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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yj Aug 20. 2024

고마리

  고마리는 양지바른 곳에서 보기 좋게 피어나 서로의 가시를 비비고 의지하며 살아간다. 사람에게는 음식과 약을, 짐승에게는 먹이를 내어주며 장소를 가리지 않고 잘 자란다. 물을 맑게 하는 능력치도 있고 분홍빛 자태도 아름다워 그야말로 누구에게나 반가운 존재이다. 워낙 무성히 자라 고사체를 퇴비로도 사용할 수 있어 실용성도 있다. 그러니 시골에서는 인간과 자연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곳에는 늘 고마리 군락이 있다.      

 하지만 이런 고마리도 도시에서는 보기 어렵다. 도시의 사람들은 고마리를 먹지 않고 마구잡이 피어나는 모양새도 도시와 어울리지 않아 무리 지어 살아갈 곳도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홍수에 휩쓸려도 금세 도랑 가득 군락을 만들어내는 생명력도 여기서는 무용지물이다. 그러니 도시의 고마리는 잡초처럼 초라하고 외롭다. 우울증도 이런 도시의 고마리와 같다. 더 이상 무리를 지을 수 없는 고마리처럼 쓸쓸하고 외로운 병, 그것이 우울증이다.                

   고마리의 전설은 고려 고종 19년, "고만이"라는 계집아이가 원으로 끌려갔다가 간신히 집으로 돌아온 이야기에서 시작된다. 고만이는 차자식을 잃은 아비를 돌보다 이듬해 붓도랑에서 죽었고 그자리에서 피어난 풀이 고마리이다. 신기하게도 그 풀은 뽑아도 뽑아도 계속 자라났고 여름이 되면 피멍 같은 꽂을 피웠다고 한다.      

  생각해 보면 얼마나 무서운 전설인가? 원에 끌려간 고만이도, 자식을 잃은 아비에게도 얼마나 잔인한 현실이었을까? 그리고 그 자리에 피어난 고마리라는 생명체는 또 얼마나 끔찍한가? 하지만 다행히 피멍 같던 꽃은 잔인하지 않았다. 아비를 돌보던 고만이처럼 사람들에게 음식을 내어주고 농사를 도와주며 마실물도 주었다. 고마리를 말린 "고교맥"은 한약재가 되어 아픈 이들도 돌보았다. 그렇게 따뜻하던 고마리가 지금은 도시에서는 살 곳을 잃었다.               

   나는 자주 고마리를 생각한다. 피멍 같은 우울증이 나를 죽이지 않도록 나도 고마니처럼 곁을 내어주고 싶다. 도움도 주고 사랑도 나누고 싶다. 하지만 현실은 도무지 생기지 않는 의욕과 자꾸만 느려지는 행동들로 스스로를 돌보기도 벅차다. 그래도 나는 조그만 기부를 하고 길거리에서 쓰레기를 줍는다. 고마리처럼 모두에게 도움이 될 수는 없지만 조금이라도 부대끼며 살고 있다.                 

 지금도 도시는 고마리가 살 곳을 내어주지 않는다. 우울증을 앓는 사람들도 서식지를 잃은 고마리처럼 살아갈 곳이 없다. 그저 언젠가 군락이 되어 살아가길 기다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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