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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빛아빠 Oct 23. 2022

06. 탈출을 위한 노력

이 글은 창작 소설로 실존 인물이나 지명 등 실제와 관련이 없습니다. 




 그렇다. 나는 저번 금요일부터 오늘 아침까지 문제가 되었던 그 보고서와 관련된 계약 건에 희망을 걸고 있다. 

 내가 다니는 JJ무역은 돈이 된다면 종류를 가리지 않고 별 물건을 다 취급한다. 내가 소속해 있는 영업 3팀은 온갖 회사의 잡무를 다 담당하지만 그래도 수출을 주로 담당하는 팀이다. 이번에 우리 회사가 중국에 수출할 물건은 맥주용 보리다. 우리 회사에서는 맥주용 보리를 팔기 위해 몇 달 전 새로 설립되어 칭다오 맥주를 저격하는 하오 맥주회사와 계약을 맺기로 했다. 우리 회사가 하오 맥주회사의 이름을 등에 업고, 입지를 다져 중국의 시장에 진출하겠다는 야망을 품은 기획이다. 

 중국 진출의 야망을 품고 기획팀과 우리 영업 3팀이 공동으로 하오 맥주회사와 협상에 나섰는데, 문제는 하오 맥주회사 대표가 신용을 중시하고 깐깐하기로 소문이 난 사람이라 우리 회사가 제시한 조건은 마음에 들지만, 샘플을 먼저 받아보고 계약을 확정 짓겠다고 요구했다. 이래저래 아쉬운 건 우리 쪽이니 그 요구를 받아들였다. 

 그 결과 그 샘플을 보낼 일정과 방법 등을 하오 맥주회사와 상의하고, 진행하는 역할을 김현수 차장과 내가 주도하게 되었다. 그리고 물류를 주선해주는 국내 포워딩 업체와 맥주용 보리 물류창고와 연락하여 대략적인 일정을 잡고, 하오 맥주회사 측과 상의한 그 결과를 내가 보고서로 작성한 것이다. 그것도 금요일 퇴근 3분 전부터.

 그래도 인턴 시절부터 노예처럼 토 달지 않고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일하고, 나서서 프레젠테이션하고 다닌 덕에 나는 회사에서 성격 좋고 성실하며 일 좀 한다는 소문이 나고, 윗분들에게 얼굴도장도 찍힌 편이다. 그리고 이번 계약 건을 진행하며 기획팀 부장님과 팀원들과 어느 정도 친분을 쌓을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 계약 건만 잘 성사되면 그간 내가 계약을 성사시키며 쌓았던 실적과 협상을 하고 샘플을 보내며 하오 맥주회사 측과 조금이나마 안면을 튼 것을 빌미로 기획팀으로 지원하여 천적인 박진태 부장과 작별하겠다는 희망을 품고 있다. 

 기획팀이 정확히 무슨 업무를 담당하는지 모르지만, 내가 기획팀에 지원하고 싶어 하는 이유는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있지만, 기획팀에 들어가면 우리 팀처럼 떨어지는 잡무만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말단 직원이라도 회사 내에서 조금이나마 주도적으로 일을 할 수 있을 거 같아 지원하기로 마음먹었다. 

 업무라도 주도적으로 하지 않으면 지금 내 인생에서 내가 주도적으로 하는 것이 하나도 없다. 무언가 하나라도 주도적으로 하지 않으면, 바닥을 칠 대로 친 나의 자존감이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거 같다. 

 어차피 오늘은 보고서가 문제 될 일이 없을 거 같으니, 여기저기 다시 계획에 차질이 없는지 확인하는 전화를 돌리며 하루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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