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문자 차준생의 茶이야기
일전에도 몇 번 언급한 적이 있지만, 어머니 역시 차를 즐겨 드시는 편이다. 내가 차 생활을 시작하기 전에는 별 생각도, 관심도 없었는데, 차생활을 하면서부터 집안에 어머니께서 선물 받거나, 혹은 사두셨던 차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홍차, 화차, 녹차 등등 종류도 제법 다양해 보였다. 물론 그러면 안 되지만 나는 슬슬 그 차들의 맛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우리 집은 주택으로 가족들이 지내는 곳, 그 보다 더 위 옥상, 옥탑방에서 나는 생활하고 있다.(유배되었다.) 그러다 보니 어머니와 마주칠 일이 아침 출근 인사 때, 그리고 퇴근할 때인데, 나는 퇴근 후 운동을 하고 집에 오는 편이라 보통 9~10시는 되어서야 어머니를 뵙게 되며, 그 시간이면 보통 어머니는 티브이를 보시며 안방에서 주무실 시간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작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은 주말 정도이지만,
주말 역시 이런저런 약속으로 보통 나는 집에 있지 않기 때문에, 말씀을 드릴만한 시간도, 허락을 받을만한 시간도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날이 고는 어머니의 여러 차맛이 궁금한 나머지 무허가로 그 차들을 맛보기로 했다. (이게 서른도 훌쩍 넘은 아들이 할만한 발상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조금 마신 다고 티가 날 것 같지도 않고 특히 고급 선물용 상자에 들어있는 차의 경우 언제 받으신 것인지 잘 모르겠으나, 몇 달째 전혀 손도 안 대고 계신 듯했다.
위치는 냉장고 제일 위칸에 연두색 선물용 박스에 포장되어 있는 물건이다. 며칠을 귀가 후 이 목표물을 드시는지 안 드시는지 관찰했다. 역시 그 선물 박스는 미동도 하지 않고 늘 있던 곳에 똑같이 있었다. 그리고 어제 드디어 그 선물용 상자를 꺼내어 열었다. 선물용 세트라서 그런지 민들레차, 뽕잎차, 감잎차 등등, 생각보다 여러 종류에 차들이 들어 있었다.
고민하다가 내가 뽑아 든 차는 국화차였다. 들뜬 마음으로 물을 끓이고 차를 우려낼 준비를 했다.
새로운 것을 경험하는 일은 항상 즐겁고 설레기 마련이다.(절대 몰래 먹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그렇게 맛을 본 국화차의 맛은 그다지 특별하지 않았다. 개인적인 느낌을 말해 보자면 은은한 향기가 나는데, 꽃 향기라기보다는 한약재 같은 느낌에 더 가까웠고, 맛은 특별히 도드라지게 느껴지는 것은 없었다. 특별히 맛이나 향이 강하지 않고 은은하게 퍼지는 것이, 무난하게 마시기 편한 차라는 느낌이었다.
이렇게 나의 아닌 밤중의 차 도둑질은 끝이 났다.
어머니께서는 차를 마시는 것 외에도 다양한 취미를 갖고 계신다. 난초를 키우시는가 하면, 물고기를 키우시기도 하고, 그릇이나 식기들을 수집하시기도 한다. 또 항상 새로운 것을 수집하시고서는 내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시며 자랑을 하시기를 즐기신다. (사달라는 무언의 압박이기도 하다.) 그런 영향 때문인지 나 또한 예전부터 온갖 취미생활을 영위했으며, 딱 한번, 수년 전 스케이트 보드를 타다, 나의 갈비뼈를 와장창 해먹은 사건 이외에는 나의 취미를 가지고서는 단 한 번도 나무라신 적 없었다.
나 역시 지금까지 많은 취미를 거쳐 왔지만, 차생활처럼 어머니와 공통된 취미를 가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엄밀히 따지면 다육이도 있지만, 다육이는 알아서 잘 커서 별로 할 얘기가 없다.)
언젠가 하루 어머니와 차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혹시 모를 일이다, 그간 아껴두셨던 귀하디 귀한 차를 내어 주실지도 모르는 일이니 말이다.
여담으로 당연히 그 후, 어머니께 허락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