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갖고 싶어." 갑작스러운 아내의 말에 순간 나는 머리가 멍해졌다. 당시 우리는 유산한지 몇 개월이 채 지나지 않은 상황이었기에 아내의 갑작스러운 말은 나를 당황케 하였다. 황급히 가출한 정신의 머리채를 움켜쥐어 다시 끌고 돌아와 대답했다. "뭐라고?"
아내는 완고했다. "아이를 가져야겠어. 완전한 가정은 아이가 있어야 이루어지는 거야." 다시 한번 나의 가슴은 지하로 번지 점프했다 튕겨 올라왔다. 아이가 생겼을 때의 중압감과 무게는 이미 겪을 만큼 겪어봤다. 가슴 아픈 유산이었지만 솔직한 말로 유산이 되어 홀가분한 마음마저 들 정도였다.
나는 다시 우리 부부에게 아이가 필요한가 고민을 해봤다. 답은 '아니오.'였다. 나는 평소에 "자식 낳을 바엔 건물 낳는 게 천만 배 낫지!"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던 사람이었다. 우리 부부의 월급은 둘이 먹고 살며, 집 대출금 갚으며 1년에 해외여행 1~2번 다녀오기 딱 적당한 정도였다. 아이를 키우기에 우리 부부의 벌이는 너무 작고 아담했다. 삼신할매가 지어준 인연이라면 모를까 계획해서 아이를 낳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나의 생각을 정리하여 아내에게 말하자, "아이가 없으면, 내가 너무 외로워."라는 대답이 날아와 가슴을 쑤셨다. '내가 그렇게 부족한가?'라는 생각이 들며 서운한 감정이 물 밀듯이 몰려왔다. 다시 정신을 가다듬고 생각을 해보니 그럴 만도 할 거 같았다. 아마 아내가 자라온 환경과 이번 유산이 크나큰 심경의 변화를 주었을 거라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나는 마지막으로 확인하고자 입을 열었다. "사실 당신이 외롭다는 이유로, 아이가 있어야 완전한 가정을 이룬다는 이유로 아이를 가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 오히려 자신의 욕구를 채우기 위한 이기심에서 비롯된 생각이라고 할 수 있어. 그래도 당신이 왜 그런 말을 하는지는 이해할 수 있어. 그런데 이 사실은 확실히 알아둬야 해. 우리 아이들은 아마 우리가 겪은 세상보다 더 험난하고 열악한 세상에서 살아가게 될 거야. 그래도 아이를 낳고 싶어?" 아내는 대답했다. "응." 한숨이 절로 나오는 대답이었다.
다시 나는 생각을 했다. 이 정도 이야기 했는데도 아내가 완고하다면 이제 아이를 계획해서 낳아야 한다. 아이를 낳아 키우는 건 문제가 아니었다. 우리집 강아지 흰둥이도 5마리나 낳아서 키웠다. 개도 하는데 나라고 못하랴? 문제는 우리의 이기심 때문에 세상의 빛을 보게 된 아이가 다가오는 초고령화 사회, 환경오염, 고물가, 범죄 등 갈수록 악랄해지는 사회 문제를 품은 세상에서 고생할 것이 눈에 선하다는 점이었다. 게다가 우리는 딱 둘이 적당히 해소하며 살 정도의 벌이로 가난하진 않았지만, 풍족하지도 않았다. 우리의 아이를 행복한 사람으로 성장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이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우선 해결되지 않는 문제는 차치해두고, 우리는 생산공장이 잘 돌아가도록 준비하기에 돌입하였다.
1년 정도 준비 후 각종 검사를 받았다. 세상일 마음대로 되는 거 하나 없다더니 당시 내 나이 30세, 아내 25세의 젊은 나이인데도 불구하고 사이좋게 둘 다 난임이라고 한다. 결국 우리는 과학의 힘을 빌려 체외수정을 시도하기로 했다. 다행히도 체외수정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져 수정란 5개가 준비되었다. 준비된 수정란을 이식하는 날 의사가 물었다. “쌍둥이 괜찮아요?” 당연히 괜찮다. 우리는 난임 판정을 받고 체외수정을 준비할 때부터 일타쌍피의 효율로 쌍둥이를 계획했다. 당연히 대답은 “네!” 입을 모아 외쳤다. 그랬더니 “세쌍둥이가 되어도 난 모릅니다.”라고 의사가 대꾸했다. 순간 나도 모르게 놀리는 의사의 코를 쥐어박을 뻔 했다.
다행히도 이식된 3개의 수정란 중에 2개가 착상이 되었다. 이란성 딸쌍둥이가 아내의 뱃속에 고이 자리를 잡은 것이다. 임신 기간 중에도 순탄치만은 않았다. 임신 초기에 아내는 유산 방지 주사를 계속 맞아야 했고, 임신 중기에 한 번, 임신 말기에 한 번 응급실 신세를 져야 했다. 위기는 사람을 뭉치게 해준다 했던가. 임신 기간 중에 우리 가정에는 사랑과 평화가 넘쳐흘렀다. 길고도 짧았던 임신 기간이 끝나고 마침내 예정일이 도래했다.
분만실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장난치고 웃고 떠들었는데, 아내 혼자 분만실에 들어가고 대기실에 홀로 남자 불안감이 엄습하였다. ‘나 혼자 남으면 난 어떻게 하지?’ 다리가 절로 떨리고 손톱이 알아서 입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혼자 불안해 할 시간도 얼마 허락 받지 못하고 곧장 첫 번째 울음소리가 났다. 간호사의 호출에 달려가 보니 첫째 별이가 우렁차게 울고 있었다. 이것저것 설명하는 간호사의 설명도 안 들리는데 동영상 찍을 정신이 있겠는가? 다시 호흡을 하고 정신을 가다듬고 준비하여 둘째 빛이와 첫 만남의 순간은 또렷하게 영상으로 기록할 수 있었다. 내가 아빠라니! 믿기지 않는다! 아직도 온 몸과 정신과 마음이 얼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