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 이광수 [무정]
만일 선형으로 하여금 이 영채의 신세를 보게 하면 단정코 자기와는 딴 세상 사람으로 알렷다. 즉, 자기는 결단코 영채와 같이 되지 못할 사람이요, 영채는 결단코 자기와 같은 되지 못할 사람으로 알렷다. 또는 자기는 특별히 하늘의 복과 은혜를 받는 사람이요, 영채는 특별히 하늘의 앙화와 형벌을 받는 사람으로 알렷다.
그러하므로 부자가 가난한 자를 압시하고 천대하여 가난한 자는 능히 자기네와 마주서지 못할 서람으로 여기고, 길가에 굶어 떠는 거지들을 볼 때에 소위 제 것으로 사는 자들이 개나 도야지와 같이 천대하고 기롱하여 침을 뱉고 발길로 차는 것이다.
그러나 부자 조상 아니 둔 거지가 어디 있으며, 거지 조상 아니 둔 부자가 어디 있으리오. 저 부귀한 자를 보매 자기네는 천지 개벽 아래로 부귀하여 천지가 없어질 때까지 부귀할 듯하나, 그네의 조상이 일찍 거지로 다른 부자의 대문에서 그 집 개로 더불어 식은밥을 다툰 적이 있었고, 또 얾 못하여 그네의 자손도 장차 그리 될 날이 있을 것이다.
그(선형)는 아직 난 대로 있다. 화학적으로 화합되고 생리학적으로 조직된 대로 있는, 말하자면 아직도 실지에 한 번도 써 보지 아니하고 곳간에 넣어둔 기계와 같다. 그는 아직 사람이 아니로다.
그는 예수교의 가정에 자라남으로 벌써 천국의 세례는 받았다. 그러나 아직도 인생이라는 불세례를 받지 못하였다. 소위 문명한 나라에 만일 선형이가 났다 하면 그는 어려서부터 - 칠팔 세부터, 혹은 사오 세부터 시와 소설과 음악과 미술의 이야기로 벌써 인생의 세례를 받아 십 칠팔 세가 된 금일에는 벌써 참말 인생인 한 여자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선형은 아직 사람이 되지 못하였다. 선형의 속에 있는 '사람'은 아직 깨지 못하였다. 이 '사람'이 깨어 볼까말까는 하느님밖에 아는 이가 없다.
이런한 것이 '순결하다' 하면 '순결하다' 고도 할지요, '청정하다' 하면 '청정하다' 고도 할지나, 그러나 이는 결코 '사람'은 아니요, 다만 장차 '사람'이 되려 하는 재료니, 마치 장차 조각물이 되려 하는 대리석과 같다.
이 대리석에 정이 맞고 끌이 맞은 뒤에야 비로소 눈 있고 코 있는 조각물이 됨과 같이 선형 같은 자도 인생이란 불세례를 받아 그 속에 있는 '사람'이 깬 뒤에야 비로소 참사람이 될 것이다.
이러한 계집(노파)은 어려서부터 가르치고 가르치더라도 악인이 되기 쉬우려든, 하물며 평생을 더러운 죄악 세상에서 지냈으므로 '짐승 같은 마음'은 자랄 대로 자라고 '사랑스러운 마음'은 눈을 뜰 기회가 없었다. 그는 일찍 선이란 말이나 덕이란 말을 들어 본 적이 없었고, 선한 사람이나 덕 있는 사람을 접하여 본 적이 없었다.
그러므로 노파의 생각에, 세상은 다 자기네 사회와 같고 사람은 다 자기와 같다 하였다. 그러므로 자기는 결코 남보다 더 악한 사람이라고도 생각지 아니하였고, 하물며 남보다 더 못생긴 사람이라고도 생각하지 아니하였다. 차라리 그도 이 따금 남의 일을 보고 '저런 악한 사람이 있는가.' 하기도 하였다. 아니...... 하기도 하였을 뿐더러 항용 선하노라 자신하는 세상 사람과 다름이 없었다.
그러므로 저 노파는 '참사람' 이라는 것을 볼 기회가 없었고, 또 보려 하는 생각도 없었고 따라서 참사람이 되려는 생각을 하여 본 적도 없었다.
형식은 그 방에서 무슨 향내가 나는 듯이 생각하였다. 그리고 방바닥을 짚은 형식의 손은 따뜻한 맛을 깨달았다. 이는 그 기생의 몸에서 흘러나온 따듯함이라 하였다. 이윽고 기생이 어린아이 모양으로 뛰어들어오며,
"지금 어머니 건너오십니다. 그런데 아침차에 오셨어요?"
하고 말과 얼굴에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빛이 보인다.
형식은 '다 같은 사람이로구나.'하였다. 따뜻한 인정은 사람 있는 곳에 아무데나 있다 하였다.
노파는 확실히 이 기생의 속에서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깨끗한 영혼을 보았다. 그리고 형식이가 그 어린 기생을 보는 눈에는 조금도 더러운 욕심이 없다 하였다. 그리고 형식은 자기가 흔히 보지 못하던 종류의 사람이라 하였다. 그래서 형식이가 이 어린 기생에 대하여 '하시오.' 하고 존경하는 말을 쓰던 것이 처음에는 시골뜨기와 같고 무식한 듯하더니 도리어 점잖고 거룩하다 하였다. (중략)
형식은 생각하기를 자기의 인생에 그렇게 미묘하고 자릿자릿한 쾌미를 깨닫기는 처음이라 하였다. 그 어린 기생의 눈으로서는 알 수 없는 광선을 발하여 사람의 정신을 황홀하게 하고, 그 살에서는 알 수 없는 미묘한 분자가 뛰어나와 사람의 근육을 자릿자릿하게 하는 것이라 하였다. (중략)
그러고 그 이유는 그 어린 기생의 얼굴과 태도와 마음의 아름다움과 피차에 아무 욕심도 없고 아무 수단도 없고 아무 의심도 없고 서로서로의 영과 영이 모든 인위적 껍데기를 벗어버리고 적나라하게 융합함에 있다 하며, 또 이렇게 맛보는 즐거움은 하늘이 사람에게 주신 가장 거룩한 즐거움이라 하였다.
형식은 혼자 놀랐다. 노파의 '평생 기생 노릇만 할 수도 없으니까.' 하는 말을 듣고, 그러면 김현수에게 억지로 붙이려 한 것이 영채의 일생을 위하는 뜻이던가 하였다. 노파가 영채를 죽인 것이 다만 천 원 돈은 위하여 한 악의가 아니요, 영채의 일생을 위하여 한 호의인가 하였다.
형식의 정신에는 슬픔과 괴로움과 욕망과 기쁨과 사랑과 미워함과, 모든 정신 작용이 온통 한데 모이고 한데 녹고 한데 뭉치어, 무엇이 무엇인지 구별할 수가 없었다. 비겨 말하면 이 모든 정신 작용을 한 솥에 집어넣고 거기다가 맑은 물을 두고 장작불을 때어 가며 그 솥에 있는 것을 홰홰 뒤저어서 온통 녹고 풀어지고 섞여서, 엿과 같이 죽과 같이 된 것과 같았다.
그러므로 이때에 형식의 정신 작용은 좋게 말하면 가장 잘 조화한 것이요, 좋지 않게 말하면 가장 혼돈한 상태였었다.
오늘에야 비로소 사년급 학생들의 눈에 비치인 자기를 분명히 깨달은 것이다. 자기가 전심력을 다하여 사랑하여 오던 자가 일조에 자기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줄을 깨달을 때에 그 슬픔이 얼마나 할까. 아마도 인생의 모든 슬픔 중에 '사랑의 실망'에서 더한 슬픔은 없을 것이다.
문명이라 하면 과학, 철학, 종교, 예술, 정치, 경제, 산업, 사회 제도 등을 총칭하는 것이다. 서양의 문명을 이해한다 함은, 즉 위에 말한 내용을 이해한다는 뜻이니, 김 장로는 무엇으로 서양을 알았노라 하는고.
서양 선교사들은 이러함을 안다. 그러므로 그네는 김 장로를 서양을 흉내내는 사람이라 한다. 이는 결코 김 장로를 비방하여서 하는 말이 아니라, 김 장로의 참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서양 사람의 문명의 내용은 모르면서 서양 옷을 입고, 서양식 집을 짓고, 서양식 풍속을 따름을 흉내가 아니라면 무엇이라 하리오.
이리하여 조선도 점점 신문명을 완전히 소화하게 될 것이다.
오직 한 가지 위험한 것이 있다. 그것은 김 장로 같은 이가 자기의 지식을 너무 믿어 학교에서 배워 신문명을 깨달아 알게 되는 자녀의 사상을 간섭함이다. 자녀들은 잘 알고 하는 것이언마는 자기가 일찍 생각하지 않던 바를 자녀들이 생각하면 이는 무슨 이단같이 여겨서 기어이 박멸하려고 애를 쓴다.
이리하여 소위 신구 사상의 충돌이라는 신문명. 들어올 대에 의례히 있는 비극이 일어나는 것이다. 자기가 생각하지 못하던 바를 생각함은 낡은 사람이 보기에 이단 같지마는 기실은 낡은 사람들이 모르던 새 진리를 안 것이다.
아들은 매양 아버지보다 나아야 하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진보라는 것이 있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낡은 사람은 새 사람이 자기 아는 이상 알기를 싫어하는 법이니 신구 사상 충돌의 비극은 그 책임은 흔히 낡은 사람에게 있는 것이다.
여학생은 영채의 신세 타령을 듣고,
"그러면 지금도 그(형식)를 사랑하시오?"
사랑하느냐 하는 말에 영채는 가슴이 뜨끔하였다. 과연 자기가 형식을 사랑하였는가......, 알 수가 없다.
자기는 다만, 형식이란 사람은 자기가 찾아야 할 사람, 섬겨야 할 사람으로 알았을 뿐이요, 칠판 년래로 일찍 형식을 사랑하는지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다만 어서 형식을 찾고 싶다. 어서 만나면 자기의 소원을 이루겠다, 만나면 기쁘겠다 하였을 뿐이다.
여학생은 힘 있는 목소리로,
"첫째, 영채 씨는 속아 살아 왔어요. 이형식이란 사람을 사랑하지도 아니하면서 공연히 정절을 지켜 왔어요. 부친께서 일시 농담삼아 하신 말씀 한 마디 때문에 영채 씨는 칠판 년 헛된 절을 지킨 것이외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위해서, 피차에 허락도 아니한 사람을 위해서 절을 지키는 것이 헛된 일이 아니야요? 마치 죽은 사람, 세상에 없는 사람을 위해서 절을 지키는 것이나 다름이 있어요? 영채 씨의 마음은 아름답지요, 절은 굳지요. 그러나 그뿐이외다. 그 아름다운 마음과 그 굳은 절을 바칠 사람이 따로 있지 아니할까요. 하니깐 지금 영채 씨가 그이를 사랑하시거든 지금부터 그에게 몸과 마음을 바치실 거시요."
실로 그 동안 영채는 다른 남자의 모양이 생각에만 떠나와도 큰 죄로 여겨서 제 살을 꼬집어 억제하였다. 이러므로 지금껏 영채는 독립한 사람이 아니요, 어떤 도덕률의 한 모형에 지나지 못하였다. 누에가 고치를 짓고 그 속에 들어 엎딘 모양으로, 영채도 알 수 없는 정절이라는 집을 짓고 그 속을 자기 세상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다가 이번 사건에 그 집이 다 깨어지고 영채는 비로소 넓은 세상에 뛰어나왔다.
더구나 기차 속에서 병욱을 만나매 자기가 지금껏 유일한 세상으로 알아 오던 세상이 기실 보잘것없는 허깨비에 지나지 못하는 것과, 인생에는 자유롭고 즐거운 넓은 세상이 있는 것을 깨닫고, 이에 비로소 영채는 자유로운 사람이 되고, 젊은 사람이 되고, 젊고 어여쁜 여자가 된 것이다.
영채의 가슴에는 이제야 비로소 사람의 피가 긇기 시작하고 사람의 정이 타기를 시작한다. 영채는 자기가 마음이 전혀 변하여진 것을 생각한다.
마치 애초부터 어둡고 좁은 옥 속에서 지내다가 처음 햇빛 있고, 바람 불고, 꽃 피고, 새 우는 세상에 나온 것 같다. 영채는 거문고를 타고 바이올린을 울린다. 그러나 그 소리가 모두 다 새로운 빛을 띤다. 그리고 영채의 눈에는 기쁨과 슬픔이 섞인 듯한 눈물이 핑그르 돈다.
"그렇지마는 선형 씨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선형 씨의 진정으로는?"
"저도 그렇게 생각하지요."
"아내가 되었으니까 지아비를 사랑합니까, 또는 사랑하니까 아내가 됩니까?"
이것도 선형에게는 처음 듣는 말이다. 그래서 자기도 무슨 뜻인지 모르면서,
"마찬가지 아닙니까?"
'마찬가지' 라는 말에 형식은 놀랐다. 그것이 어찌하여 마찬가질까. 이 계집애는 아직 그런 것을 생각할 줄을 모르는구나 하였다. 그래서 일언이폐지하고,
"한마디로 대답해 줍시오...... 저를 사랑하십니까?"
"아니요, 다만 그 일만 아니야요. 이 세상이 내 원수가 아니야요? 내 부모를 빼앗고, 내 형제를 빼앗고, 내 어린 몸을 실컨 희롱하고...... 그러다가...... 그러다가 마침내 정절을...... 내 정절을 빼앗고...... 그러고는 일생에 생각하던 사람은 아랑곳도 아니하고...... 이렇게 구태 나를 없애고 말려는 세상에 내가 구태 붙어 있으면 무엇해요. 세상이 나를 미워하면 나도 세상을 미워하지요. 세상이 나를 싫다 하면 나도 세상을 버리고 달아나지요. 하늘로 올라가지요."
하는 울음 섞인 말에 병욱도 부지불각에 눈물이 흘렀다.
"그러니까 말이다...... 그만치 세상한테 빼앗겼으니깐 또 세상에게 좀 찾아가져야지. 내 것을 주기만 하고 말아! 네가 이십 년이나 고생을 했으니까 그 값을 받아야 아니하겠니?"
"값이 무슨 값이오. 하루라도 더 살아 있으면 더 빼앗길 뿐이지."
"아니다, 왜 그래...... 이제부터는 찾는다. 아직도 전정이구만 린데 왜 어느새 실망한단 말이냐. 살 수 있는 대로 힘껏 살면서 찾을 수 있는 대로 찾아야지...... 사업으로 찾고, 행복으로 찾고...... 왜 찾을 것도 찾지도 않고 죽어?"
그러나 이제 생각하여 보건대 자기의 선형에게 대한 사랑은 너무 유치한 것이었다. 너무 근거가 박약하고 내용이 빈약한 것이었다.
형식은 오늘 저녁에 이것을 깨달았다. 깨달으매 슬펐다. 마치 자기가 인생 경력을 다 들여서 하여 오던 사업이 일조에 헛된 것인 줄을 깨달은 듯한 실망을 맛보았다. 그와 함께 자기의 정신의 발달한 정도가 아직도 극히 유치함을 깨달았다. 자기는 아직 인생을 깨달을 때도 아니요, 따라서 사랑을 의논할 때도 아님을 깨달았다.
그러므로 자기가 오늘날까지 여러 학생에게 문명을 가르치고 인생을 가르친 것이 극히 외람된 일인 줄도 깨달았다. 자기는 아직도 어린아이다. 마침 어른 없는 사회에 처하였으므로 스스로 어른인 체하던 것인 줄을 개달으매 스스로 부끄러운 생각도 난다.
형식은 생각에 이어 생각을 한다.
나는 조선의 나갈 길을 분명히 알았거니 하였다. 조선 사람의 품을 이상과 따라서 교육자의 가질 이상을 확실히 잡았거니 하였다. 그러나 이것도 필경은 어린애의 생각에 지나지 못하는 것이다.
나는 아직 조선의 과거를 모르고 현재를 모른다. 조선의 과거를 알려면 우선 역사 보는 안식을 길러 가지고 조선의 역사를 자세히 연구해 볼 필요가 있다. 조선의 현재를 알려면 우선 현대의 문명을 이해하고 세계의 대세를 살펴서 사회와 문명을 이해할 만한 안식을 기른 뒤에 조선의 모든 현재 상태를 주밀히 연구하여야 할 것이다.
조선의 나갈 방향을 알려면 그 과거와 현재를 충분히 이해한 뒤에야 할 것이다. 옳다, 내가 지금껏 생각하여 오던 바, 주장하여 오던 바는 모두 다 어린애의 어린 수작이다.
더구나 나는 인생을 모른다. 내게 무슨 인생의 지식이 있는가. 나는 아직 나를 모른다. 근본적으로 내가 무엇인지는 설혹 알지 못한다 하여도 적더라도 현재에 내가 세상에 처하여 갈 인생관은 있어야 할 것이다. 옳은 것을 옳다 하고, 좋은 것을 좋다가 할 만한 무슨 표준은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내게는 그것이 있는가. 나는 과연 자각한 사람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