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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사세요, 제 마음은 덤으로 드려요

by 송유성

그 사람은 겁이 너무 많아요. 나는 그를 보고 있으면 늘 새장에 들어있는 가녀린 새를 바라보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는 제가 문을 열어주고서 한참 동안 기다려도 나오지 않았어요. 나오지 못한 건지 안 한 건지는 지금도 사실 잘 모르겠어요. 그가 살면서 받았을 것 같은 상처들에 대해서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다. 사실 그 사람은 저랑 아주 많이 닮았던 것 같아요. 그 사람이 받은 상처와 겁이 저의 것들과 닮아서 보듬어 주고 싶은 마음이 더 커졌던 것도 같아요.


방향성에 대한 생각을 해보아요. 닮은 상처를 가진 두 사람이 사는 방향성이 왜 다른지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아요. 그는 아주 많은 무기를 보유하고 살았어요. 그의 무기고에는 무기가 너무 많아서 다른 것들이 들어갈 자리가 없었어요. 그는 철저한 옹벽을 쌓아 자신의 영토를 지켜요. 벽이 높을수록 영주는 고립되고 점점 고독해지죠. 전장에 나가서 싸우는 것보다 고립을 택한 그의 삶을 생각해 보았어요. 저는 벽 밖에서 꽃다발을 무기 삼아 기다렸어요. 꽃사세요. 를 얼마나 많이 외쳤는지 모르겠어요. 그렇게 한참 외치고 있으면 그도 자신이 이해되지 않는 행동을 가끔 해요. 철저한 벽 뒤에 숨어 살던 사람이 빼꼼, 꽃을 사러 나와요. 꽃을 사러 나를 보러 나와요. 그리고 아주 가끔 웃어요. 그 찰나가 소중해서 영원히 이곳에 서서 꽃을 팔기로 결심한 제가 있었어요. 당신은 푸른 무기를, 나는 분홍의 꽃을 들고 다른 곳을 보며 서 있었던 걸까요.


그가 꽃을 사러 점점 성 밖으로 자주 나와요. 나는 그가 나와 나란히 하는 순간을 아주 소중히 대해요. 그가 순간을 대하는 진심을 느껴요. 그의 담벼락이 서서히 무너지고 있어요. 나는 그가 뒤를 돌아보지 못하게 더욱 웃어요. 나를 봐요. 나를 보고 더 이상 뒤는 보지 말아요. 어느새 모든 벽은 허물어지고 무기는 탈환될 거예요. 당신이 빈털터리가 되어서 나만 보고 사랑만 하세요. 무너진 벽 너머는 우리가 달려갈 푸르고 자유로운 들판이 있지요. 나만 봐요. 그가 들을세라 속으로 조용히, 아주 조용히 주문을 외워요.


그런데 나는 미끄러졌어요. 저는 능숙하지 못한 꽃장수였나 봐요. 제 이마에 흐르는 한줄기 땀방울을 그가 봤어요. 제가 마음으로 아주 애쓰는 것을 보았어요. 꽃장수는 행복만 주어야 해요. 꽃은 일상의 전환점이에요. 꽃은 현실에 필요하지 않은 순간을 선물하는 것이에요. 현실에 없는 순간을 선물하는 이유는 낭만으로 눈을 가리기 위해서예요. 그것에는 어떤 구김도 틈도 없어야 온전한 의미를 가지죠. 아름다움으로 활짝 핀, 꽃의 연약함으로 축제를 열어야 해요. 그런데 저는 애썼고 애쓰던 몸은 흠칫 떨었고 결국 저에게서 그가 한 방울의 현실을 느꼈어요. 눈치챈 그가 빠르게 뒤를 돌아보고 마음을 굳혀요. 불에서 떨어진 촛농처럼 빠르게 굳어요.

어쩌죠, 꽃은 자신을 지켜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챘네요. 단단해진 그가 다시 그의 성으로 돌아가요.

나는 망연자실한 꽃장수예요.


겁, 내지 않고 살았으면 좋겠어요. 그가 자신의 안락을 위해 다시 철옹성 같은 삶으로 들어간 것을 모르지 않지만, 인생은 공평해서 누구나 겪어야 하는 상처의 양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주어진 슬픔을 전부 겪지 않으면 잘 죽을 수 없어요. 그는 사는 것이 좋다고 했는데요, 삶은 죽음과 연결되어 있어서 삶을 잘 살려면 죽음도 잘 준비해야 하죠. 차라리 나와 있을 때 내 손을 꼭 잡고 함께 상처를 받길 바랐어요. 적어도 상처 전문가인 제가 함께하는 길이 안내가 쉬울 것 같았거든요. 나는 누군가를 상냥하게 가르칠 줄 아는 사람이거든요. 그리고 그것이 그라면 나는 아주 오랫동안 그 옆에서 함께 상처받을 준비가 되어 있었죠. 가끔 옷도 추슬러 주고 연고도 발라주면서 당신의 눈을 바라보며 그렇게요.


그가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지막으로 연락했을 때 느꼈어요. 당신이 좀 더 높은 성을 쌓고 살겠다고요. 제 마음 같았으면 버럭 소리 지르고 꾸짖고 싶었는데요, “뭐가 그렇게 겁이 많아! 그래서 어떻게 살아가려고 그래! 사랑은, 삶은 그렇게 스쳐 지나간다고 찬란해지는 것이 아니야!” 하고요.


그냥, 아무 말 하지 않았어요. 꽃 사러 나올 때도 그가 얼마나 망설이다가 용기 내어 문을 열어주었다는 것을 모르지 않거든요. 수많은 밤을 나를 안고서 그와 나 사이의 빈틈이 아쉬워 더 끌어당겼던 그가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용기였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이 때때로 그를 무너트리곤 했다는 것을 알거든요. 제가 감춰 둔 슬픔을 들키는 실수를 해버렸지요. 실수했지만 그것도 제 능력의 최선이었기에 자책은 하지 않기로 했어요.


꽤 시간이 지났는데요. 아마 평생 그를 잊지는 않을 것 같아요. 내가 누군가의 옆에서 꽃을 주려던 마음을, 누군가가 자신과 다른 생을 받아보려 애썼던 그 연약한 마음을 제 생의 어느 한쪽에 모셔두고 아주 어여쁜 꽃다발과 함께 기억하며 살아가지 않을까 싶어요. 그는 제가 활짝 피어나길 염원하며 돌보았던 유일한 꽃이었으니까요. 당신 속에서 탁, 하고 어느 연약한 싹이 텄다는 것을 본 일이 있었으니까요. 그런 좋은 경력은 살면서 내내 자랑할 만한 이력이 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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