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별빛아빠 Oct 23. 2022

09. 한 주의 마무리는 치맥이지.

이 글은 창작 소설로 실존 인물이나 지명 등 실제와 관련이 없습니다. 




 “안녕하세요. 현재 시각은 07시입니다. 현재 기온은 24도이며, 오늘 최저기온은 22도, 최고기온은 28도가 되겠습니다. 오늘은 화창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다음으로 구글로 검색한 기사를 알려 드릴게요. 정치 부문 뉴스입니다․․․.”

 어제 그 난리를 피우고 집에 들어와 눈을 감고 숨만 쉬다 보니 어느덧 달이 바뀌어 7월 첫 출근을 준비할 시간이 되었다. 일단 거침없이 손을 뻗어 상냥하지만 짜증 나는 AI의 목소리를 잠재운다. 밤새 잠을 잤는지, 눈을 감고 숨만 쉬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정신이 개운치 않지만 몸은 다른 날보다 비교적 쉽게 일으켜진다. 앉아서 멍하니 공기를 쳐다보고 있다. 눈을 뜨고 있지만, 모든 것이 뿌옇다. 몽롱한 정신으로 발을 끌며 화장실로 향하여 양치를 하고 머리를 감았지만 아직도 머리가 먹먹하다. 메뚜기가 풀을 뜯어먹듯 본능적으로 아무 생각 없이 손에 잡히는 옷을 입고 집을 나선다. 오늘도 멍한 채로 두 바퀴를 돌아 1층 현관을 나선다. 7월 첫날이라고 바깥공기가 어제와 사뭇 다르다. 아침부터 제법 열기를 품고 있다. 그 열기에 더욱 정신이 혼미해지는 거 같다. 오늘도 역으로 향하는 좀비들이 하나 둘 모여든다. 그 행렬을 따라 역 앞 편의점 근처에 도달하자 아침부터 아주머니 두 분이 호들갑을 떨어 대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어제 이야기 들었어? 어제 또 204호에서 술 먹고 난동을 피웠다나 봐. 어제는 칼까지 들었대!”

 “어머! 세상에 그래서 어떻게 됐대?”

 두 아주머니의 대화가 귓가에 들어오자 어제 중년의 경찰이 칼부림 나서 지원 가야 한다는 말이 떠올랐다. 내 부탁을 거절하기 위한 거짓말은 아니었나 보다. 그래서 어떻게 됐는지 궁금하여 나도 잠시 발길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

 “경찰이 떼로 몰려와서 뜯어말리기는 했는데, 분리 조치와 접근금지 명령을 하겠다고 경고한 것 말고는 다른 조치는 취하지 않고 돌아갔다나 봐.”

 “어휴! 세상에! 대체 그 집은 몇 번째야?”

 들어보니 결국 그 집이나 나나 별반 차이가 없었다. 나보다 더한 사태가 벌어졌는데도, 별반 차이가 없는 대응에 더욱 발걸음이 무거워졌다. 누구 하나 칼이라도 맞아야 세상이 제대로 돌아가려나 보다. 

 어젯밤 일과 아주머니들 대화를 곱씹으며 한숨을 푹푹 쉬어대다 보니 어느새 회사에 도착해 있었다. 나는 사무실로 들어가며 김현수 차장님께 인사를 하고, 자리를 정리한 후 탕비실에 커피 타러 가며 박진서 씨와 인사를 나누었다. 나까지 이 세 명은 늘 똑같은 등수로 출근한다. 오늘은 별 다른 일 없었다. 느긋하게 이런저런 일을 처리하다 일요일 밤 선박으로 적재되는 하오 무역 샘플 건의 스케줄이 이상이 없는지 한 번 더 확인하였다.

 “부장님 오늘 금요일인데 일찍 퇴근하시죠?”

 역시 김현수 차장님이다. 다른 부하 직원들 맘 편히 퇴근하도록 센스 있게 박진태 부장부터 보내신다.

 “벌써 퇴근할 시간인가?”

 박진태 부장은 느긋하게 짐을 싸고 재킷을 손에 걸친 채 유유히 출구로 향하였다. 그러다 내 자리 앞에 도착하자 갑자기 휙 돌아서서는 턱을 최대한 당기고 눈을 치켜뜬 채로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입을 뗐다.

 “자네는 이번 주말 동안 꾸준히 샘플 선적 건 모니터링하도록.”

 “네” 

 박진태 부장은 나의 대답을 듣고는 아무 말 없이 굼뜬 궁둥이를 흔들며 나갔다. 참 별 거 아닌 일이지만, 턱을 최대한 당기고 눈을 치켜떠 주름진 이맛살과 턱살 하며, 나를 가리키는 뚱뚱한 손가락, 발은 그대로 두고 다리를 엑스자로 만들며 몸만 돌아선 자세하며 별 게 아닌데도 그의 언행 모든 것이 다 신경을 거스른다.

 “자 이제 다들 마무리하고 퇴근들 하지.”

 김현수 차장님의 말씀에 다들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다른 때 같으면 나도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겠지만, 동네에 가면 내가 해결하지 못한 나만의 문제가 있기에 오늘은 정시퇴근이 달갑지만은 않다.

 “왜 그래? 집에 안 가?”

 김현수 차장님께서 나가시다 평소와 달리 굼뜨게 움직이는 내가 이상했는지 말을 걸어왔다.

 “아뇨. 집에 가야죠.” 전혀 내키지 않다는 듯이 내가 대답했다.

 “뭐야. 무슨 일이라도 있나?” 내키지 않다는 듯이 대답하는 나의 목소리에 김현수 차장님은 내가 걱정되었는지 의아해하며 더 세부적으로 물었다. 혹시 말하면 어떤 조언이라도 얻을 수 있을까 싶어 마음속 집을 꺼내보려는데 갑자기 훼방꾼이 날아들었다.

 “일은 무슨 일이 있겠어요. 일을 더 하고 싶은데 퇴근하려니 아쉬워서 그런가 보죠.” 황용명 대리가 또 깐족대며 끼어들었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이 있어.” 변진수 과장이 옆에서 거든다. 가만히 있는 게 도와주는 거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이 확실하다. 김이 팍 새버린 나는 그냥 “네.”하고 짧게 대답을 한다. 나의 대답을 듣고는 김현수 차장님은 한 동안 이상하다는 얼굴로 아무 말 없이 서 있다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모두가 떠난 후 나는 마치 출근할 때처럼 늦장을 부리며 내가 해결하지 못한 나의 문제가 있는 우리 동네로 향하였다. 


 어찌나 마음이 무거웠던지 동네 역에 도착하니 7시 34분이었다. 평소대로 정시 퇴근하고 날아왔다면 최소 20분은 더 빨리 도착했을 것이다. 오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해봤지만, 도무지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에스컬레이터에 첫발을 들일 때부터 긴장이 되었다. 만약 오늘 또 놈을 마주친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에스컬레이터 벨트를 손으로 꼭 잡고 또 까치발을 들어 조심스럽게 놈이 있는지 확인한다. 눈이 지상으로 올라오자 놈이 보인다. 머리부터 순서대로 올라오고 있는 내 몸과 다르게 심장은 덜컥하고 땅으로 꺼진다.

 ‘아냐! 쫄지 마!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바짝 차리면 살아 돌아온다 했어!’ 억지로 땅으로 꺼진 심장을 끌어올리고 큰 호흡을 들이쉬고, 내쉬며 호흡을 다시 가다듬으며  심기일전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일단 약한 모습을 보이면 바로 잡아 먹힐 것이다. 

 놈은 오늘도 화려하게 입고 편의점 나무 데크 계단을 가로막고 담배를 피우고 있다. 오늘은 안에 흰 티셔츠 위에 검은 바탕의 황금 야자수가 그려진 하와이안 셔츠를 앞부분만 검은 반바지에 넣어 입었다. 그리고 기다란 흰 양말과 검은 스포츠 샌들을 신었다. 흰 양말에 검은 스포츠 샌들이라니. 어렸을 때 동네에서 유명했던 아저씨가 생각났다. 그 아저씨는 정신이 많이 아팠는데 사시사철 흰 양말에 검은 스포츠 샌들을 신고 돌아다녔다.

 오늘은 편의점을 들를 생각이 없다. 한 주의 마무리를 위해 거하게 치킨과 맥주를 시켜 먹을 것이다. 그것이 요즘 나의 유일한 낙이자 사치이다. 그래서 난 놈을 무시하고 당당히 내 갈 길을 가기로 결심하고 어깨를 보란 듯이 펴고 놈 앞을 지났다.

 “어이. 개새끼. 나한테 할 말 없어?”

 분명 내가 지날 때까지만 해도 땅만 보며 사람들한테 시선도 안 주고 관심도 없던 놈이 어떻게 나한테만 저렇게 관심을 보이는지 신기하다. 

 “없는데.” 나는 돌아보지 않고 내가 갈 방향을 주시하며 짧게 대답했다.

 “어제 경찰 나리들이 뭐라고 했어? 내가 했던 말이랑 똑같았지?”

 정곡을 찔려 이번에는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입을 앙다문 채 가만히 내가 갈 방향만 주시하며 잠시 멈춰 서 있었다.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몰라 그냥 아무 대답 않고 무시하고 가기로 했다. 뇌에서 발로 움직이라는 명령을 내리는 도중에 갑자기 놈이 내 시야로 들어오며 앞길을 막아섰다.

 “대답 안 하는 거 보니 내 말이 맞았구나? 좋게 그냥 치킨 사시지?”

 녀석이 내 앞을 가로막고 눈앞에서 배실배실 웃으며 말했다. 이제 진짜 모르겠다. 나는 문제를 안고 사는 성격이 되지 못한다.

 “좋아. 진짜 치킨 한 번 사면 떨어지는 거 맞지?”

 “아니. 이제 상황이 변했어.” 

 갑자기 놈이 눈에 힘을 주며 심각한 표정으로 무게를 잡으며 대답하여 나도 모르게 순간적으로 흠칫 놀라며 긴장했다.

 “이제 맥주도 사야 해.” 

 그 심각한 표정이 무색하게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놈이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 이놈은 확실히 나를 가지고 놀고 있다. ‘좋아. 다 맞춰주마. 맘껏 가지고 놀고 얼른 나가떨어져라.’

 “좋아. 치킨과 맥주 사주면 떨어진다는 거 맞지?”

 놈은 일부러 놀라는 척을 하며 눈과 입을 한껏 동그랗게 모으며 같은 모양으로 만들었다.

 “어디로 갈래? 아는 데 있어?” 내가 다시 물었다.

 “아니. 그냥 네 집에서 먹자.”

 놈의 대답에 다시 기가 찼다. 내가 왜 알지도 못하는 인간을, 게다가 여자도 아니고 남정네를 내 집에 들인단 말인가?

 “야! 내 집은 아니지! 내가 왜 알지도 못하는 놈을 내 집에 들여?”

 “집에 꿀 발라 놨어? 그리고 알지도 못하는 놈을 집에 못 들이는 이유는 또 뭔데?”

 차마 면전에 대고 ‘네 놈이 흉악범죄자일 지도 모르니까!’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봐. 대답 못하지? 그럼 진 거야. 네 집에서 먹는 걸로. 탕탕탕! 네 집에서 먹는 거 아니면 협상 결렬이야.”  대답 못하는 나를 보더니 놈은 더욱 흥분하여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며 판결을 내리는 판사가 판사 봉을 내리치는 것처럼 자신의 손을 다른 한 손으로 내리치고, 두 손을 한껏 올려 흔들어 대며 격변을 토했다. 거기에 대답 못했다고 진 거라는 억지까지 더해지니 어처구니가 없어 더욱 할 말이 없어졌다.

 “하아…. 알았다. 우리 집에서 먹자. 일단 주문하고 배달 오는 동안 집 좀 치우고, 도착하면 연락할게. 어차피 너도 우리 원룸 살지? 연락처나 알려줘.”

 “나 핸드폰 없는데.” 

 진짜 이놈은 가지 가지 한다. 현대인이 핸드폰도 없이 산다니. 생활이 가능하기나 한가?

 “아. 그럼 뭐! 어떻게 연락하라고?” 짜증이 절로 흘러나왔다.

 “어차피 같은 건물이니깐 오토바이 소리가 나면 내가 알아서 찾아갈게. 몇 호야?”

 “303호.”

 “옥께이! 역시 한 주의 마무리는 치맥이지! 이따 봥.” 발랄하게 손을 흔들며 대답하고는 놈은 역과 편의점 샛길로 발길을 옮겼다. 짧은 대화였지만, 놈과 대화하고 나니 기가 쫙쫙 빠져나갔다. 일단 내 집에서 먹기로 했으니 나름대로 대비해야 한다. 이런저런 작전을 세우며 나의 저렴하고 좁은 집으로 들어왔다.


 들어오자마자 일단 싱크대에서 식칼을 꺼내 베개 밑에 숨겨두었다. 쓸 일이 없어야 할 텐데…. 그래도 만일을 위해 대비해 놔야 한다. 그리고 치킨과 맥주를 배달 주문하고 대충 집을 치우고 머릿속으로 이런저런 대비책들을 생각했다. 우선 침대 머리맡에 내가 앉아야 쉽게 칼을 꺼낼 수 있다. 칼은 위험한 상황에서 도주하기 위한 위협용으로 최소한으로만 써야 한다. 핸드폰은 증거 수집을 위해 녹음 애플리케이션을 켜고 언제라도 경찰에 전화할 수 있도록 항상 오른손 옆에 둬야 한다. ‘나도 성인 남성이다. 그렇게 호락호락당하지 않을 것이다.’ 속으로 심기일전하는 사이에 치킨이 배달 완료되었다. 집에 치킨을 들이자 신기하게도 곧바로 ‘똑똑’ 노크하는 소리가 이어졌다. 심호흡을 크게 하고, 정신을 가다듬은 후에 핸드폰의 녹음 애플리케이션의 빨갛고 동그란 버튼을 누르고 문을 열었다. 뭐가 그리 좋은지 배실배실 웃고 있는 놈이 지금 내 앞에 서 있다.


이전 08화 08. 계속 주위를 맴도는 뻔뻔한 놈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