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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화. '좋은 이별'

by 수 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좋은 이별을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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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 일어나 보니 너의 프로필 사진과 배경 사진은 바뀌어 있었다. 우리의 나이를 의미했던 프로필 뮤직 '스물다섯, 스물 하나' 역시 사라졌다. 현실을 부정했다. 자세히 말하자면 현실이 믿기지 않았다. 현실을 믿을 수 없었다. 지금이 무슨 상황이지. 네가 내 옆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몸속 깊은 곳에서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들끓어 오르고 있었다. 헛구역질이 나온 나는 곧장 화장실로 향했다. 무릎을 꿇고 두 손으로 변기를 잡은 채로 눈물이 쏟아졌다. 생존의 욕구는 인간의 본능이다. 나는 그 본능대로 행동할 수밖에 없었다. 살기 위해서. 어쩌면 살고 싶어서 너에게 다시 연락을 걸었다. 사고의 영역이 간섭하기도 전에 말이다.


한 번만 다시 만나서 얘기하자고. 마지막 소원이라고. 계절학기를 듣는 동안 난 그저 너 옆에서 너를 믿어주고, 걱정해 주고, 응원하고 지지해 준 것밖에 한 게 없다고. 그런 나를 생각해서라도 한 번만 나와달라고. 만나서 얼굴 보고 딱 한 번만 더 얘기하자고.


만나면 어떻게든 너를 잡아야겠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널 잡을 것이다. 나 자신을 사랑할 자존감 따위는 없었다. 너를 알고 지낸 모든 시간 동안 내 우선순위는 오직 너였으니까. 그러나 무슨 수를 써서라도. 무슨 짓을 하더라도 너는 잡히지 않을 거란 사실을 알고 있었다. 어떤 심정으로 썼는지도 모를 4장의 손 편지를 꾸역꾸역 적어 갔다. 물론, 편지의 내용은 잡히지 않을 너에게 마지막으로 전할 말들뿐이었다.


꽤나 오래돼서 편지의 내용 하나하나 다 기억나진 않는다.

다만 이 말 하나만은 똑똑히 기억한다.


'누구보다 환하게 빛나달라고.

밤하늘에 빛나는 별처럼 언제 어디서든 가장 밝게 빛나달라고.


그리고


해맑게 웃는 모습이 세상에서 가장 예쁜 너였기에

언제 어디서든 가장 환하고 예쁘게 웃어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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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나 내 예상대로 너는 잡히지 않았다. 다시 만나서 돌아와 달라고 잡힐 거였으면 너는 이별을 고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제야 이별을 시작한 나였지만 언제부터 이별을 준비한 너였을까. 너무나 사소한 일들마저 나에게 얘기를 해주고 같이 나누던 너의 모습을 알기 때문에 귀띔이라도 해주지 않은 사실이 참 서글프고 씁쓸할 뿐이다. 나에겐 널 잡을 기회마저 존재하지 않았고 아무것도 바꿀 수 없는 이별 통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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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아. 난 좋은 이별은 이 세상에 없다고 생각해. 이별이라는 단어가 슬픈 단어인데 좋은 이별이라니. 너무 역설이잖아 그치."

"응.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좋은 이별을 하자."

"응. 그러자."

"00아. 우리 마지막으로 악수 한 번 할래?"

"그래!"


악수를 끝으로 우리는 정말 헤어졌다. 여름이면 날이 덥다며 스킨십을 싫어했기에 오랜만에 잡은 네 손이었다. 얼마 만에 잡은지도 모르겠는 그 손을 놓고 싶지 않았다. 이 손을 놓는 순간 우리는 정말 마지막일 것만 같아서. 마지막으로 너를 집에 데려다주었다. 나에겐 익숙한 이 공간인 이곳을 이젠 더 이상 오지 못 한다는 생각에 그렇게나 익숙한 장소가 무척 낯설게만 느껴졌다.



그렇게 우리의 연애는 마침표를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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