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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yj Aug 20. 2024

이름

집 앞 공원에는 알록달록 꽃들이 피었다. 언젠가 한참을 쭈그려 앉아 그것을 바라본 적이 있다. 무슨 꽃인지 이름도 알 수 없던 푸르스름하던 꽃들. 도도히 얼굴을 치켜세우지만 줄기는 가늘고 이파리는 힘이 없다. 아마 관심받지 못해 말라가는 중이었던 것 같았다. 나는 그 꽃들에게 이름을 물었다. "너는 이름이 뭐야?".


생각해 보면 꽃들은 이름을 가진 적이 없다. 장미는 장미이고 국화는 그냥 국화이다. 도도한 척 얼굴을 치켜세우던 그날의 꽃들도 무슨 꽃이라는 명사일 뿐, 자기의 이름을 가진 적이 없을 것이다.  기억하길, 그날 꽃들은 줄기 가득 벌레들의 괴롭힘도 받고 있었다. 거뭇 거리던 작은 생명체는 간신히 붙들고 있던 꽃들의 자존심을 건드리며 그 위를 희롱하듯 기어 다니고 있었다. 마치 남아있는 一抹의 생명도 빼앗아가려는 듯. 나는 문득 궁금했다. 저 징그러운 생명체의 이름은 뭘까? 아마 저 검은 생명체도 그저 명사일 뿐이겠지.     


돌이켜보면 나의 하루도 명사 속이었다. 누구의 선배였고 누구의 아줌마였으며 누구의 이모였던 명사 속에서 내 이름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스멀스멀 올라오는 검은 벌레의 자잘한 괴롭힘을 견디며 한껏 얼굴을 치켜세우던 푸른 꽃이었다. 발악하며 버티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질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게 나였다.       

우울은 자책과 가학이 만들어내는 자기혐오이다. 그리고 혐오가 깊어지면 머릿속에도 심해가 생긴다. 그곳은 지독한 어두움과 가늠할 수 없는 공포만 존재하는 인생의 종착점이다. 견딜 수 없는 불쾌함이며 쓸쓸한 연민이기도 하다. 나는 지금도 자주 그곳에 있다. 그래서인지 세상의 많은 불쾌함과 혐오에게 동정을 느낀다. 가장 아름답던 쓸쓸한 청춘들을 동정하고, 가지지 못할 부유함과 죽음밖에 없는 초라한 생명들도 동정한다. 아마 동정받지 못하는 것은 나뿐 일 것이다.     

 

그래도 다행히 나에게는 이름이 있다. 심해에서도 누군가 내 이름을 불러주면, 절대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던 그곳에도 길이 생긴다. 그 소리를 따라 나는 아직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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