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자비(Self-compassion)란 힘든 순간 자신을 비난하는 대신 스스로를 이해하고 돌보려는 것이다. 미국의 심리학자인 Kristin Neff는 자기자비를 자신이 경험하는 부정적인 것들에 대하여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게 되는 일반적인 것으로 스스로를 이해시키는 것이라고 하였다. 즉, 부정적인 경험에 압도되지 않도록 자신에게 친절을 베푸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오스카 와일드의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평생로맨스의 시작”이라는 말과도 맥락을 같이 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자신에게 베푸는 친절을 참으로 어렵다. 사람들은 항상 가까운 것에 가혹하기 마련이고 그래서인지 가장 못되게 구는 것도 바로 자신이다.
세상에는 불안과 우울을 극복하는 수만 가지의 방법들이 있다. 행복을 강요하지 말고, 남들과 비교하지 말고, 스스로의 삶을 즐기고... 누구나 아는 것들이지만, 사실은 너무 어려운 일들이다. 행복은 언제나 멀리 있고, 남들은 늘 그렇듯 앞서간다. 삶을 즐기기에는 눈앞의 과제들도 너무나 많다. 그러니 실패가 두려운 사람들은 스스로를 옥죄는 삶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학자들은 자신이 먼저 달라져야 한다고 하지만 인간들이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것은 실로 불가능에 가깝다. 사실은 인간이 삶을 선택하고 즐길 수 있도록 사회가 먼저 변해야 한다. 물론 이것도 매우 어려운 일이다. 마치 토마스 모어의 소설 속 "경제는 공산주의, 정치는 민주주의, 교육과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는 이상적인 나라"인 유토피아처럼 허무맹랑하다. 사실 토마스 모어도 라파엘의 유토피아를 "상당수 내용이 너무나 터무니없어 보인다는 느낌을 받았다"라고 표현하며 세상에는 유토피아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역설하였다.
하루 평균 42명이 자살하는 나라. 비자발적 고독. 비자발적 자살. 비자발적 자해. 비자발적 고립... 수많은 비자발적 속에서 자기자비란 불가능처럼 보인다.
그래도 오늘도 사소한 행운에 하루를 걸어본다. 뜻밖에 웃음 짓는 일도 생기고, 무심히 지나치던 길거리 공연에서 좋아하던 노래가 들리고, 단골 식당의 신메뉴도 맛보고... 별거 아닌 사소함에 하루를 걸어본다.
결국 인생은 크든 작든 언젠가는 소소해질 경험들로 하루를 채우며 살아가기 마련이고 Kristin Neff의 말처럼 대부분은 일반적인 것들이다. 고바야시 사토미가 카모에 식당에서 소소하게 삼재를 견디듯 우리의 고통들도 그렇게 지나가기 마련이다. 그러니 너무 심각해지지 말고, 너무 진지해지지 말고, 너무 깊어지지 말아야 한다. 그저 가볍고 소소하게 지나가도록 시간을 내어주면 그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