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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그 홍콩으로...(후편)

10 영화 <중경삼림> 감상문-2

by 차준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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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꿈속에 있는 것만 같은 이야기, <중경삼림>의 두 번째 이야기이다.

어쩌면, 머리로는 다소 이해하기 난해 할 수도 있다. 다른 '왕가위'감독의 작품들이 그렇지만,

특히 <중경삼림>에서 개연성이나 현실성 따위를 따지는 일은 아마 큰 의미는 없을 것이다.

만약 이 영화를 처음 보게 된다면, 그냥 마음이 가는 대로 생각하고 느끼길 바란다.

이 동화 같고 아리송한 사랑 이야기를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닐까 생각한다.



첫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인 하지무(금성무)가, 샐러드 가게 점원 '페이'와 스치며,

바통 터치를 하듯 두 번째 스토리로 전환된다. (정말 기가 막히고, 자연스럽게 연출되어 전환된다.)



<2> 경찰관(양조위)과 샐러드가게 점원(페이)의 동화 같은 사랑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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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오빠를 도와 샐러드 가게에서 일을 하고 있는 페이(왕페이), 그녀는 항상 가게에

'마마스 앤 파파스 - 켈리포이나 드림'을 크게 틀어 놓고는 캘리포니아를 꿈꾸며 일을 한다.

한편 그녀는 캘리포니아 말고도 마음에 두는 것이 하나 더 있었는데, 그것은 단골손님인

경찰관(양조위)이다. 그녀는 그를 몰래 짝사랑하고 있었고, 그런 그 경찰관은 최근

스튜어디스인 여자친구와 이별을 했다. 그의 여자친구는 공교롭게도 경찰관의 단골 가게인

'페이'가 일하는 샐러드 가게에 작은 편지 봉투를 맡기고는 떠난다.


'페이'는 몇 차례 경찰관에게 봉투를 건네지만, 경찰관은 조금 더 보관해 달라며,

그 봉투를 받는 것을 차일피일 미루며, 계속 수령을 회피하고 있었다.

결국 궁금증을 참지 못한 '페이'는 몰래 봉투를 열어 보는데,

그곳에는 경찰관의 집열쇠와 이별 편지가 동봉되어 있었다.

그렇게 짝사랑하는 경찰관의 집 열쇠를 얻은 페이는 그날부터 그가 없는 틈을 타

몰래 그의 집을 드나들기 시작했다.


'페이'는 청소와 설거지를 해주고는 몰래 전 여자친구의 흔적을 하나둘씩

버려 버리는 등 조금은 실술 궂은 페이의 '우렁각시' 놀이 시작된다.

경찰관은 처음에는 눈치채지 못하고, 집의 변화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으나,

점점 이상함을 느끼다가 결국 어느 날 자신의 집 주변을 순찰하던 중.

자신의 집에서 종이비행기를 날리며 놀고 있는 '페이'를 보게 된다.

그렇게 달려간 자신의 집에서 '페이'와 결국 막닥드리고,


서로 실랑이를 하던 중 끝내 '페이'는 도망가 버린다.

하지만 경찰관 역시 '페이'에게 호감이 있었던 것일까?, 경찰관은 자신의

단골집 이자 페이의 샐러드가게로 찾아가 8시에 '캘리포니아'라는 이름의

바에서 기다리겠다고 데이트 신청을 하고는 바 '캘리포니아'로 향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그녀는 찾아오지 않았다.


그렇게 바람맞은 경찰관은 페이가 일하는 가게로 찾아 가지만,

그곳에 있는 것은 그저 페이가 남기고 간 편지봉투만 남아 있었다.

경찰관은 실망하여, 편지 봉투를 읽지도 않고 버리지만,

뒤돌아 다시 주워서는 편지의 내용을 확인한다.

편지 봉투 안에는 삐뚤빼뚤하게 냅킨에 그려진 엉터리 항공권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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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버렸던 탓에 빗물에 젖어, 행선지가 지워졌지만, 날짜는 1년 후였다.

그렇게 1년의 시간이 지난다. 경찰관은 경찰을 그만두고 페이가 일하던 가게를

인수하여 가게 리모델링 작업이 한창이었다.

그곳에 불현듯 스튜어디스 복장을 한 '페이'가 나타난다.

'경찰관'은 그런 페이와 마주하고, 그는 페이에게 안부를 묻고는 가끔 편지라도

달라며 멋쩍게 웃으며 얘기한다.


하지만 '페이'는 어차피 읽지도 않을 거면서, 편지는 왜 달라고 하냐 라며 툴툴댄다

그런 페이에게 그는 1년 전 받은 냅킨에 그려진 항공권을 꺼내 보여주며,

이걸로도 비행기를 탈 수 있냐고 물어보고는, 행선지가 지워졌다고 말한다.

'페이'는 1년 전 자신이 냅킨에 그렸던 항공권을 받아 들고는 재발급해주겠다고,

행선지로 가고 싶은 곳을 말해 달라며, 경찰관에게 말한다.


그런 그는 그녀에게, "아무 데나, 당신이 원하는 곳으로..."라고 답하며,

'왕페이-몽중인'음악과 함께 영화는 막을 내린다.



나는 영화 <중경삼림>을 너무나도 좋아 하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이 두 번째 이야기를 너무너무 좋아한다.

중간중간 흘러나오는 음악 '캘리포니아 드림'과 '몽중인'이 아직도 내 플레이 리스트에

있을 정도이며, 시간 날 때면 이 두 번째 이야기만 돌려 보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는 '왜?'라는 생각을 참 많이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왜?' 페이는 그렇게 짝사랑하던 사람과의 약속에 나오지 않은 것일까?

'왜?' 페이는 그렇게 1년이나 하필 그때에 떠나야 했었던 것일까?

'왜?' 페이는 아무렇지 않게 1년 후 돌아와 그와 얘기할 수 있는 것일까?

'왜?' 경찰관은 하필 그 가게를 인수하게 된 것일까?

'왜?' 경찰관은 1년간 이런 그녀를 원망하거나 미워하지 않았을까?


왜 원망하거나 미워하지 않았겠는가,

경찰관에게 1년은 아마 상당히 힘든 어쩌면 지옥 같은 시간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 와서, 조금 나이가 들고, 이 영화를 여러 번 봤을 지금.

페이의 마음도 또 경찰관의 마음도 조금은 이해가 되는 것 같다.


<중경삼림>의 첫 번째 이야기에서는 홍콩의 밤과 좁고 어둡고 습해 보이는 골목이나,

술집 같은 어두운 곳을 주무대로 퇴폐적인 매력을 보여 줬다면,

두 번째 이야기에서는 낮을 배경으로 시장, 주택가, 음식점 등 좀 더 밝고 활기찬

곳을 배경으로 하며, 일상적인 무대라 식상할 수 있지만, '왕가위'감독의 독특하고

세련된 연출을 통해 너무나도 매력적으로 그리고 있다.


여러 인종이 섞여 북적이던 뒷골목으로...

하지무가 통조림을 찾아 여기저기 뒤지던 편의점 골목으로...

금발의 그녀가 지쳐 휘청이며 들어갔던 그 술집으로...

페이가 일했던, 경찰관이 인수한 그 샐러드 가게가 있는 그 시장으로..

페이와 경찰관이 만나지 못했던 바 '캘리포니아'가 있는 그곳,


부디, 나를 그 시절 홍콩으로 대려다 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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