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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무기 Oct 19. 2021

페루에서 경의선 철도까지

네 번째 인터뷰 - 9년 차 스케이터 신민철

페루에서 경의선 철도까지


9년 차 스케이터 신민철


"서프보드만 한 보드가 있고,

그게 제 키만 했던 거예요."



Q.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23살 신민철이라고 합니다. 저는 태어나서 20살까지 페루의 수도인 리마라는 도시에서 살다가 한국에 유학을 왔습니다. 페루에서 2년 정도 대학교를 다니다가 왔고, 한국에서는 홍익대학교 3학년에 재학 중입니다.


Q. 보드를 탄 경력은 어떻게 되시나요?

중간중간 쉬는 기간도 있었지만 8년 정도 타고 있습니다. 제가 쉽게 경력을 이야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이야기를 듣다 보면 아실 거예요. 저는 2011년 말에 보드를 타기 시작했어요. 중학교 때 친한 친구들이 모여있는 그룹에서 한 명의 친구가 어느 날 롱보드를 학교에 가져왔어요. 그걸 기회로 롱보드를 타보게 되었는데, 부드러운 느낌의 주행을 할 수 있는 거예요. 스케이트는 멋있으려면 트릭도 해야 하고, 그러 보면 다치는 일도 많았어요. 특히, 바퀴도 작아서, 주행에는 맞지 않아요. 페루는 도로 상황이 그렇게 좋지 않아서, 스케이트로는 주행 같은, 길을 다니는 용도로 쓸 수 없었거든요. 하지만 제가 고등학교까지는 차가 없었고, 페루 특성상 보드를 타고 다니면서, 통학하는 친구들이 많아서 저도 자연스럽게 주행이 가능한 보드에 끌렸던 것 같아요.


그렇게 친구 보드로 주행도 하고 그걸 영상으로 찍기도 하다 보니, 너무 가지고 싶어서, 엄마한테 졸라서, 보드를 사러 가게 되었어요. 그게 2011년 말이에요. 그래서 어머니랑 백화점에 가서 첫  롱보드 구입을 했어요. 보드 전문샵은 아니었고, 보드도 파는 편집샵에서 구입을 했었어요, 엘레멘트라는 회사의 롱보드였는데, 제 키만 한 보드였어요. 한국에서는 크루져 보드 하면 생각하는 게, 페니 보드 같은 조그만 보드를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근데 페루에서는 서핑에서 분화된 스케이트 보드이기에 만들어지는, 서프보드 모양의 보드를 다 크루져 보드라고 하거든요, 그리고, 그중에서도 긴 크루져 보드를 롱보드라고도 해요. 그렇다 보니, 서프보드만 한 보드가 있고, 그게 제 키만 했던 거예요.


어쨌든 그렇게 첫 보드가 생기고, 제 첫 스팟인 집 앞마당과 주차장에서 타면서 연습했어요. 롱보드도 다치고, 넘어지고 하긴 하는데, 그 주행의 부드러운 느낌 때문에 계속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다른 애들 보드를 사기 시작하면서, 학교 전체에 롱보드 유행이 시작됐어요. 돈 없는 친구들은 이제 스케이트보드에 바퀴를 롱보드 바퀴를 달아서 보드를 꾸려나갔어요. 그렇게 애들이랑 보드를 타고 바닷가도 가고 그러면서 더 친밀해졌던 것 같아요.


그렇게 관심이 많아지다가, 슬라이딩이라고 드리프트를 하는 영상을 봤어요. 그게 너무 하고 싶어서 이제 친구들이랑 슬라이딩에 필요한 내리막길이 있는 장소를 찾아다녔어요. 페루 리마에는 산이 거의 없는 평지 지대라, 장소를 찾기가 힘들었는데, 마침 친구 집 앞에 조그만 언덕에서 시작하게 되었어요. 그렇게 슬라이딩 같은 트릭을 배웠죠.


그렇게 친구들이랑 타기만 했는데, 우리도 모르게 1000명도 넘는 커뮤니티가 생긴 거예요. 그걸 알게 돼서, 거기서 사람들에게 여러 트릭도 배우고, 페스티벌, 대회도 나갔었어요. 한 이 년간 그렇게 여러 사람들이랑 타고, 여러 장소에 가다 보니, 다운힐을 배우게 됐어요. 다운힐이 진짜 높은 지대에서 속도를 즐기면서 내려오는 거예요. 롱보드는 주행에 특화돼있어서 속도를 진짜 빠르게 할 수 있는데, 그걸 이용한 경기이자 트릭인 거죠. 근데, 전용 트랙이 있는 것이 아니라서 차도에서 해야 했고, 속도가 너무 빨라서 하다가 많이 다치기도 해서 너무 무서웠어요. 실제로 무릎에 상처도 아직 가지고 있고요. 근데 그때쯤, 친구 한 명이 다운힐을 하다가 차에 치여 죽었어요. 그 이후로 잘 안 타고, 주행용으로만 타다가, 페루 기준으로 성인이 되고 차가 생겨서 2016년부터는 굳이 안 타게 되었어요.


이후에 한국에 와서, 여기는 언덕도 많고 그래서 사람들이 보드 많이 타겠다 싶어서 커뮤니티를 찾아봤는데, 있더라고요. 근데, 너무 홍대랑 멀어요. 분당, 경기도, 이렇더라고요. 차가 안 다니는 동네에서 밖에 못 타니까요. 그러다가 학교 동아리 중에 보드 동아리가 있어서 들어갔어요. 근데 여름에만 보드를 취급하는 스노보드 동아리였고, 스케이트보드를 배우는 중이던가, 당시 유행했던, 롱보드 댄싱을 배우는 친구들이 대부분이었어요. 다들 초심자기도 하고, 제 주행 스타일이랑은 안 맞았어요. 그러다 보니 안 나가게 되더라고요. 이런 과정이 있어서, 쉽게 9년의 경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긴 그래요.


Q. 홍대와의 연고는?

2014년에 홍대를 처음 방문했어요. 관광이 목적이기도 하고, 클럽이나 술을 먹기 위한 지역으로 왔어요. 내 동네라고 인식한 건 대학 와서, 제 집이 생기고 나서부터 인 것 같아요.    


Q. 홍익대가 서브 컬쳐, 유스 컬쳐의 중심지, 혹은 이러한 이미지로 대표되는 지역이라는 것에 동의하시나요?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시나요?

 2014년 처음 왔을 때, 한국에서 그래피티를 홍대에서 처음 보았던 기억이 나요. 저도 그래피티를 하기도 해서 관심 있게 보았고, 그것 때문에 홍대에 대해서 잘 모르는 상황에서도, 첫 인식이 약간 서브컬쳐적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느낌이 들었어요. 그 기억 때문에 2015년에 유학 준비하면서 한국에 미술 학원을 다니러 왔었는데, 그때 본격적으로 그래피티 보러 찾아다니고 그랬어요.  


Q. 그렇다면 그러한 홍대에서 보드 문화의 입지는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시나요?

보드 문화, 음악, 그래피티, 타투 이런 서브컬쳐는 한 사람이 동시에 여러 장르를 향유하고, 서로 연관돼있어서, 어떤 기준으로 말해야 할지 조금 힘드네요. 제 기준에서 본다면, 한국에서는 좀 적은 것 같아요. 관심 있는 사람이 봐도. 뭐 스케이트보드 같은 경우에는 어디서든 탈 수 있다는 특성이 있지만, 사실 너무 개인적인 스팟이고, 일시적일 때가 많아서, 정말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그 커뮤니티에 참여하고 그러는 경우가 아니면, 개인적 시각에서 보드의 입지를 다들 굉장히 작게 볼 것 같아요.


Q. 홍대 인근에서 보드를 탄 경험이 있으신가요? 관련 에피소드가 있다면 알려주실 수 있으신가요?

롱보드는 그냥 거의 스팟이 없어요. 주행용으로 타기에는 차가 너무 많고, 슬라이딩이나 다운힐을 할 곳도 마땅치 않아요. 저는 한 장소가 있는데, 경의선 철도길 중에서 산울림에서 신촌 가는 길에 다리가 있어요. 거기서 다리 밑으로 내려가는, 홍대입구역으로 내려가는 내리막에서 타긴 해요. 그나마 차가 안 돌아다녀서 프리라이딩용으로 내리막 내려가면서, 슬라이딩, 드리프트, 등을 연습해요. 또 그 근처 돌아다니면서 주행했어요.

기억에 남는 것은, 동아리랑 같이 여의도에 보드를 타러 갔었어요. 근데 애들 가르쳐주느라 제대로 타지도 못하고, 평지밖에 없는 곳에서 타다 보니까, 너무 내리막이 가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끝나고 남은 친구들이랑 경의선의 제 스팟에 와서 슬라이딩을 가르쳐줬어요. 진짜 오랜만에 슬라이딩을 했는데, 진짜 옛날에 넘어지고 다치면서, 연습했던 트릭이 한 번에 되는 거예요. 그 트릭이 뭐냐면 <check – backside - 180>이에요. Check이 보드가 길 방향으로 가고 있는 상태에서 90도를 돌고 돌아오는 거예요. <check – backside - 180>는 이제 check하고 다시 반대(backside)로 180도로 회전하는 것을 말해요. 아쉽게도 영상을 못 찍었어요.


"아 그리고 이건 홍대생만 알 것 같은데, 그 홍문관 언덕에서 올라가다 보면 사잇길을 통해서 Z동으로 가는 길이 내리막이에요. 거기도 다운힐을 할 수 있는 하나의 스팟이에요. "


Q. 타 지역 스팟과 다른 홍대 스팟만의 특별한 점이 있나요?

저는 주행이 가장 큰 파트라서, 아마 지역과의 친밀성이 크게 작용하는 것 같아요. 내가 어디로 가는지 알고, 어디에 어떤 지형이 나오는지 예상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특별함 인 것 같아요.


"그리고 이 동네는 제가 뭘 하든 별로 신경 안 ­­써요. 뭔가 개성이나 차이를 다른 곳보다는 쉽게 인정해주는 느낌이에요."


Q. 저는 중학교 때, 2013년부터 홍대 앞을 지나다녀왔는데, 그때는 길에도, 혹은 윗잔다리 어린이 공원이라는 홍대입구역 인근의 공원에서도 보드를 타고, 트릭을 연습하는 사람들이 자주 보였는데, 요즘에는 자주 보이지 않는 것 같아요? 이것에 대한 이유를 짐작하시나요?

제가 홍대에 오랜 기간 있지는 않았지만, 첫 번째 이유는 전동 킥보드인 것 같아요. 사람들이 보드를 타는 이유는 주행을 하고 싶은데, 자전거는 좀 일반적이고, 심심해서 보드를 타려고 해요. 근데 첫 번째로는 주행용치고는 어려워서 포기하게 돼요. 그리고 남은 사람들만 이제 보드를 타는데, 새롭고, 빠르고, 쉬운 전동 킥보드가 등장하면서 남은 사람들마저도 많이 빠져나가게 된 것 같아요. 심지어 자전거보다도 편해요. 저도 자동차가 생긴 이후로 보드를 안 타게 되었거든요.


Q. 보드를 타는 사람으로서 홍대의 보드 샵을 이용해보셨나요? 현재에는 많은 보드 샵이 사라지고 거의 팀버 샵 하나 남은 상황인데, 혹시 추억할만한 보드 샵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없어요. 저는 페루에서부터 보드 리셀(RE-SELL)을 했었거든요. 보드를 개조하고, 조립하는 경험이 많아서, 필요한 부품도 웬만해서는 다 알고, 구할 수 있었어요. 그리고 로컬 보드샵이 롱보드를 많이 취급하지 않아서, 가보긴 했는데, 크게 관심이 가는 것은 없었어요.


Q. 페루와 한국에서 모두 보드를 타셨었는데, 차이점이 있나요? 있다면 어떤 것인가요?

음.. 한국의 보드 문화는 스포츠적인 부분이 아니라 문화적인 부분으로 많이 생각하는 것 같아요. 보드를 액세서리, 소품으로 쓰는 사람도 많고, 보드 관련 디자인, 상품, 패션이 엄청 많은 거에 비해 보드, 그 자체에 대한 소비는 별로 없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페루에서는 그냥 아무 옷이나 입고, 보드를 타거든요. 보드를 타기 위해 어떤 옷을 입는다던가, 이런 것이 없고 관련 브랜드 이런 걸 중시하지 않고, 그냥 평소 입는 옷을 입고 나와서, 보드를 타고 학교를 가요.  


이렇듯 페루는 엄청 왔다 갔다 하는 주행용으로 많이 타고, 타온 역사가 길어서, 아빠뻘 사람들도 타고, 그것을 보고 배운 자식 세대들도 보드를 타거든요. 자전거 가르쳐 주듯이 가르쳐줘요. 보드가 유스 컬쳐인만큼, 어렸을 때부터 동경을 가지고 해 오는 경우가 많아요. 어렸을 때 배우면, 다치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적고, 그러다 보면 빨리 배우고, 그게 이제 삶의 일부가 되는 것 같아요.


근데 한국 아이들은 어릴 때 주로 계속 공부하고, 가르쳐 주는 사람도 없고, 보통 대학교에 와서 존재를 알고 시작하는 것 같아요. 아닌 사람도 있겠지만, 진짜 소수라고 생각해요. 신기한 점은, 여기는 스노보드, 스키는 타온 경우가 많은 걸 보니까, 아마 한국은 주기적으로 여가시간이 있다기보다는 단기적으로 휴가를 가고 그러다 보니까, 스키장을 가서 휴가를 즐기려고 하지, 익숙하지도 않고 장소도 애매한 보드를 집 앞, 도심 속에서, 탄다는 생각을 하기 쉽지 않을 것 같아요. 그런 차이가 보드 문화가 크기 힘든 환경을 만드는 것 같아요. 짧고 적은 휴가 기간에, 93%에 가까운 도시화가 진행된 한국에서 사는 사람들이 도시 속에서 있고 싶지 않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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