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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준생 Nov 26. 2024

#58 맛없어!

입문자 차준생의 茶이야기


점차 날이 쌀쌀해짐에 따라 차가 식는 시간도 제법 짧아졌다.

잠깐 정신을 놓고 딴생각을 하거나, 딴짓을 하면

금방이지 차게 식어 버린다. 아마도 앞으로 서너 달 이상은 

차가 빨리 식어버릴 것이다.


내가 많은 종류의 차들을 접한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식어버린 차는 종류따라 향이나 맛이  강해지기도 하며,

일반적으로 뜨겁게 마실 때와는 또 다른 매력을 뽐낼 때가 있다.

하지만 내가 마셔본 가장 맛없는 차는 바로 식었을 때 

비로소 나타난다.


내가 얘기하고픈 맛없는 차는 식어버린 숙차이다.

아마 나를 비롯하여 여러 입문자들이 이 숙차의 매력에 빠져

첫 입문을 하게 되신 게 아닐까 생각하며, 또 그만큼 숙차의 맛은 

다른 차들보다 직관적이며, 뚜렷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또한 숙차는 온도에 민감한 편이 아니라서, 

우려서 마셔도 되지만, 끓여 마셔도 될 만큼 무던한 차이며, 

입문자가 우려도 제법 그럴싸하게 맛을 낼 수 있다는 점에서

입문자에게 권하기 아주 좋은 차가 아닐까 생각한다.


여전히 나는 이 숙차를 참 좋아한다.

하지만 오늘 얘기한 차게 식은 숙차는 내가 가장 맛없어하는 차이다.

물론 일부러 식혀 마시지는 않았다. 그저 나의 과실로 차가 식었을 뿐,

그리고 어디까지나 나의 개인적인 취향의 문제일 뿐.

숙차를 시원하게 드시는 분들도 더러 계신 것 같았다.

물론 미지근하게 식은 맛과 시원하게 식힌 맛은 다르리라 생각한다.


(또한 시원한 숙차에 유자청을 넣어 드시는 레시피를 공유하는 분들도 계셨다.

일종에 '아샷추' 같은 느낌일까? 진작에 알았다면 한번 도전해 보는데,

내년 여름을 기약해야겠다.)


여기서부터는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이다.


내가 느끼는 차게 식어 미지근한 숙차의 맛은

그 뜨겁게 우렸을때 느껴졌던 구수함과 따뜻함,

그 농도 짙은 깊은 맛과 향은 온대 간대 없어지고

정말 네 맛도 내 맛도 아닌 텁텁한 황토물의 느낌이다.

이건 숙차의 종류와 상관없이 내가 느낀 감상이다.


물론 차가 이지경이 되도록 내버려 뒀던 '나'

전적으로 내 탓이기에 뭐 어쩔 수 없이 마셔야지 별 수 없다.

물론 다시 끓여볼까도 고민은 하지만 늘 번거로워 그만두기로 한다.


작은 촛불을 이용해 따뜻하게 유지하는 워머 라는 물건이 있는 것 같던데,

섣불리 아무 캔들에 했다가 다기들에 그으름이 생길 것 같으니

좀 더 알아보고, 또 무엇이 필요한지 확인 후에 준비해 봐야 될 것 같다.

그렇게 된다면 적어도 겨울철에 좀 더 느긋하게 차를 마실 수 있지 않을까?


참으로 배울 것도, 알아갈 것도, 준비해야 될 것도 많은 

전혀 지루할 틈이 없는 즐거운 입문자의 차생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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