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영화 <해피 투게터> 감상문
나는 왕가위 감독의 영화들을 좋아한다. 특히 <중경삼립>의 경우 다섯 번도 넘게 돌려 봤을 정도이다. 하지만 내가 왕가위 감독의 90년대 영화 중 몇 안되게 안 본 영화 두 편이 있다. 바로 <화양연화>와 <해피 투게더>이다. (<화양연화>는 엄밀히 말하면 2000년도 작품이다.) 이 두 작품은 많은 이들이 명작이자, 최소 수작으로 꼽힌다는 것쯤은 나도 익히 들어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서 조차도 찾아보지 않았던 것은 내가 개인적으로 특히 싫어하는 두 가지 요소가 들어 있기 때문이었다.
바로 불륜과 동성애 요소이다. 더럽다거나, 불결하다거나 그런 이유는 아니고, 그냥 이 두 요소에 대해서는 태생적으로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절대 볼 일이 없을 거라 생각하던, 이 영화를 작은 호기심으로 시작여 결국 보게 되었다. "왜 <해피투게더>만이 영문 상영명을 사용했을까?"
*스포일러가 다소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영화는 주인공 보영(장국영)과 아휘(양조위)가 아르헨티나의 이과수 폭포를 찾아가며, 시작한다.
둘은 결국 이과수 폭포로 가는 길에 길을 잃고 헤매며, 다투다가 해어진다. 그 후...
보영은 충동적이고, 즉흥적이며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표현하고 표출하며, 좀 제 멋대로 살아가는 인물이다. 그런 보영은 아휘와 이별 후 여전히 이런저런 사람과 섞여 때로는 술에 취해 사랑을 찾기도, 춤추며 사랑을 갈구하기도 하며 방탕하게 살아간다, 그렇게 어쩌다 찾은 탱고바에서 다시 아휘와 재회한다. 보영은 애써 피하려는 아휘에게 다시 시작하자고, 정말 끈질기게 구애한다. 결국 어느 날에는 고가의 시계를 훔쳐 아휘에게 선물할 만큼 앞뒤 가리지 않는 굉장히 충동적인 인물이다.
결국 훔친 시계 덕분에 흠칫 두들겨 맞은 보영은 잔뜩 다친 모습으로 아휘를 찾아간다. (맞은 것이 아휘 때문이라며, 탓할 정도로 제멋대로인 인물이다.) 그렇게 아휘에게 간호를 받으며, 둘은 다시 사랑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내 상처가 모두 나은 보영은 아휘를 다시 훌쩍 떠나 버린다. 아휘는 늘 새로운 사랑을, 쾌락을 갈구하는 인물이다. 그저 아휘가 그리웠던 것인지, 그저 간병인이 필요했던 것인지 알 순 없다. 하지만 보영이 떠날 것을 예상했던 아휘는 보영의 여권을 감추었고, 머지않아 보영은 다시 아휘에게 연락하여 여권을 달라며 때를 쓰기도한다. 정처 없이 이곳저곳을 방황하며 제멋대로 살아가는 보영에게 여권이 진짜 필요했을까?
나는 여권은 그저 아휘를 다시 만나기 위한 빌미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아휘는 사랑에 아파하기도, 슬퍼하기도 하며, 소소한 목표를 가지고 성실히 하루하루 살아가는 지극히 평범한 인물이다. 아휘는 보영과 이별 후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마음먹는다. 그러기 위한 채비를 모으고자 탱고바의 문지기로 취직하여 생활을 이어 거던 중, 헤어졌던 보영을 탱고바에서 다시 마주치게 된다. 원치 않던 재회, 보영은 다시 시작하자고, 집주소와 전화번호까지 알아내어 끈질기게 매달린다. 그러던 어느 날 피투성이가 되어 보영이 찾아온다. 이내 모른 척할 수 없었던 아휘는 보영을 간호하며, 다시 그를 받아들인다.
하지만 아휘는 보영이 다시 떠날까 봐 늘 불안했고, 불안함 끝에 보영의 상처가 낫지 않기를 바라기도 하며,
결국 아휘는 보영의 여권을 숨기기까지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결국 보영은 다시 떠나고 만다. 아휘는 한동안 보영과의 이별에 힘들어 하지만, 이내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다시 생활을 이어간다. 직장에서 만난 친구 '장'이 세상의 끝이라고 불리는 곳 '우수아이아'로 여행을 떠난다며, 아휘에게 세상의 끝에서 슬픔을 버리고 와 주겠노라며, 작은 녹음기를 건넨다. 하고 싶은 말이나 혹은 버리고 싶은 것들을 녹음해 달라고 말이다.
시간이 흘러 그렇게 고향으로 돌아갈 준비를 마친 아휘는 마지막으로 보영과 가려고 했던 이과수 폭포를 방문한다. 과연 아휘는 이과수 폭포를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렇게 아휘는 고향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리고 우수아이아, 아휘가 녹음했던 녹음기에는 그저 아휘의 흐느끼는 소리만이 녹음되어 있을 뿐이었다.
여전히 정처 없이 방황하는 보영, 홍콩으로 돌아온 아휘.
그렇게 홍콩의 야경과 함께 노래 '터틀즈-해피 투게더'가 흐르며 영화는 끝이 난다.
이 영화 <해피 투게더>를 보고 난 후, 이 영화는 결코 동성애 영화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저 지독하게 외롭고 허무한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였다. 그저 극 중 주인공 '보영'에 가장 잘 어울리는 배우가 장국영이었던 것이고 장국영이 남자였던 것뿐이다. 마찬가지고 '아휘'에 가장 잘 어울리는 배우가 양조위였을 뿐이다.
그것을 증명하듯 흔히 '퀴어 영화'(성소수자를 주제로 한 영화)에서 거의 빠지지 않고 나오는 그들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이나 편견에서 나오는 갈등에 관한 이야기는 전혀 나오지 않는다.
왜, 하필 제목이 <해피 투게더>인가?
(원재 춘광사설은 은밀한 것을 살며시 들춰낸다 라는 뜻이라고 한다.)
보영과 아휘, 서로의 존재가 서로에게 행복이었을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본 작의 보영은 동일 배우 '장국영'이 연기한 <아비정전>의 '아비'와 많이 닮아 있다. '아비'는 다리가 없어 날갯짓을 멈출 수 없는, 또 어디에도 내려앉아 쉴 수 없는 '다리 없는 새'라고 본인을 비유한다. <해피투게더>의 보영 역시 마찬가지의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 수밖에 없는 보영, 너무나도 매력적 일지는 모르나, 이런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혹은 사랑하게 되는 일은 재앙과도 같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아비정전>의 두 명의 여인에게 '아비'가 재앙 같은 존재였던 것 같이, 아휘에게 역시 보영은 어쩌면 피해야 하는 재앙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둘이 함께한 시간만큼은 거짓 없이 행복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아휘가 보영이 떠나지 못하도록 여권을 숨기기도 하고, 남몰래 상처가 낫지 않기를 바라기도 한 것은 이러한 '행복'이 떠날까 봐 아니었을까?
여전히 지금도 보영은 어딘가의 밤거리를 방황하고 있을 것 만 같다.
어쩌면, 이과수 폭포로 가는 길 위에서 그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