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야기
"예솔아 이 닦았어? 얼른 옷 입어!"
팔찌 만들기 키트를 만지작 거리는 아이의 뒤통수에 따끔하게 꽂아 말했다.
내가 원하는 속도와는 무관하게 아이는 슬로모션 영화라도 찍듯 느릿하게 움직였다.
'어후 속 터져'
그냥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돌려버렸다.
"엄마! 나 피카추 티셔츠 입을래~"
꺼내놓은 원복을 바닥에 팽개친 둘째가 찡찡거렸다.
"그거 빨아서 축축해! 피카추도 목욕해야지"
아이를 낳은 이후로 나의 아침은 늘 원치 않는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었다.
끊임없이 흔들리고 심장이 벌렁거렸다.
잠깐의 멈춤에 심호흡이라도 할라치면
금세 나는 다시 빠른 속도로 꼭대기에 끌려 올라갔다.
첫째가 먼저 문을 나섰다.
그리고 나는 둘째를 달래 원복을 입혔다.
아이의 손엔 방금 출력한 피카추 도안이 들렸다.
밤에 스쳐간 비에 젖은 낙엽이 지저분하게 길에 나뒹굴었다.
나는 행여나 지렁이를 밟을까 걸음마다 눈을 떼지 못했다.
"엄마! 소나무는 왜 소나무야?"
"응?"
아이의 순진한 질문에 눈을 들어 소나무를 올려봤다.
쨍하게 높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눈보라도 두렵지 않다는 위용을 뽐내며 서 있었다.
순간 안에 쌓인 구정물들이 훅 쏟아져 나왔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한 번 본 것만으로도.
”엄마~ 소나무에서 우유가 나오나? 그래서 소나무야?“
대답 없는 엄마를 향해 애써 고민한 아이의 무구한 상상이 유쾌하게 닿았다.
"어?! 그 소…나무?"
나는 아무런 가드 없이 훅을 한 대 맞은 듯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렇게 온 얼굴 근육을 써 웃고 나니
내 안에 눌려있던 행복이, 기쁨이 고개를 내밀었다.
"하하! 우리 예준이 정말 멋진 생각을 떠올렸네! 엄만 한 번도 그런 생각을 안 해봤어"
"이상하다. 소나무는 우유가 없는 것 같은데"
갸웃거리는 작은 고개가 너무도 소중했다.
아픔과 회환으로 남은 나의 지난날들과 오늘은,
거창한 깨달음이나 로또만이 약이 되는 건 아니다.
잠깐 올려 본 하늘.
아이의 웃음 한 조각.
그리고 그걸 느낄 수 있는 작은 감각 하나.
그거면 되었다.
답답함을 바람결에 하늘로 훅 날려버린 마음은
오늘을 버틸 수 있을 만큼 가벼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