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척박한 자원과 불안정한 지리적 위치로 오랜 기간 수많은 역경과 고난을 겪으며 살아남았다. 그러고 그 세월만큼의 갈등으로 곳곳에서 몸살을 앓고 있다. 나이와 성별, 사회적/경제적 지위, 가정 내의 갈등 등 너무나도 많은 서열과 규율도 존재한다.
물론 이러한 것들은 나름의 성과가 있었다. 조직에 최적화된 인재들을 양성했고, 효율을 최대화하고 손실도 최소화할 수 있었다. 이것은 부족한 자원을 대체해 오로지 인력으로만 이루어낸 성과이다. 하지만 이러한 방법이 언제까지 통할지는 미지수이다. 이미 바닥인지도 모르겠다.
사회가 만든 규율은 가정으로도 연결된다. 여성에게서 시댁은 "시금치로 먹지 않겠다"는 희화화된 거부감을 만들었고 시어머니와 며느리라는 나이와 위계로 엮인 불편한 관계를 생성했다. 경제활동을 하는 남성위주의 사회는 여성에게서 결혼과 동시에 직업적인 단절과 육아라는 숙제를 안겨주었고 자신의 희생이 곧 가정의 행복이라는 이상한 가치관을 심어주었다. 가정의 불화는 "집안에 여자가 잘못 들어왔다"는 어처구니없는 편견은 아직도 사회 곳곳에 암암리에 잔재하고 있다. 불행히도 이러한 사회적 현상은 현재에도 이어지며 여성이 결혼을 쉽게 결정하지 못하는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다.
물론 이것은 남성에게도 마찬가지의 부담으로 주고 있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며 원하지 않는 직장을 다니고, 아내의 사회적 고립에 대한 죄책감, 부유하게 키우지 못한 자녀에 대한 미안함, 그리고 자식의 꿈을 위해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살아야 하는 서러움을 남겼다. 마치 원시시대의 사냥처럼 생존을 위해 회사를 다니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억압에 400조나 되는 예산 20년 동안이나 투입했어도 저출산이라는 현상을 막을 수 없었다. 젊은 이들은 아이대신 반려묘나 반려견을 선택했으며 인구감소와 지역소멸 또한 무서운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이제 대한민국은 50년 뒤 인구가 3500만 명으로 줄어들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100년 뒤는 아무도 알 수가 없다. 언젠가는 외국인이라는 개념 또한 사라질 것이다.
전문가들은 지역의 기업을 활성화, 고용의 안정성, 여성의 사회진출, 맞벌이 가정 지원, 육아대책 등 다양한 제도와 대책을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꿈쩍도 하지 않은 채 자신의 길만을 가고 있다.
인종, 가치, 연령, 젠더, 직업... 사회는 수많은 다양함이 모여 하나의 구성원을 만들어 간다. 지금의 사회는 이러한 모든 것에 열려있어야 한다. 결혼을 하지 않는 출산, 다양한 형태의 사회적 결합, 입양의 보편화... 다름의 가치를 인정하는 열린 사회가 되어야 한다. 물론 '모든 아이는 국가가 키우고 가르친다'는 보편적 가치의 확립도 필수이다. 이제는 함께하지 않으면 이루어낼 수 있는 것은 없다.
유교에서 비롯된 가족주의와 연령자 우선주의라는 전통적 가치는 변하고 있다. "사회적 급변기"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생의 주기에 따른 비슷한 과업이 아니라 개인의 속도에 맞춘 새로운 과업이 필요하다.
인류 역사상 사회가 안정적이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불안정을 극복하며 살아남았다. 지금도 살아가고 있고 앞으로도 살아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