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9부

시선

by 이지선

지극히도 능동적인 수동성


오전 9시 17분. "이 약 평생 먹어야 한다고요?"

팔짱 낀 보호자. 그의 시선이 나를 해부한다.

나는 설명한다. 하라고 하니까.


"부작용은 없나요?" "완치는 안 되나요?" "다른 병원에서는..."

나는 대답한다. 그들이 원하니까.


오전 11시. 삭감 통보서. "부당청구 의심 건."

나는 소명한다. 심사평가원이 하라 하니까.


오후 2시. "친절도 평가 4.1점."

나는 더 웃는다. 숫자가 하라 하니까.


오후 4시. "왜 이렇게 대기시간이 긴가요?" "왜 진료시간은 짧나요?"

나는 사과한다. 고개를 숙이라 하니까.


오후 5시. 동료가 말한다. "그만해도 돼. 너무 애쓰지 마."


하지만 나는 더 열심히 한다. 매뉴얼을 외우고, 미소를 연습하고, 더 완벽한 설명을 준비한다.

말려도 한다. 그만해도 된다 해도 한다.

더 지극히, 더 열심히. 제도가 원하는 것보다 더.


우리는 스스로 선택한다고 믿는다.

웃음의 각도를, 설명의 깊이를, 고개 숙임의 정도를.

하지만 그 모든 선택지는 이미 정해져 있다.

환자가, 보험이, 평가가, 사회가 정한 틀 안에서.

우리는 지극히도 능동적으로 수동적이다.

아니, 더 정확히는 제도보다 더 제도적이 되려 한다.

요구받기 전에 먼저 굽히고, 비판받기 전에 먼저 사과하고, 명령받기 전에 먼저 순응한다.

우등생의 습성이 몸에 배어 만점보다 더 높은 점수를 받으려 한다.


저녁 6시. 마지막 환자.

"선생님도 힘드시죠?"

순간, 모든 시선이 역전된다. 보는 자가 보이는 자가 된다.


그 한마디에 목이 멘다.

수천 개의 시선이 만든 가면에 금이 간다.


시선의 무게

우리를 보는 눈들:

평가하는 눈

의심하는 눈

요구하는 눈

재단하는 눈


그 시선들이 쌓여 우리는 조각된다. 친절한 자판기로. 미소 짓는 설명 기계로. 사과하는 인형으로.

하지만 가끔, 아주 가끔. 누군가는 우리를 본다. 의사가 아닌, 인간을.


"의사는 대개 한다. 그렇게 타고났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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