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창작 소설로 실존 인물이나 지명 등 실제와 관련이 없습니다.
하릴없이 인터넷을 서핑하다 ‘워얼화아수우모옥금퇼’이라고 적힌 지하철역 벽면의 사진을 보았다. 누가 떠올렸는지 몰라도 엄청난 카피라이팅이다. 일주일의 체감 속도를 단 몇 글자로 표현하다니 굉장한 능력의 카피라이터다. 그러나 저 카피라이팅에는 감탄했던 능력만큼의 굉장한 얄미움도 있다. ‘퇼’이라니 너무나도 얄미운 글자이다. 이 새로 창조된 ‘퇼’이라는 글자는 길게 읽기도 어렵다. ‘퇼’하고 순식간에 읽히는 만큼 토요일과 일요일 주말이 ‘퇼’하고 얄밉게 튀어 나가 버리는 느낌이다. 나의 주말도 그렇게 ‘퇼’하고 튀어 나가 버렸다.
우리 집에서 회사까지는 약 한 시간 걸린다. 07시에는 일어나야 08시 30분까지 들어가 여유롭게 커피를 타고, 카페인의 힘을 빌려 부드럽게 뇌를 시동 걸고 업무를 시작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일요일 밤만 되면 잠들기에 실패한다. 그간 쌓였던 피로에 대한 반감으로 불규칙적으로 밤잠과 낮잠을 내키는 대로 자대고 일요일 밤에 회사 가기 싫은 울적한 마음에 허우적대면서도 잠에 들기 위해 안간힘을 쓰다 지쳐 잠에 드니 월요병이 세게 도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월요병도 병가로 인정해주는 회사가 있었으면 좋겠다.
아침 07시가 되자마자 칼같이 맞춰 두었던 알람이 요란하고도 담담하게 울린다.
“안녕하세요. 현재 시각은 07시입니다. 현재 기온은 22도이며, 오늘 최저기온은 21도, 최고기온은 24도가 되겠습니다. 오늘은 흐린 가운데 곳곳에 소나기가 내릴 수 있으니 우산을 챙기는 게 좋겠습니다. 다음으로 구글로 검색한 기사를 알려 드릴게요. 경제 부문 뉴스입니다ㆍㆍㆍ.”
베개에 머리를 박고 엎드린 채로 눈도 뜨지 않고 팔을 뻗어 알람을 끈다. 상냥한 AI의 목소리가 이제는 너무 짜증 나고 듣기 싫다. 흐리거나 비 오는 날에는 눈을 뜨지 않아도 뭔가 흐리고 비가 오고 있다는 느낌이 있다. 그래서 더 일어나기 힘들다. 일어나야 하는데 몸과 침대가 자석의 N극과 S극이 되어 찰싹 달라붙은 채로 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침대에 묻혀 있는 느낌이라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다. 다시 의지를 굳히고 팔을 구부려 끌어올리고 가슴 옆에 바짝 붙여 메뚜기 뒷다리같이 만든다. ‘밀어!’ 벤치프레스 신기록에 도전하는 파워리프팅 선수처럼 가슴과 팔, 복부에 힘을 한껏 모아 침대를 밀어낸다. 겨우 일어나 실눈을 뜬 채로 화장실에 가서 양치질을 한다. 양치질이 끝나도록 밤새 내려와 있던 눈꺼풀은 올라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여전히 실눈을 뜬 채로 온도를 맞추고 머리를 감는다. 역시 머리에 물을 부어야 눈이 좀 떠진다. 출근하기도 전에 두드려 맞은 듯 천근만근인 몸에 출근해야만 한다는 의지의 끈을 엮어 스스로 마리오네트가 된다. 내 정신이 어렵게 나의 팔다리를 조종하고 나서야 옷을 다 입었다. 그리고 다시 힘을 내어 월요일마다 유달리 사랑스러워지는 나의 저렴하고 좁기만 한 집을 나선다.
눈만 뜬 채로 집을 나와 계단을 두 바퀴나 돌며 1층으로 내려왔다. 공동현관을 나와 맡는 습하고 선선한 공기 덕분에 잠이 꽤 달아났다.
‘아ㆍㆍㆍ. 아까 알람에서 소나기 온다고 했는데ㆍㆍㆍ.’
1층에 내려와 바깥공기를 쐬어 잠이 깨고 나서야 상냥하지만 짜증 나는 AI가 알려준 날씨 정보가 떠올랐다. 돌아가서 우산을 챙길까 했지만, 그 마저도 귀찮아 역으로 발길을 돌린다. 역으로 가는 인도가 없는 길을 걷다 하늘을 보니 내 인생과 같아 보여 더욱 울적한 기분이 되었다. 하나둘씩 역으로 향하는 무채색의 옷을 입은 무채색의 사람들을 보니 더 마음이 가라앉았다. 온 세상이 흑과 백으로 뒤덮여 있다. 이래서 월요일에 흐리거나 비 오는 게 더 싫다.
그때 혼자만 쨍하게 빨간 스포츠카 하나가 시끄러운 음악소리와 배기음을 내며 흑과 백의 세상을 가르며 지나간다. 이런 저렴한 집값을 자랑하는 서울 외곽의 우리 동네에 저렇게 비싸 보이는 빨간색 스포츠카가 지나가는 것이 참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저 놈은 뭔 복을 받아서 저렇게 비싼 차를 몰고 다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이내 ‘카푸어겠지.’ 하고 정신 승리를 거둔다.
그렇게 승리를 하고 역에 도착하니 다시 흑과 백의 세상으로 바뀌어 있었다. 에스컬레이터 입구부터 무채색의 인간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나도 그들 중 하나인 것이 너무 싫다. 모두가 흐린 하늘만큼이나 회색을 띤 얼굴을 하고 있다. 그렇게 나도 회색 얼굴을 하고, 회색 얼굴을 한 무채색의 인간들 사이에 끼어 아무 생각 없이 한 시간을 이동하여 8시 30분 좀 넘어 회사에 도착했다.
오늘도 나는 2등이다. 1등은 항상 김현수 차장님이다. 항상 아침 8시경 출근하시는 거 같다.
“차장님, 안녕하세요! 오늘도 일찍 나오셨네요!”
“어. 자네도 늘 일찍 나오는군. 보기 좋아.”
월요일 아침에 항상 나보다 먼저 출근하여 사무실에 홀로 조용히 할 일을 하시는 김현수 차장님을 보면 좀 기분이 나아진다. 김현수 차장님은 늘 진중하고 성실하며 너그러워 어른다운 어른이라고 할 만한 사람이다. 김현수 차장님이랑만 일하고 싶다고 생각하는데, 깜빡 빼먹을 뻔한 사람이 들어온다. 나보다 입사가 1년 빠른 박진서 씨다.
“어머! 제가 또 3등이네요. 두 분은 정말 못 당해내겠다니까요!”
김현수 차장님도 나도 말이 많은 편이 아니라 가벼운 미소만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박진서 씨는 성격이 쾌활하고, 굉장히 친절하며 일도 적극적으로 나서서 한다. 그리고 미모도 딱히 빠지지 않는다. 짙은 갈색 중단발에 적당히 웨이브를 준 파마머리와 동글동글하게 생긴 얼굴은 퍽 귀엽다. 옷 스타일도 무채색의 회사원복이 아니고 선을 넘지 않는 한에서 러블리한 차림을 유지하는 센스를 보인다. 그리고 항상 러블리한 냄새가 나는 향수를 쓴다. 그 향수 냄새에 몇 번이나 설렜는지 모르겠다. 단점은 3년이나 사귄 남자 친구가 있다는 것이다. 아무튼 나는 사무실에 이 두 사람만 있으면 좋겠다.
자리를 대충 정리하고 아침마다 꼭 해야 하는 일을 하러 탕비실로 나선다. 나는 요새 아침, 점심마다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도저히 버틸 수가 없게 되었다. 그래서 당장 탕비실에 가 캡슐 커피로 아메리카노 한 잔을 타야만 한다. 캡슐 커피 머신은 회사에서 제공해주지만 커피 캡슐은 각자 지참하여야 한다. ‘윙~’ 소리와 함께 커피 원액이 컵으로 터져 나오며 고소한 커피 향이 은은하게 코를 간질인다. 나의 콧속에 자리 잡은 커피 향을 즐기며 그 까맣고 쓴 윤활유를 한 모금 마시 나서야 뇌에 시동이 걸린다. 홀짝이며 탕비실에서 나오는데 원수 같은 박진태 부장이 사무실로 들어온다. 나를 보고도 본 체 만 체 한다. 나도 애써 커피 마시느라 못 본 체하며 내 자리로 들어와 메일을 확인한다. 아직 별다른 소식은 없다. 08시 59분이 되어 만년 과장인 변진수 과장이 느린 걸음으로 들어온다. 변진수 과장은 만년 과장이라 그런지 매사에 의욕이 없다. 그래서 일도 하기 싫어하고 자신의 일을 자꾸 부하직원들에게 던진다. 짜증 나는 인간이다. 그 뒤를 따라 황용명 대리가 헐레벌떡 뛰어온다. 황용명 대리는 동년배지만, 입으로 먹고사는 사람이라 별로 친해지고 싶지 않고 간혹 짜증도 나는 사람이다. 그리고 매사 뺀질대고 일을 뒤로 미룰 수 있는 때까지 미루다가 미루다 마감이 임박하여 헐레벌떡 일하는 사람이라 나랑 맞지 않는다. 매번 촉박하게 일을 끝내거나 기한을 미뤄달라고 떼를 쓰는 성격 탓인지 출근도 항상 간당간당하다. 이로써 09시 정각 우리 영업 3팀은 다 출근했다. 그리고 나는 수신확인을 클릭하여 금요일에 보낸 보고서를 박진태 부장이 읽었는지 확인한다. 모니터가 박진태 부장이 08시 58분에 나의 보고서를 열어보았다고 알려준다. 적당히 9시 30분쯤 찾아가 봐야겠다. 그때까지 일하는 척하며 마저 뇌를 깨워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