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4)

나의 첫 소설

by 정현미


일주일 후 직장 후배가 신혼여행에서 돌아왔다.

도형이 직장 근처 카페에서 그녀와 마주한 건 그로부터 며칠이 더 지난 뒤였다.

“결혼 직후라 많이 바쁘지? 이것저것 챙길 게 많을 거야...”

“그러네요. 식만 올리면 복잡한 일들이 다 끝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시작이네요... 벌써부터 회의가 들기 시작하는데요....”

힘들다는 푸념을 늘어놓긴 했지만 그녀의 목소리에선 신혼의 생기가 묻어났다.

어디서부터 말을 꺼내야 하나... 이제는 이미 과거가 되었지만 그녀를 힘들게 했을 그 복잡한 일들 중 하나를 다시 들춰내서 그녀의 신혼에 찬물을 끼얹게 되는 건 아닌지 도형은 몹시 초조했다.

“실례인 줄 알지만... 꼭 확인할 게 있어서...”

도형은 조심스럽게 휴대폰 속 사진을 그녀 앞으로 내밀었다. 찬찬히 사진을 들여다보던 그녀는 흠칫 놀라며 두 배 이상 커진 눈으로 도형을 쳐다보았다. 당황한 빛이 역력하더니 급기야 불쾌한 표정을 드러냈다.

순간 난처해진 도형은 서둘러 가방에서 서류봉투를 꺼내 그 속의 내용물을 그녀 앞에 내밀었다. A4용지 크기의 예식 사진이었다. 식을 마친 신랑, 신부가 양가 부모님과 함께 찍은 사진이었다. 그녀는 여전히 마뜩잖은 듯 잔뜩 찌푸린 표정으로 도형이 건넨 실물 사진과 휴대폰 속 그녀의 친척 사진을 번갈아 가며 보았다. 성의 없이 방황하던 그녀의 시선이 신부 측 어머니에게서 멈췄다. 일순간 깊어졌던 미간 사이 주름이 쫙 펴지면서 다시금 휘둥그레진 그녀의 눈이 도형을 향했다.


“대행업체를 이용했어요..."

동질감을 느낀 걸까? 그녀의 태도가 한층 누그러져 있었다. 움직일 수 없는 증거 앞에서 급작스럽게 심경의 변화를 일으킨 용의자처럼 그녀는 어떤 취조와 수사에도 적극적으로 임하겠다는 결의까지 내비치는 듯했다.

“하객이 워낙 없다 보니... 저희 남편도 동의했어요... 아니, 오히려 더 적극적이었죠... 근데... 부인도 그런 거예요?... 아무리 그래도 부모님을... 대리님은 아예 몰랐던 거예요?

그녀는 이미 수사권을 넘보고 있었다.

“혹시 'Dream Company'라고 들어봤어?"

주도권을 뺏기지 않으려는 듯 도형은 대답 대신 서둘러 다음 취조로 넘어갔다.

“네.. 거기서 하객을 대행해줬어요. 예식장에서 추천해주더라고요. 서로 공생관계인 거 같았어요."

하객 대행 말고 무슨 미래 테크놀로지를 이용한 다른 프로그램에 대해 들어본 적은 없느냐는 도형의 질문에 AI을 이용한 온, 오프라인 힐링 프로그램이 있다고 들었지만 자신들은 결혼 준비로 바빠 자세히 알아보지 못했다고 대답하던 그녀의 눈빛에선 이미 불쾌감은 사라지고 도형에 대한 연민만이 자리 잡고 있었다. 오히려 힘내시라고 걱정하는 듯한 그녀의 목소리에서 잠시 잦아들었던 생기가 되살아나고 있음을 감지한 도형은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와 헤어지면서 사실 아내가 대행한 사람은 부모님이 아니고 큰 아버님 내외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이내 그만두었다. 지금 와서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도형은 그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발길을 돌렸다.


'지금은 전화를 받을 수 없습니다.....'

며칠째 연락이 닿지 않았다. 중소 IT업계에서 일하는 처남은 밤 낯이 구분되지 않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워낙 말수가 적고 도형과는 막역한 사이도 아니고 보니 1년에 만나는 횟수가 한 손으로 꼽을 정도였다. 아버님을 일찍 여의고 어머님도 이모님과 함께 멀리 타국에 계시다 보니 덩그러니 둘만 남겨진 남매 사이는 누구나 예상 가능할 정도로 애틋했다.하지만 둘 다 자신들의 감정을 좀처럼 드러내는 성격이 아니다 보니 서로의 마음을 표현하는 데는 많이 서툴렀다.

도형은 자기라도 좀 챙겨야겠다는 생각에 가끔씩 처남에게 전화를 하곤 했지만 곧바로 연락이 닿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이번엔 꼭 얼굴을 봐야겠다는 오기가 발동한 날이면 농담 섞인 가벼운 협박성 문자를 보내기도 했는데 그럴 때면 꼭 그날이 아니더라도 답신은 왔다. 며칠이 지나 어느 바에서 마주하게 된 것도 그러한 과정을 겪은 후였다.

처남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가볍게 목례만 한 채 자리에 앉자마자 연거푸 맥주를 서너 잔 들이켰다.

"누나는 괜찮아요?"

적당히 목을 축였는지 늘 굳게 닫혀있던 처남의 입술이 열렸다. 잠시 말없이 쳐다보던 도형은 얼쯤해 하는 처남에게 대답 대신 고지서 한 장을 내밀었다.'독촉장', 한쪽 귀퉁이가 찢겨나간 날 선 핏빛 외침에 잠시 시선을 빼앗기는가 싶더니 이내 발신인을 확인하던 처남의 동공이 점점 커졌다. 고지서와 도형을 번갈아 보던 그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여태껏 한 번도 정면으로 응시한 적이 없던 아내를 닮은 그의 눈이 도형에게 마냥 낯설게만 느껴졌다.


뜯긴 채로 식탁 한 구석에 방치되어 있던 고지서를 들고 도형이 'Dream Company'라는 회사를 찾아간 건 일주일 전이었다. 낡아 보이는 외관과는 달리 최첨단 테크놀로지를 상징하는 그림, 문구들로 채워진 내부는 비교적 깔끔하고 세련돼 보였다. 하지만 화장을 말끔하게 한 데스크 안내원에게 들을 수 있었던 것은 계약자와 본인 이외에는 어떤 정보도 알려줄 수 없다는 일방적인 통보뿐이었다. 자리를 뜨지 못하고 난감해하는 도형이 안돼 보였는지 유독 도두라진 입술 라인을 한 안내원이 선심 쓰듯 내뱉은 계약자의 이름이 어딘지 익숙했다.

'이 선우'. 처남이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