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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빛아빠 Oct 23. 2022

07. 넌 뭐하는 놈이냐?

이 글은 창작 소설로 실존 인물이나 지명 등 실제와 관련이 없습니다. 




 화요일이 되어서야 박진태 부장이 보고서를 검토하고 나를 호출하였다. 

 “자네 이거 제대로 확인한 거 맞아? 중국 측 일정과 선박 스케줄 다 맞춰 본 거 맞아?”

 아침부터 시비다. 도저히 표정관리가 되지 않는다. 내가 이놈을 싫어하는 이유 중 가장 큰 이유가 이거다. 부장 직함을 어떻게 달았나 싶을 정도로 일을 못하고 멍청한 게, 제 주제도 모르고 제가 잘난 줄 알고 하는 일마다 어렵게 만들고 꼬투리를 잡아 시비를 건다. 혈압이 팍 올라 이를 악물고 억지로 대답했다.

 “네. 다 확인했고요. 천재지변이 일어나지 않는 한 잘 도착할 겁니다.”

 박진태 부장은 나의 대답을 듣고는 눈을 가늘게 뜨며 뭔가 더 쏘아붙일 준비를 했다. 그때 마침 다행히도 옆에서 김현수 차장님이 파티션 너머로 배꼼 얼굴을 내밀고 지원 사격을 해주었다.

 “부장님, 어제 저도 보고서 읽고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다 확인했는데, 그대로 진행하면 문제없을 겁니다. 염려 놓으시지요.”

 딴죽 거는 박진태 부장을 김현수 차장님이 차분하고 요령 있게 제압한다.

 “뭐 김 차장이 다 확인했다면 김 차장이 다 책임지겠지.”

 어이가 없다. 책임은 부장인 네가 져야지요.

 “다 잘 처리될 겁니다.”

 김현수 차장님이 다시 차분하고 요령 있게 대답한다. 결국 본래 계획대로 진행하기로 결정이 내려졌다. 김현수 차장님이 옆에서 거들지 않았다면, 아마 같은 일을 개고생 하며 돌아가야 했을 거다. 

 이제 샘플을 보내고 하오 맥주회사 측에서 답변을 낼 때까지 모니터링만 하면 될 일이다. 당분간은 머리를 비우고 회사 생활을 할 수 있을 거 같다. 그러나 그 생각은 오래가지 못했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자리에 돌아와 앉자마자 보고서에 정신 팔려 잊고 있었던 밀린 잡무가 쏟아졌고, 기다렸다는 듯이 나의 전화는 불통이 났다. 오늘도 나는 별을 보며 퇴근해야 할 운명인가 보다.


 동네에 도착하니 21시 38분. 밀려왔던 잡무의 양에 비하면 일찍 퇴근한 편이다. 사실 할 일도 없고, 만약 할 일이 있다고 해도 그 일을 시작하기 애매한 시간인데도 평소보다 일찍 동네에 들어왔다고 좋아하는 내 신세가 참 웃기다. 오늘도 나는 저녁도 먹지 못하고 일했기 때문에 조각 치킨과 맥주를 사 허기를 달래기 위해 역 앞 편의점으로 향했다. 편의점에 도착했는데, 편의점의 입구로 통하는 좁아터진 나무 데크 계단에 웬 양아치 한 놈이 계단을 가로막고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다. 

 그는 말랐지만 나름 잔근육을 갖춘 탄탄한 몸매를 갖추고, 6대 4로 투 블록 가르마 파마를 하여 머리를 세련되게 넘겼다. 그리고  빨간색, 파란색, 하얀색이 묘하게 섞인 화려한 셔츠와 찢어지다 못해 터져 나간 청바지를 입은 수수한 얼굴의 2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남자였다. 

 ‘아이씨ㆍㆍ. 요새 왜 이렇게 매너를 밥 말아먹은 것들이 많아?’ 별을 보며 퇴근하여 울적했던 기분이 분노로 변화하는 순간이었다. 나는 속으로 욕지거리를 하며 불평을 토해내지만 행동은 싸움이 날까 두려워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놈과 난간 틈새로 몸을 욱여넣고 조용히 올라간다. 

 “하ㆍㆍㆍ. 참ㆍㆍㆍ. 이 개새끼가ㆍㆍㆍ.”

 계단을 다 올라왔는데, 대뜸 욕하는 소리가 날아와 귀에 꽂혔다. 분노로 변화하는 중이던 기분이 이제는 머리끝까지 차올라 자동적으로 아래턱이 튀어나왔다. 그 튀어나온 아래턱과 분노를 애써 우겨 누르며 돌아보니, 계단에 앉아 있었던 그 양아치가 담배를 입에 문 채로 일어나 나를 응시하며 엉덩이를 툭툭 털고 비대칭적인 미소를 띠며 나를 비웃고 있었다. 

 “지금 나한테 하는 소리입니까?” 

 “그럼 여기 너 말고 누가 있는데?”

 그 양아치가 여전히 비대칭적인 미소로 비웃으며 입에 담배를 문 채로 턱짓을 하며 나를 가리켰다.

 “아니 나를 언제 봤다고 대뜸 욕을 합니까?”

 “개새끼를 개새끼라고 하지 그럼 뭐라고 하냐?”

‘아 오늘 진짜 왜 이러나 싶다. 오늘 아주 사달을 내봐?’하고 발끈하는 차에 대뜸 머리를 멍하게 만드는 말이 날아왔다.

 “내 이름은 최우영이다. 너 이름이 뭐냐?”

 어이가 없다. 무슨 상황인지 갑자기 이해가 되지 않는다. 방금까지 욕하고 시비 걸더니 대뜸 자기소개라니. 이놈은 미친놈이 확실하다. 애써 담담한 척하며 응수한다.

 “내가 왜 처음 보자마자 대뜸 욕이나 하고 시비 거는 당신 같은 양아치한테 내 이름을 말합니까?”

 “하하하하. 맞네. 개새끼. 처음 보는 사람한테 제 이름도 당당하게 말 못 하는 게 개새끼지 그럼 뭐야?”

 두 번이나 이유 없이 욕을 먹어 울컥했지만, 순간적으로 생각해보니 저 놈은 제 이름을 당당히 외치며 밝히는데, 나는 내 이름을 당당히 외치며 밝히지 못하는 것만으로 진 거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이유 없이 시비 거는 처음 보는 미친놈에게 내 이름도 알려주기 싫었고, 무엇보다도 개새끼라는 욕에 대한 깊은 철학을 가진 거 같은 저놈이 생각보다 미친놈 같아 무시하는 게 상책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냥 아무 대꾸하지 않고 돌아서서 단호한 등을 보여주며 편의점 출입구로 향했다. 문을 열며 힐끗 놈을 쳐다보니 여전히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배실배실 웃으며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무시한 채로 편의점에 들어와 조각 치킨과 맥주를 계산했다. 이상하게도 계산하고 나니 차올랐던 분노가 싹 가셨다. 다시 아무 생각 없이 문을 열고 나왔는데, 놈은 이미 사라지고 놈이 있던 그 자리에는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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