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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yj Aug 20. 2024

불안 이기기

  불안을 이기는 방법은 없다. 세상의 불안은 시간과 함께 진화해서 도저히 피할 수 없는 형태로 사람들을 괴롭히기 때문이다.

 알랭드보통은 누구도 우리를 주목하지 않는다는 것은 인간 본성에서 나오는 가장 열렬한 욕구의 충족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이라고 했다. 이것은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는 것을 반증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은 사람들 속에서 질투하고 절망감을 느낀다. 알랭드보통은 이러한 복잡한 감정들이 불안을 만든다고 했다. 말인즉슨, 인간은 혼자서는 살 수 없고 무리와 함께하는 것도 괴롭다는 것인데... 도대체 어쩌라는 것인지 모르겠다. 서울에서만 13만 명의 히키코모리가 있다는데 낙오된 사람들은 2-3평 남짓 방으로 사라지라는 것인가?     

 생각해 보면 주변에는 참으로 많은 히키코모리가 있다. 타인보다 자신에게 집중하라 조언하던 수많은 심리학자들도 풀지 못한 숙제, 은둔형 외톨이들. 사회가 낳은 지독한 외로움이다. 하지만 나는 그들이 끊임없이 사회와 소통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사람들이 만든 게임을 하고, 사람들이 만든 음식을 먹으며, 사람들이 만든 인터넷 속에서 수많은 문명을 홀로 여행한다. 그러니 보이게 소통하지 않을 뿐, 그들은 항상 우리 속에서 살고 있었다.


  나를 포함한 대다수의 사람들은 새로운 것이 두렵다. 알지 못하는 상황이 겁이 나고 처음 보는 사람들이 무섭다. 새로운 전염병이 나타나면 중증도와 상관없이 세상은 shutdown이 된다. 사회에서 통용되지 않는 새로운 경험이나 사고는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나와 다른 피부색은 경계하고 위협적이지도 않은 사람들을 피해 도망친다. 그러니 방안에만 있어야 하는 히키코로리들이 세상을 돌아다니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들이 가져올 새로운 사회적 문제가 두렵고, 내면의 잠자던 불안을 부추길까 봐 무서운 것이다. 그래서인지 방안의 외로움들이 세상으로 나올 수 있는 길은 잘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늘 불안과 함께한다. 쇼핑하는 사람들은 통장 잔고를 걱정한다. 대학을 못 간 낙오자가 될까 무섭고 취업을 못한 찐따가 될까 두렵다. 내 주치의의 공허한 눈에서도 불안은 읽을 수 있다. 물론 언어의 혼란 같은 이상한 불안도 있다. 나는 어린아이에게 반말을 하고 나보다 족히 20살은 어린 어른에게는 존댓말을 한다. 친하지도 않은 학교친구에게 반말을 하지만 사회에서 만난 어색한 친구에게는 존댓말을 사용한다. 어느 순간 극존칭을 써야 하고 어느 순간 경어를 사용하며 어느 때 반말을 써야 하는지 너무 복잡하다. 나는 빠른 생일이라 동갑인 후배가 언니라고 부른다. 하지만 만 나이가 통용되는 지금은 처음 보는 사람에게 나이를 설명하기 어렵다. 세상은 나에게 이런 사소한 변화도 적응하지 못하냐고 핀잔을 주며 나의 불안에 불은 지핀다.     

 그러니 세상의 사소함도 적응하지 못하고 세상이 제공한 안전한 길에도 올라서지 못한 나를 포함한 수많은 루저들은 이도저도 못한다. 단지 길 위의 사람들을 쳐다보고만 있을 뿐이다. 알랭드보통은 사회가 필요로 하는 능력을 가지지 못할 때 세상은 가난이라는 고통과 수치라는 모욕을 함께 준다고 했다. 그러니 길밖에서 느끼는 감정은 고통과 수치뿐. 수많은 루저들은 그 고통을 줄이기 위해 세상과의 단절을 시도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꼭 알아야 한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세상과의 단절이 아니라 그 길에 함께 하는 것이란 걸.


  물론 그 길 위의 사람들도 쉽지는 않다. 언젠간 내려와야 할지 모른다는 불안과 그곳에서 버텨야 한다는 숨 막히는 현실, 세상이 만든 규정과 관념, 그리고 능력주의. 이런 원초적인 불안이 그들을 괴롭힌다.       

  우리가 불안을 이기는 방법은 없다. 히키코모리는 타인뿐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도 존재하고 있다. 그러니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길밖의 사람들에게 길을 내어주고, 길 위의 사람들에게는 쉬어갈 수 있는 의자를 만들어주는 것이다. 그것이 불안과 함께 하는 유일한 방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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