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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새타니 1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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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yj Sep 08. 2024

코와 귀와 몸... 그리고 죽음

세상은 온통 악취와 사람들이 내지르는 비명으로 가득했다. 곳곳에 넘쳐 나는 사체들은 수없이 실어 나르는 엠블런스로도 감당이 되지 않았고  세상은 종말을 맞아하는 듯 일상은 완전히 파괴되었다. 이제 뉴스에서도 사라진 기상 캐스터를 찾지 않았으며, 종말에 대한 종교계 인사들의 간증으로만 채워지고 있었다. 지금의 상황에서는 도둑질은커녕 살인도 죄가 아니었다. 모든 것은 법으로 통제되지 않았고 겁에 질린 사람들은 자살과 살인.. 그리고 수만 가지의 범죄로 스스로의 불안을 달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혼란 속에서 사라졌던 설희가 돌아왔다. 


"설희야. 어떻게 된 거야?" 민정이 걱정스럽게 물었지만 설희는 대답이 없었다. 그녀의 눈은 텅 비어 있었고 그 어떤 것에도 무심했다. 세상은 미쳐 날뛰며 시끄러웠지만 이상하게도 설희를 둘러싼 시간은 멈춘 듯 조용했다. 

"설희야. 대답 좀 해봐." 민정이 다그쳤지만 설희는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설희야. 너까지 왜 그래? 나 진짜 무서워. 그리고 나 이제 출근 안 해. 근데 오늘은 네가 왔다고 해서 겨우 온 거야. 그러니까 며칠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얘기 좀 해줘." 설희는 민정의 말에는 관심 없이 그저 시계만 쳐다보고 있었다. 시곗바늘은  저녁 6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설희는 고개를 한번 갸웃거리더니 이윽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다음 방송은 내가 할게. 원래 내 시간이잖아."

"뭐? 지금 방송이 문제야? 너 찾느라 경찰에서도 난리였어. 그리고 요즘 누가 날씨에 신경이나 쓰니? 기상 방송 안 한 지 벌써 일주일째야." 민정의 하소연에도 설희는 아무렇지 않아 했다. 

"다음 방송은 내가 할게. 반드시 해야 해." 

"설희야..." 민정은 눈물을 글썽이며 설희의  손을 잡았다. 순간 설희의 손이 너무나 차가워 움찔했다. 

"너 손이..." 민정이 놀라서 뭔가를 말하려던 순간,  7시 뉴스 담당 PD가 설희를 불렀다. 

"설희씨. 다행히 별일이 없었네. 원하면 날씨 방송을 해. 보는 사람은 없지만." PD는 설희가 사라진 적이 없었다는 듯,  이상하리만치 건조하게 말했다.  

"네." 설희도 무심히 대답했다. 


그것이 설희의 마지막 방송이었다. 전 국민이 사라졌던 기상캐스터의 귀환에 일말의 희망이라도 가지고자 했지만 그녀는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날씨 방송에서 스스로 목을 그어버린 것이다.


"날씨를 전해드립니다. 오늘의 날씨는 어제와 변함없습니다. 내일도, 모레도, 그리고 앞으로도 덥겠습니다. 뜨거움이 모든 것들이 썩게 하고 악취가 온 세상을 뒤덮어도 사라졌던 겨울은 돌아오지 않겠습니다. 이제... 저도 사라진 겨울처럼 여러분 앞에서 마지막으로 인사를 드립니다." 설희의 목소리는 높낮이 없이 차분했다. 그녀가 사라졌다는 사실도 잊은 채 멍하니 TV를 보던 사람들은   "이제 저는 사라졌던 불쏘시개가 되어 뒤늦은 인연을 만나러 지옥으로  갈까 합니다."라는 말을 끝으로 스스로 목을 그었을 때, 그리고쏟구치는 피에도 아무렇지 않은 듯 미소를 짓던 그녀의 얼굴에서... 껍데기만 남은 박제인간 이상의 공포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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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서도 오랜만에 방송되는 날씨 방송을 지켜보던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一波萬波 퍼져가고 있었고 기다렸다는 듯이 노인이  깨어났다. 마치 긴 낮잠을 잔 듯 평온한 얼굴이었다. 

 

노인은 모든 것이 예전처럼 되풀이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새타니가 송연을 태워 죽였듯 설희도 세상의 악취와 사람들의 비명 속에서 스스로를 제물로 만들 것이라는 것을... 이제 더 이상 무엇을 하지 않아도 세상은 스스로 멸망할 것이다. 새타니는 인간을 누구보다 투명하게 알고 있었고 모든 것의 중심에 김선이었다.


노인은 새타니에 대한 기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가 왜 자신에게 집착하는지도, 왜 그렇게 죽은 어미와 자신에 대한 한풀이를 원하는 지도... 새타니는 도겸이 자식의 불행과 나락을 똑똑히 보기를 원했다. 자식을 죽여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최악의 고통도 고스란히 감당하게 하고 싶어 했다. 그리고 인간의 혀, 눈, 귀, 코, 몸, 생각을 덮어 자신을 외면했던 세상이 스스로 멸망하게 하는 것도 잔인하게 지켜보고자 하였다. 지옥에서 살아남은 새타니는 처절한 복수를 원하고 있었던 것이다. 


노인은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그것은 사라진 연인에 대한 슬픔이나 곧 맞이하게 될 죽음 때문이 아니었다. 핏덩이로 죽은 아이가  새타니로 환생한 것이 자신 때문이라는 것을 드디어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누군가의 파레이돌리아가 현실이 되어 버린 것. 그리고 그것이 가능하게 한 것은 바로 자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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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레이돌리아: 일반적인 영상이나 소리 등의 자극이 전혀 관련이 없는 패턴으로 느껴지는 심리적 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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