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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얼마의 비용으로 살 수 있을까?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by 정현미

사람은 얼마의 비용으로 살 수 있을까?

50대 초반에 백수의 길로 막 들어선 우리 부부를 보며 지인들은 얼마나 돈을 많이 모았으면 둘 다 놀 수 있을까 궁금해하면서도 선뜻 묻지 못하거나, 속으론 먹고살만하니 배부른 소리 한다며 눈살을 찌푸리기도 할 것이다.


물론 완전 빈털터리로는 이 사회에서 직업 없이 생활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하물며 손은 덜 가지만 돈은 한층 더 가는 두 명의 자녀를 둔 상황이면 일은 더 어려워진다.

그렇다고 우리가 신혼부터 남다른 경제관념으로 파이어 족이니 조기 은퇴니, 하는 최근 유행하는 트렌드를 미리 꿈꾼 것도 아니고, 우리도 그저 남들처럼 죽는 순간까지 평생 일할 수 있는 행운을 누리길 바라며 살아왔다.


무언가 하나에 빠지면 다른 것을 둘러보는 여유를 가지지 못했던 나는 20여 년을 일에 빠져 울고 웃고 하던 무미건조한 생활 끝에, 소위 번아웃이라는 일종의 무기력증이 찾아와 이제까지의 일에 흥미를 잃은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아예 일이라면 꼴도 보기 싫은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인생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 것은.

연일 100세 시대를 부르짖으며 늘어난 수명만큼 더 많이 일하라고 다그치던 매스컴의 부추김들이 더 이상 삶의 원동력이 아닌, 사람들의 공포심을 이용한 상술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도대체 언제까지 일을 해야 한단 말인가? 정말 일하다 죽는 것을 행운으로 생각해야 하나?

물론 그 일이 좋아서 스스로 선택한 것이면 어느 정도 수긍이 가지만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이라면 그야말로 현직에서 죽는다는 건 천형에 다름 아닐 것이다.


나도 사람인데.. 다음 생은 믿지 않으므로 오직 한 번뿐인 생에서 도대체 나란 사람의 실체는 무엇이고, 어떤 일에 흥미를 가지며 언제 충만함을 느끼는지 정도는 알고 가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욕구가 강렬하게 치밀어 올랐다.

흔히 욜로로 대변되는 트렌드에서 난 물질적인 부분은 최소화하고 경험적인 부분에 집중하고 싶었다.

다행히 그즈음 두 아들은 성인이 되어 돈 이외는 달리 품이 들지 않았고, 당초 계획했던 아이들 교육비와 1,2년의 생활비 정도 모여진 상황에서 우리 둘의 결단만을 남겨둔 시점이었다.


쉽진 않았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사람들조차도 10억은 성에 차지 않아 하고 100억을 가진 사람도 끝없는 탐욕으로 온갖 불법을 자행해 재산을 불리는 세태가 아니던가?

그만한 돈을 가지진 못한 우리에게 말이 좋아 자아 찾기지, 과연 1~2년의 백수생활이 가당키나 할까?


하지만 순진한 생각이긴 해도 나름 우리에게도 믿는 구석은 있었다. 물욕이 없는 데다 태어날 때부터 유전자에 각인된 남다른 절약정신과 생활력이 그것이다. 그리고 노후를 위한 약간의 우량주 투자가 덤이라면 덤일 수도 있을 것이다.


남보다 돈을 많이 벌었다기보다 덜 쓰고 아껴 모아진 몇 푼의 종잣돈으로 1,2년 정도 우리만을 위한 실험을 해보려 한다.

요즘 사람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는 돈과, 그것과 맞바꿔 얻은 시간의 가치에 대해서...

그리고 막연하나마 목표가 있다면 1~2년 후, 우리가 진정 즐기며 몰두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남은 여생을 스스로 연명해 나가는 것인데, 그것이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그 이상 바랄 것은 없을 것이다.


당분간 아이들에게 들어가는 돈이 만만찮고 정신적 자유를 얻은 대가로 자중하자는 의미에서도 물질적으론 더 절약을 해야겠지만 그 빈자리를 부족하나마 이제껏 해보지 못한 다양한 경험들로 채워나갈 생각이다.


사람들은 묻곤 한다.

도대체 얼마 정도면 당신네들처럼 놀고먹을 수 있는지...

나 또한 딱히 귀띔해 줄 비법이란 없다.

한 때 우리의 논쟁거리였던 '모든 것이 완벽해진 후에' 란 없다는 사실을 인지한 후론 그저 마음이 내린 결정에 따르려고 끊임없이 고민하고 노력할 뿐이다.


해줄 수 있는 말이 있다면

항시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조금씩 물욕을 내려놓고, 쉴 기간 동안 필요한 최소한의 경비를 준비하면서 몸과 마음을 단련하며 때를 기다릴 것.

우리 같은 소시민이라면 물질적, 정신적 여유, 둘 다를 취할 수는 없는 노릇, 자신이 가치를 두는 것에 집중할 것.


그러고 나서는 그대들의 마음이 될 수 있으면 좀 더 빨리 결단을 내리는 행운을 바랄 수밖에...

세월이 흘러 다리에 힘이 풀리고 걷는 것조차 힘에 부쳐 제 몸 하나 추스르지 못하는 나이에 이르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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