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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준생 Mar 12. 2024

#15 무지렁이의 거름망

입문자 차준생의 茶이야기


나는 요즘처럼 차를 즐기기 이전부터 차에 대해 관심을 갖고 이것저것 알아보며 시작한 사람은 아니다. 그저 어느 날 지인의 권유와 선물로 인하여 차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야말로 이전까진 관심도 없고, 차에 대해서는 일도 모르는 무지렁이였다. 아무것도 모르는 만큼 나는 지인이 선물해 준 도구 외에 또 어떠한 것들이 어떠한 이유로 더 필요하고 준비해야 하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오늘 얘기할 '거름망'이다.


나는 거름망을 처음부터 가지고 차생활을 시작하지는 않았다. 차를 우리는 도구인 공표배(표일배)에도 거름망이 자체적으로 있기도 하고, 굳이 추가적으로 거름망이 더 필요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않았다. 그렇기에 차생활을 시작하고 한동안은 차와 함께 찻잎을 참 많이도 먹었다. '원래 차라는 걸 마시면 찻잎도 좀 먹게 되고 그런 거구나'라고 당연하게 생각하기까지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먹은 찻잎으로 티백을 만든다면 티백 한 두 개 정도는 족히 채울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런 나를 일찍이 알아봤던 지인은 고맙게도, 나에게 이 거름망 또한 선물해 주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참 손이 많이 가는 타입이다.) 항상 마지막 잔에 가까울수록 찻잎이나 가루들이 찻잔에 들어가 가라앉길 천천히 기다리며 마시거나, 그마저도 귀찮을 때는 벌컥 들이켜 버리던 나에게 이 작은 거름망은 정말이지 너무나도 쾌적한 차생활을 선사해 주었다.


이 거름망은 다기들에 포함되어 있는 거름망(보통 지름이 1mm~2mm 내외인 듯하다)들과 달리, 육안으로 그 구멍이 안보일만큼 작고 촘촘하다. 그렇기 때문에, 찻잎은 물론이요 웬만한 찻잎의 부스러기 가루들까지 다 걸러진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보이 숙차의 경우 차를 우리기 전 손으로 잘게 부숴(훼괴), 우리기 때문에, 작은 가루들이 더 많이 나오는 편이다. 그래서 이전까지는 참 찻잎의 부스러기 가루들을 많이도 먹었으며, 가루가 목으로 넘어가 '턱 '걸리며 느껴지는 까끌하고 칼칼한 감촉은 그다지 유쾌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거름망을 사용하고부터는 그런 유쾌하지 않은 경험을 더 이상 할 필요가 없어졌다. 참으로 기특한 물건이 아닐 수 없다.


이렇듯 나는 이런 작은 '거름망'의 필요성조차도 알지 못하는 무지렁이였다. 이런 내가 비록 오래되진 않았지만, 이렇게 매일 차를 우려 마시며 글도 끄적이게 될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었다. 여전히 무지렁이 같은 나는 이리저리 쓸 때 없이 궁리하기도, 또 실수를 저지르기도 하며, 즐겁게 차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여전히 알지 못하는것 투성이고 또 더 필요한 다기들도 여전히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날이고, 언젠가 이고는 누군가와 마셔본 차에 대해서나 사용해 본 신기한 다기들의 이야기를 나눠 보고 싶다. 지금은 비록 아는 게 없는 무지렁이지만, 그 언젠가에는 나도 제법 차생활을 잘 즐기고 있었다고, 조금 뽐내듯 이야기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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