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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화. '스물다섯 스물하나'

'우리'가 '우리'였기에 가장 아름다웠던

by 수 윤

TO. OOO


OO아 안녕.

OO이한테 편지는 오랜만에 써 보는 것 같네.

요즘은 잘 지내?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다.


아, 나는 잘 지냈냐고?

응. 나는 잘 지냈어.

여행도 다녀오고, 친구들 만나서 밴드도 하고, 동아리 LT도 다녀왔어.

교육봉사도 열심히 해서 거의 다 채웠고, 독후감도 써서 BELT도 땄어. 대단하지!?

이번 여름 방학 생각보다 꽤나 열심히 살았나 봐.


근데 있잖아 OO아.

매일 가슴속에 뭐가 하나 비어있는 기분이었다?

인생에서 중요한 한 사람이 사라진 기분이었어.

무엇을 해도 기쁘지 않고 행복하지 않았어.

무언가를 하면 할수록 너가 더 생각났어.


사실, 나 잘 지내지 못했어.

혼자서 어둠의 시간을 맞을 때 공허함이 찾아오면 그 어떤 거로도 막을 수 없었어.

너와 헤어지고 단 하루도 널 생각하지 않은 날이 없었어.

넌 내 생각은 안 나는지, 괜찮은지, 잘 지내는지 궁금했어.

네가 많이 보고 싶었어.

생각보다 나 그렇게 잘 지내지 못했어.


그때 혹시 기억나?

우리가 친구였을 시절 너의 집을 데려다주면서 처음으로 진지한 대화를 했던 날.

OO이도 김수윤의 사람이라고 너에게 얘기하면서 나도 너의 사람이란 걸 확인했던 날 말이야.

나는 지금 그게 아직 궁금해.

지금도 아직 난 너의 사람인지.

여전히 OOO의 사람 안에 내가 있는지.


OO아.

너는 있잖아.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본 사람들 중에 손에 꼽을 정도로 좋은 사람이야.

너와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수도 없이 그걸 느꼈어.

꾸밈없고 솔직한 OO이의 모습과 성격이 정말 이 사람이다라고 깨달았었어.

물론 첫눈에 너에게 반했지만, 그런 너의 순수한 모습에 난 두 번 반했나 봐.


대학교 전공 같은 조에서 처음 너를 만나고 조 안에서 마니또를 뽑았을 때

OO이가 내 이름을 뽑고, 내가 OO이의 이름을 뽑았었잖아.

그게 정말 놀랍지 않아?

서로가 서로의 이름을 뽑았다는 사실 말이야.


나는 있잖아.

우리가 서로의 이름을 뽑은 그 몇 퍼센트 확률의 인연을 놓고 싶지 않아.


사람과 사람이 만난다는 건 실로 대단한 일이지만

멀어질 사이는 아무리 가까이 지내도 결국엔 멀어지게 되어 있고,

이어질 사이는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결국엔 만나게 되는 것 같아.


모두가 그러더라고.

이미 지나간 인연은 돌아보지 말라고.

SNS나 책에서 다들 그렇게 말을 하더라.

물론 그게 맞는 말이라는 걸 알지만

내 성격 때문일까. 사람을 잃는 게 무서워.

좋은 사람을 잃는 게 무서워.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기 마련이며

헤어짐에 익숙한 사람은 없겠지만

아직 나는 이렇게 너를 보내고 싶지 않아.

우리의 연을 끊고 싶지 않아.

김수윤의 사람 안에 여전히 네가 있어.

이런 나의 성격이 답답하고 짜증 날 때가 있지만

너무나도 미운 이 신념이 틀리지 않았다고 믿어.


우리 헤어지는 날 네가 그랬잖아. 괜찮아지면 연락하라고. 대신 정말 괜찮아지면 연락해야 된다고. 안 괜찮은데 괜찮은 척 연락하면 안 된다고.


혹시 그 약속이 아직 유효하다면 말이야.

여전히 내가 OOO의 사람이라면 말이야.


천천히 다시 다가가도 괜찮을까.


다른 사람들은 급하게 다가와서 부담을 느꼈지만 신기하게도 나한테는 부담을 느끼지 못했다며. 네가 부담을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어. 설령, 네가 부담을 느낀다면 그땐 내가 멀어지는 게 맞는 것 같아.


지금까지 우리 모두가 함께한 추억의 시간은 결코 작지 않은 시간이지만. 그것보다 더 많은 추억을 너와 함께 그리고 우리 모두 함께 더 쌓고 싶어. 비록 그건 내 욕심이겠지만 아직 내가 너의 사람 안에 있다면 말이야.


"가장 청춘일 때 가장 찬란한 추억을 같이 만들어 나가지 않을래?"


나 정말 많이 아팠거든? 하루하루가 정말 지옥이었거든?

8개월의 짝사랑 끝에 좋아하는 사람과 연애에 골인해

3개월을 만났는데 어떻게 한 달 만에 괜찮아지겠어.


그러니까 나 조금만 더 아파할래.

아직은 조금만 더 과거에 살래.

하지만 그 과거를 정말 추억으로 털어놓고

언젠가 머지않은 미래에 내가 정말 괜찮아진다면

처음에 내가 너에게 다가갔던 것처럼 부담 없이 천천히 다가갈 테니까.


"우리 꼭 다시 보면 좋겠다."


연애 어플을 사용하면서 하루에 하나씩 질문이 올라왔는데 한 질문이 생각나.

'상대방이랑 만나면서 걱정되는 것이 있는지.'라는 질문이었는데,

혹시 내가 쓴 답변 기억나?


"평생을 함께 하고 싶은 인연을 너무 일찍 만난 것 같아 무섭다."


정말 그때의 걱정처럼 우린 전보다 멀어진 사이가 됐지만

그 인연을 이어갈 수 있는 사람도 나라고 생각해.

내가 차였기 때문에 다가가도 내가 다시 다가가는 게 맞는 것 같아.

물론 네가 부담이 아니라면 말이야.

나도 나지만 네가 정말 괜찮다면 말이야.


나 이제 과거에 안 살 거야.

투정도 안 부릴 거야.

조금씩 천천히 괜찮아질 테니까

너와 나, 그리고 우리 모두 다 함께 다시 보는 날이 꼭 왔으면 좋겠다.

너와 내가 다시 친구가 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내 삶에 들어와 줘서 고마워.

마지막으로, 이번 학기도 잘 부탁해!


FROM. 수윤

2025.08.31. 16:12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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