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후조리원 천국을 나와 우리 작고 소중한 내 새끼들 다칠라 살얼음판 위를 기어가듯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온 순간 낙원에서 현실로 돌아온 것이 피부에 확 와 닿았다. 이제 우리 힘으로만 이 가녀린 존재를 돌봐야 한다. 임신 초기부터 출산까지 육아 관련 서적을 5권이나 읽은 나였지만, 코로나로 산후조리원 출입이 통제되어 실습은 해본 적이 없었다. 그래도 만반의 준비를 하고, 예민하고 꼼꼼한 손놀림을 타고 나서인지 나름 잘 해내가기 시작했다.
당시 나는 출산을 기점으로 하여 3개월의 육아휴직을 냈다. 내가 육아휴직을 낸 이유는 단 한 가지였다. 수면교육! 아내 혼자 쌍둥이를 보려면 적어도 수면권이 보장되어야 한다. 아내보다 교육에 일가견 있는 내가 수면교육 교관이 되어 3개월 내로 수면교육을 끝내겠다는 일념 하에 우리는 3개월 동안 7시를 기준으로 맞교대하며 육아를 담당하였다. 당연히 저녁 7시부터 아침 7시 타임은 나의 시간이었다. 안 힘들다면 거짓말이지만 생각보다 힘들지는 않았다. 사실 회사에 출근하지 않는 행복이 더 커서 그랬을 것이다. 그렇게 힘들고도 행복했던 3개월이 지나고 나는 임무를 완수하고 회사로 복직을 하였다.
복직 후에 우리는 한동안 평온하고도 위태로운 시간을 보냈다. 그 시간동안에도 나는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았다. 풀지 못한 숙제를 풀어야 했다. 해결되기는커녕 갈수록 문제가 심화되는 세상에서 풍족한 부모를 만나지 못한 우리 아이들이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나는 회사 일을 하고 돌아와서는 아이들을 씻기고 재운 후 열심히 책을 들추고 여기저기 검색하며 우리 아이들이 행복하게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연구하였다. 그러나 아내는 아이들 먹이고 재우는 일 외에는 침대에 널브러져만 있었다. 그러기를 1년쯤 지났을 때 곪을 대로 곪은 내 감정이 터지고야 말았다. “나는! 회사일도 하고! 애들도 돌보고! 애들 행복하게 자라게 열심히 노력하는데! 당신은 애들 돌보는 거 외에 대체 하는 일이 뭐야?!” 터진 감정은 역류하여 입으로 쏟아져 나왔다. “아 나도 좀 쉬게! 왜 이렇게 날 괴롭히는 거야?! 나 좀 냅둬!” 아내가 대꾸한다.
가족계획으로 대립할 때 나는 분명히 말했다. “갈수록 어려워지는 환경에서 우리의 형편으로는 아이들을 보호해주기는 어려워. 그래서 우리는 아이를 낳는다면, 아이들이 행복하게 지낼 수 있게 방법을 찾아야 해. 그만큼 우리가 더 공부하고 노력하고 성장해야 한다는 말이야. 할 수 있겠어?” 당연히 아내는 “Yes!”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화장실 갈 때 마음 다르고 나올 때 마음 다르다 했던가. 아내는 출산 이후로는 아이들 돌보는 것 외에 아무런 성장을 하지 않고 있었다.
우리 부부는 이 시기에 참 많이도 싸웠다. 왜 싸우는지도 모를 때도 있었다. 아마 회사 일에 치이고, 육아에 치이고, 쉬는 시간 없이 해답을 찾기 위해 자기계발하고, 나를 위한 시간이 없이 바쁘게 나날을 보내던 나의 분노와 원망은 아내를 향했던 것이었을 터다. 거의 매일 피 터지던 어느 날 차분하게 아내를 앉혀 놓고 대화를 시작했다. “나는 남편으로서, 아빠로서, 가장으로서 1년 후, 10년 후, 20년 후를 바라보며 열심히 달리는데, 당신은 아직도 아이 낳기 전에 머물러 있다고 느끼지 않아? 부부라면 응당 같은 곳을 바라보고 같은 길을 걸어야지 않겠어?” 다행히 이 물음이 아내의 마음을 울리게 했던 모양이다. 지금은 책도 많이 읽고, 육아 공부도 열심히 하고 있다.
부모의 의무는 아이가 인간의 궁극적인 목표를 이루게 도와주는 것이다. 즉, 아이가 자신의 행복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쉬지 않고 성장해야 한다. 이 단순한 이치에 도달하기까지 나는 너무 많은 고민을 하며 헤매고 방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