌써? 네가 제일 늦게 시작했잖아.”

 “와! 이거 떡볶이 엄청 맛있어! 야! 이거 먹어봐.”

 저마다 제 할 말만 하는데 묘하게 잘 어우러지는 거 같다. ‘이런 게 친구지. 좋을 때다. 부럽다. 많이 즐겨둬라.’ 같은 늙은이들이나 할 법한 말이 절로 올라온다. 오지랖은 잠시 넣어두고 내 할 일이나 해야지. 자연스럽게 행사 코너를 향해 간다. 오늘은 1+1 행사는 없고, 할인 행사만 있다. 대충 제일 싼 값의 라면 번들을 집어 들고 계산대로 향했다.

 “통신사 중복할인되죠?”

 “네. 됩니다.” 

 “봉투에 담아주세요.”

 “네. 할인돼서 3,250원입니다.”

 요새 지갑도 필요 없다. 가볍게 핸드폰 결제 애플리케이션으로 계산하고 집으로 향한다. 

 나는 언제부턴가 할인에 집착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 갓 정직원 2년 차의 월급으로는 월세, 각종 공과금, 교통비, 통신비, 엄마가 들어놓은 보험료, 생활비 등 고정비용을 지출하고 나면 적금도 들기 어렵다. 절약하고 또 절약하여 소액이라도 적금을 들지 않으면 하루 벌어 하루 사는 꼴이다. 그마저도 내가 대학 학자금 대출한 것이 없고, 연애를 안 하니 가능한 일이었다.

 그래도 마음씨 좋은 집주인을 잘 만나 다른 집들보다 10%는 저렴한 보증금과 월세로 투룸 같은 원룸을 구하여 3년째 잘 살고 있다. 5층짜리 건물에 내 집이 있는 3층은 전부 투룸 같은 원룸이다. 말이 좋아 투룸이지 원룸에 중문 하나 달아서 방과 주방을 나누었을 뿐이다. 주방에는 사람 3명, 방에는 침대와 옷장을 제외하고 사람 2명 정도 들어올 좁은 집이다. 신세한탄을 하다 보니 어느새 건물 3층에 위치한 나의 저렴하고 좁기만 한 집에 도착했다. 생각은 평일에 싫더라도 너무 많이 하니까 남은 주말은 라면 먹고, 영화와 핸드폰과 공기를 쳐다보며 지내야겠다. 그래야 평일에 대출했던 미래의 정신력과 체력을 간신히 갚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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