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날 해봐라 책에 나온 대로 육아가 되나.
정신일도 하사불성(精神一到 何事不成)
백날 공부해봐라 책에 나온 대로 육아가 되나.
내가 회사에서 짬짬이 공부할 때 몇몇 어른들이 내게 하던 말이다. 고등학생 이상의 자녀를 둔 어머니이신 분들도 있고, 아버지이신 분들도 있었다. 저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누군가에게는 진리이고, 누군가에게는 얼토당토않은 소리이기 때문이다. 나는 저런 말을 하는 어른들에게 반박하지 못했다. 그들은 겪었고, 내가 겪어보지도 않은 일을 어떻게 틀렸다고 주장하겠는가? 겉으로는 “네~ 그렇군요~.”하고 넘겼지만, 속으로는 ‘될 때까지 노력이나 제대로 해봤나?’하고 비웃었다.
정신일도 하사불성(精神一到 何事不成) 정신을 한 곳으로 모으면 어떤 일을 이루지 못하겠는가! 20대 초반 가방끈이 짧은 나는 높은 취업 문턱을 넘기 위해 이 정신 하나로 버텨왔다. 낙방할 때마다 ‘아 겨우 그것밖에 못해?’하며 스스로 다그치며 부족한 점을 분석하고 보완하며 갈증 난 연가시처럼 나를 갈아 마셨다. 가까운 친지나 가족들마저 어렵다고 다른 일 찾아보라며 회의적이던 회사에 보란 듯이 취업준비 3년 만에 입사했다. 그 해 경쟁률은 47:1이었다. 학창 시절을 열심히 놀며 시간을 소모했던 나에겐 생각보다 오래 걸렸지만 굉장히 높은 성취를 이룬 것이라 만족한다. 이런 성취를 이루고 나니 느낀 점이 하나 있다. 미지의 영역이 아닌 한 불가능은 없다.
나는 군대 전역 후 6개월간 운전면허를 따고 회포를 푼 후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당시 나는 현재 다니고 있는 회사를 목표로 공부를 시작했다. 당연히 학창 시절에 개차반이었던 내가 너무 높은 목표를 잡은 것은 아닌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더욱 높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전혀 걱정되지 않았다. 그냥 막연히 2년 내로 끝낼 수 있겠다는 생각과 자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공부는 내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중학교부터 수업을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던 나는 첫날 처음으로 6시간의 학원 수업을 경청하여 들은 다음 날 두통을 호소하며 결석을 했다. 어찌어찌 적응해 나가며 1년이 지났다. 내 실력은 제자리걸음인데 인문계 고등학교 나오고 대학교 나온 친구들은 나를 앞질러 나가기 시작했다. 점점 답답함이 쌓여가던 중 같이 학원에서 아르바이트하며 공부하던 형이 나에게 공부하는 데에도 공부법이 있다는 것을 알려줬다. 공부하는 데에도 공부하는 법에 대해 공부해야 한다니! 굉장히 충격적이었다. 잠시 취업 공부는 미루고 공부하는 법에 대해 2개월 정도 심도 있게 공부를 했다. 내가 공부한 공부법을 믿고 실력이 폭발할 때까지 밀어붙였다. 내가 가장 약했던 영어는 위편삼절(韋編三絕, 공자가 주역을 열심히 읽어 책의 가죽끈이 3번이나 떨어짐)의 고사처럼 책의 가운데가 뚝 끊어져 찢어질 정도로 회독하며 달달달 외우며 책을 씹어 먹었다. 그럼에도 6개월 동안 계속 제자리걸음이었다. 같이 공부하던 형, 누나들도 놀렸다. “야 공부법 그거 효과 있는 거 맞아?” 실제로 내가 들은 말이다. 농담이라는 걸 알기에 웃어넘겼지만, 답답한 마음에 화가 났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실력은 천천히 완만하게 오르지 않고 계단식으로 폭발하였다. 이 시기부터 나는 정신일도 하사불성(精神一到 何事不成)을 외치며 될 때까지 파는 성격이 생겼다.
“백날 공부해봐라 책대로 육아가 되나.”하는 사람들은 굉장히 잘못된 생각을 품고 있는 것이다. 내가 못했다고 남도 못한다고 생각하다니 굉장히 오만스러운 사고방식이 아닌가? 우물 안 개구리라는 말이 딱인 사람들이다. 출산 후 100일만에 나는 그들의 콧대를 꺾어줄 수 있었다. 아내가 임신하고 있을 당시 굉장히 인상 깊은 책을 한 권 읽었다. <프랑스 아이처럼> 이 책에서 말하기를 프랑스에서는 아기가 태어나고 빠르면 6주, 보통 4개월, 최악의 경우 6개월만에 밤을 하지 못하면 이웃들이 굉장히 걱정한다고 한다. 프랑스에서는 아기가 4개월이 되었는데도 밤을 하지 않는 것을 아기에게 문제가 있거나 부모에게 문제가 있는 것으로 여긴다고 했다. 밤을 한다는 것은 밤에 아기가 깨지 않고 통잠을 자는 것을 말한다. <프랑스 아이처럼>을 읽고 나는 결심했다. 우리 쌍둥이 별이와 빛이를 100일 내로 밤을 하게 하겠다고.
아내 혼자 37주만에 미숙아로 태어난 쌍둥이를 잘 돌보려면 밤잠이라도 보장이 되어야 한다. 수면을 통해 심신을 재충전해야 아기와 엄마 모두의 몸도 마음도 건강할 것이다. 수면교육을 위해 나는 회사에 3개월의 휴직까지 내고 그 3개월동안 밤에 잠을 자지 않았다. 여러 책을 읽으며 수면 교육법에 대해 공부하였다. 같이 눕거나 신체를 접촉한 채로 입으로 쉬~쉬~소리를 내며 토닥이는 쉬닥법, 안아서 아이가 진정이 되면 다시 눕혀서 재우는 안눕법, 아이가 스스로 잠들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는 퍼버법, 여러 종류의 수면 교육법이 있었다. 그러나 사실 수면교육법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수면교육보다 더 실질적으로 중요한 것은 규칙적인 생활과 될 때까지 밀어붙이는 뚝심이다. 아이의 생활 패턴, 습성을 관찰하고 파악하여 아이의 욕구를 제때 충족시켜주며 편안한 환경을 조성해주어 아기의 안정을 도모해야 한다. 우리는 열심히 쌍둥이 빛이와 별이를 먹이고 재우며 그 패턴을 관찰하고 기록하고 분석을 하였고, 별이와 빛이가 익숙해지고 안정을 찾을 때면 우리가 원하는 패턴으로 살살 유도하였다.
생후 50일경부터 별이와 빛이가 규칙적인 생활이 몸에 어느정도 배고, 우리도 아이들을 이끄는 데에 많은 요령이 생겨 본격적으로 수면교육에 들어갔다. 나의 전략은 처음에는 쉬닥법, 다음에는 안눕법, 최종적으로 퍼버법을 진행하는 것이었다. 점진적으로 강도를 높이는 방법을 택하여 '우리는 노력했고, 최종적 잠에 들고 말고는 너희들에게 맡긴다.'는 고육지책(苦肉之策)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서 학대에 가까운 퍼버법은 쓰지 말걸 그랬다며 후회한다. 하지만 당시에는 그게 최선의 길이라 생각했다. 변명이지만 먹이고 놀아주고 재운 후로 해야 할 일이 태산이었기 때문이었다. 아이가 자는 동안 밀린 설거지와 집안일을 하고 나면 바로 또 먹일 시간이다. 여유를 찾기 힘든 시기였다.
수면교육을 시작 한 후 많은 부모들이 수면교육에 실패하는 이유에 대해 공감이 많이 되었다. 여유 없는 극한의 상황에서도 아이가 자지러지게 우는데 안아주지 않을 부모가 몇이나 있겠는가? 나도 몇번이나 마음이 요동쳤다. 그래도 감정에 휩쓸려 원칙이 흔들리면 그동안의 고생은 물거품이 된다. 될 때까지 밀어붙여야 한다. 이것만 뚫으면 한결 나아진다는 믿음 하나로 버티며 나는 정신을 모으고 우는 아이 앞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결국 생후 100일만에 별이와 빛이는 저녁 7시에 자서 아침 7시에 일어나는 쾌거를 이루었다. 뿐만아니라 부모의 도움없이 혼자 누워 자는 방법을 깨우쳐 따로 재우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
내게 책육아가 되냐며 거들먹 거리던 사람들은 우리 아이들이 7시면 알아서 잔다는 소리를 들으면 하나같이 이렇게 말한다. "아기들이 되게 순한가봐요?" 그려면 나는 그저 거만한 미소를 띄며 대답하지 않는다.
정신일도 하사불성(精神一到 何事不成) 단지 나의 능력과 시간, 노력과 정성이 부족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