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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준생 Dec 03. 2024

#59 그날이 오면

입문자 차준생의 茶이야기


지난봄 나는 둥근 백차 한편을 장만했다.

당시 맛도 향도 잘 모르던 나에게 있어, 

백차는 사실 그렇게까지 매력적으로 다가오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애당초 백차를 많이 마셔본 것도 아니며, 

처음 마셨던 당시도 워낙 아무것도 모르던 때라 맛도 향도 몰랐다.


그저 친구가 좋은 백차가 봄에 나온다고 얘기해 주었고,

또 그 당시 마시던 차가 다 떨어져, 이것저것 기웃거리고 있었던 터라

시기적으로나 상황적으로나 적절하여 장만하게 되었었고,

무엇보다 그 백차의 이름 '월광고수'라는 그 이름이 그 한자가

너무 예쁘게 보였고 또 예쁘게 들렸다.


맛과 향을 고려할 만큼 1년 전 나는 차를 잘 알지 못했다.

그렇기에 기술되어 있는 여러 자료들을 뒤적이며

맛과 향의 표현을 찾아 헤매었고, 그 글에 공감하려 애를 썼으며,

그래도 맛과 향을 느끼지 못한 날이면 나의 차를 우리는 방식이나

온도를 바꿔보기도 하며, 언제나 물질적이고 방법적인 접근만 했던 것 같다.


글쎄, 그것도 차를 즐기는 하나의 방법이었다면 방법이었고,

당시 내게 있어 그 또한 차를 즐기는 하나의 재미였던 것 같다.

그렇게 저렇게 마셨다. 다행인 것은 그래도 처음 백차를 마실 때보다

확실히 쓰거나 떫지도 않고, 어렴풋하게라도 달큼한 향과 맛을 느낄 수 있어,

꾸준히 마시기에 전혀 무리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인가, 백차가 맛있어지기 시작했다.

그 어느 날부터 차를 우리기 전, 그 마른 찻잎의 향이 너무 향기롭고 

풍성하게 느껴지기 시작했고,


언제나 은은하게 흩어지듯 느껴지던 그 모호한 향기들이 

점점 진하게 그리고 뚜렷하게 다가왔다. 얼마나 뚜렷했는지, 

방가득 향이 메워지는 듯한 느낌을 받을 정도 였다.

마시는 사람도, 우리는 사람도, 다기들도, 우려내는 방식도

물질적이고 방법적인 부분은 무엇하나 바뀐 것은 없었다.


그렇게 그저 시기적으로 또는 이름이 예쁘다며 장만했던 그 차는

지금 내가 가장 아끼고 좋아하는 차 중 하나가 되었다.

지금 나에게 누군가 어떤 차를 가장 좋아하냐고 묻는다면,

아마도 조금은 고민할 것 같지만, 그날에 기분에 따라

백차를 꼽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숙차도 만만치 않게 좋아한다.)


요즘은 그렇게 백차를 마셨던 것처럼 생차를 마시고 있다.

아직은 그 생차의 맛과 향을 잘 모르겠다.

그저 백차를 마실 때 그랬던 것처럼

그날이 오길 기다리며, 묵묵히 우려내고 있다.


그날이 오면 어떤 향맛을 들려줄지

그날이 오길 기대하며, 부디 그날이 속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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