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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연솔 May 08. 2021

더 이상 아름다운 카네이션은 없어

어버이날이 아름답지 않은 사람들을 위하여


어버이날에 카네이션을 가슴에 달아드려야 한다는 걸 깨닫고 나서

처음으로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았던 기억을 떠올려 본다.

생화가 아닌 직접 색종이로 접어 만든 카네이션에 시침핀을 달아 가슴팍에 달아드렸었다.

그리고 교복을 입고 난 이후로는 꽃바구니를 식탁 위에 올려놓는 것으로 대신했다.

성인이 된 이후에도 아마 마찬가지였다.

사실 엄청난 효도를 하진 못했다.

어버이날에 별다른 기억이 없을 정도로 무감각했던 걸 보면 얼마나 무심한 딸이었는지.

엄마가 병원에 입원했던 해는 감히 카네이션을 생각하지 못했었다.

하필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는 매 순간이었다.

암을 발견한 시기가 너무도 늦었기 때문에 무언가를 살뜰히 챙기기도 슬퍼할 시간도 없었다.

엄마와 병원을 다니는 내내 나는 울고 싶을 때 화장실에 들어가서 눈물을 흘렸다.

한참을 소리도 없이 눈물을 훔치다가 나와서는 다시 아무 일 없는 척 엄마를 마주했다.

그래서인지 장례식장에서는 눈물도 잘 나지 않았다.

염을 다하고 관속에 있는 엄마에게 가족들 모두 엄마에게 한 마디씩 하라고 했을 때

덤덤하게 '엄마, 걱정하지 마. 여긴 나한테 맡겨도 괜찮아. 내가 동생도 아빠도 돌볼게'

라고 말할 수 있었던 건 씩씩해서가 아니었다.

그저 눈물마저 말라버린 느낌이었다.

하지만 때때로 눈물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쏟아져 나오는 먼지처럼 흐른다.

엄마를 운구차에 싣고 집 앞을 한 바퀴 돌 때 나도 모르게 조금만 천천히 지나가 달라고 말하며 엉엉 울었다.

힘들게 이사해서 엄마가 좋아라 했던 집이었다.

집안의 작은 조명부터 하나하나 엄마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어느 날처럼 엄마는 잠시 입원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려 했지만 같이 돌아올 수 없게 된 게 너무 슬펐다.

그래서 누가 뭐래도 그렇게 떼를 쓰듯 모든 걸 챙겨 나왔는지도 모르겠다.

엄마가 숨을 거두고 나서

병실에 있는 모든 걸 그대로 집에 가져가겠다고 바리바리 챙겨 나왔다.

아빠는 뭣 하러 들고 가냐며 버리라고 했지만 그게 잘 안됐다.

엄마가 먹으려 했던 토마토, 자두, 집에서 챙겨 온 김치, 엄마가 입던 스웨터.

그 모든 걸 버리고 오는 게 엄마를 버리고 오는 것 같았다.

하지만 장례식이 끝나고 외할머니 역시 다시 한번 나에게 말했다.

죽은 사람 물건 함부로 너무 갖고 있으면 마음 정리를 못해.

엄마 물건 정리해야 해.

마음이 다 부서져 본 적 있는지 묻고 싶다.

부서지고

짓이겨지고

뭉개지면

제발 그냥 함부로 건드리지 않았으면 싶다.

마음이 마음대로 괜찮아지지 않으니까.

그러나 내 마음과는 달리 억지로 흘러가는 것들이 많아졌다.

일주일 뒤 아빠는 내가 집을 비운 사이 엄마의 모든 걸 마음대로 버렸다.

엄마의 체취가 남아있어 애써 남겨두었던 옷 한 장도 버렸다.

왜 그 옷마저 버렸냐고 그건 버리지 말지. 버려도 나중에 버리지. 하면서 울자

슬픔에 빠져있는 네가 바보 같다고 했다.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는 거냐고.

밤이 오면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아서

엄마가 있는 곳을 상상하다가

다시 집안 벽을 둘러본다

어슬렁거리며 부엌도 한 번 돌고

괜히 엄마가 자던 안방도 슬쩍 보고 나면

어느새 푸르스름하게 날이 밝아온다

미칠 것 같은 심정으로 매 순간 고비를 넘겨왔다.

그 고비를 어떻게 넘겨왔는지 넌 알지 못하지.

새로운 사람과 그저 시작하면 그뿐이니까 영원히 아픔에 갇혀버린 사람의 마음 따위는 안중에도 없지.

선생님은 오늘이 어버이 날인데 혹시 감정 기복이 있지는 않은지 물어왔다.

난 사실은 이 시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차라리 나에게 남겨져 있는 어버이가 아예 없었으면.

누군가 아빠마저 죽여줬으면.

선생님께 사실대로 말하고 싶다.

아빠를 그저 죽이는 상상을 해서 죄책감을 갖는 정도의 착한 내가 아니라

아빠가 진짜로 죽었으면 싶은 이 마음이 문제라고.

선생님은 행복한 가족만 있었으면 좋겠지만

본인이 상담을 하면서 오늘 같은 날 정말 별의별 가족답지 않은 가족을 만난다고

꼭 아빠를 사랑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가족도 아름답지 않은 가족이 있으니까요.

그래, 아름답지 않은 가족이야 우리는.

너를 생각하면 나는 마음이 지옥에 갇혀버려.

누가 그러더라 복수는 불구덩이에 상대를 밀어 넣는 게 아니라 자신도 같이 떨어지는 거라고.

그러니 오늘도 머리로만 그려보는 거야.

네가 그러했듯 남들 앞에서 아무렇지 않은 척 착하게 말할 거야.

아빠를 자꾸 해하고 싶은 상상이 들 정도로 아빠를 미워해요.

하지만 난 정말 네가 죽기를 바라.

가슴속에 카네이션을 깊숙하게 밀어 넣으면 온통 핏빛으로 물 드는 걸 보고 싶어.

더 이상 너에게 아름답게 달아줄 카네이션이 없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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