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여름, 용면리

시간이 순환하는 곳

by 친절한다정씨

어느 여름, 용면리

올 여름은 뜨겁지만, 바람이 많이 분다.

아이들이 본격적으로 학원을 다니기 전, 방학을 기회 삼아 며칠씩 용면리 친정집에서 보내곤 했다.

하지만 요즘은 학교와 학원 때문에 아이들이 나보다 더 바쁘다.
친구들도 학원에 가야만 만날 수 있는 아이들이라, 언젠가는 용면리에 가는 나를 따라오지 않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런 순간을 상상하면, 아이들이 빨리 크길 바라면서도 문득 마음속으로 말한다.
“조금만 천천히, 한숨 쉬어가며 커줬으면…”

함께할 수 있을 때, 열심히 다녀보고.
안아줄 수 있을 때, 실컷 안아주고.
뵐 수 있을 때, 자주 찾아뵈자.
그것이 나의 삶의 지론이다.

삼주 만에 용면리에 가게 된 것이, 그래서 더 멀게 느껴진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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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만 비워도 내 고향은 백 번도 더 옷을 갈아입는다.
꽃들이 만개했다가 금세 져버리고, 새순이 돋더니 어느새 녹음이 짙어진다.

계절이 시나브로가 아니라, 성큼성큼 변한다.
세월이 흘러가고 있다는 사실이 절절하게 다가온다.
그게 아마도 용면리만의 매력일 것이다.

산으로 둘러싸인 지형 덕분에, 뜨거워도 뜨거운지 모르는 용면리의 여름.
그래도 아이들은 더워서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에어컨 아래에서 서로 엉켜 놀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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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 탓을 하며, 친정 엄마와 종일 이야기를 나눴다.
목이 메이면 커피를 마시고, 다시 목이 마르면 오미자 차를 마셨다.
입에 침이 마를 때까지 떠들어도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친정 엄마가 호된 시집살이로 눈물을 찍어 흘리던 날들,
나의 할머니가 돌아가실 때 참회의 눈물을 흘리시며
“애미야, 윤수 머리 깎아줘라” 하신 유언까지.

길고 긴 스무고개가 마침내 일단락되었을 때,
나는 먼저 백기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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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변이 마렵다며 화장실에 간 사이, 친정 엄마는 밀린 설거지를 불편한 자세로 열심히 하셨다.

나는 엉거주춤 바지를 주워 입고,
“엄마, 나 소화가 안 돼서 한 바퀴 돌고 올게.”
말하고 주방을 벗어나, 조용히 현관을 나와 논길로 이어진 저수지를 찾았다.

저수지에서 시작되는 물줄기는, 제법 큰 우리 동네 하천으로 흘러든다.
어릴 적에는 시냇가, 개울물이라 부르며 물장구 치고 송사리를 잡던 곳이었다.

지금은 홍수 예방이라는 이유로 깊고 큰 하천으로 변했다.
개울 바닥은 파헤쳐지고, 시멘트와 바위로 인위적으로 꾸며졌다.
정부는 이를 ‘하천 시범 사업’이라고 불렀다.

인공의 손이 닿은 후 한동안 물고기는 보이지 않았다.
쉽게 하천으로 내려갈 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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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는 하천의 풀을 관리하지 않아, 아마존강을 연상케 했다.
겨울에는 마른 풀과 갈대가 드러누워 을씨년스러웠다.

그래도, 그것도 고향이다.
어릴 적 기억 속 개울을 더듬으며 하천을 바라보면,
밖에서 놀던 어린 시절의 우리들,
정열 가득했던 젊은 시절의 부모님이 떠오른다.

기억이 또렷해진 11살부터,
초등학생 자녀 둘을 둔 41살까지의 나와 형제들,
그때도 아줌마였고 지금도 아줌마·아저씨인 이웃들을 만날 수 있는 이곳이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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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날을 추억하며 산책을 하고 돌아오니,
외출했던 친정 아빠가 와 계셨다.

짤막하게 인사를 했다.
두 시간 전 통화할 때는 귀찮은 듯 심드렁하시던 아빠가,
날 보자 저녁 메뉴부터 논 갈 계획까지 속전속결로 정하셨다.

자꾸만 나이를 먹는 것 같던 아빠는,
만성 위축성 위염이 생각나지 않을 만큼 잘 드시고 소화도 잘 되셨다.
일이 많고 우직하게 일하시니 식사량이 많을 수밖에 없지만, 가끔 놀라곤 했다.
“아빠, 아까 두 시에 드셨잖아요. 금방 다시 식사하실 수 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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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보다 30년 어린 우리 부부는 그저 부러운 소화 능력을 바라볼 뿐이었다.
쇼파 모서리에 기우뚱 앉은 아빠는,
저녁 메뉴부터 남편을 앞세워 논 갈 계획까지 속전속결로 해결했다.

경사리 논에 도착해 차에서 내리는 아빠를,
엉거주춤 따라가는 남편을 보며 잠시 흐뭇했다.
홀로 남겨진 차 안에서, 해가지는 논으로 향하는 두 남자의 뒷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잘 나온 사진에 행복이 몽글몽글 피어오르다가도,
갑자기 쓸쓸해졌다.
‘영원한 건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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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엄마가 드시고 싶던 회를,
아빠가 가고 싶던 논에 다녀온 후 포장해,
저녁 일곱 시에 친정집 용면리로 돌아올 수 있었다.

아빠가 예상한 시간에 딱 맞았다.
“거봐, 일곱 시는 되어야 먹을 거라니까.”
맞다, 이천시는 아빠 손바닥만큼 훤했다.

늦은 저녁, 언니가 인심 좋게 숭덩숭덩 싸준 회를 조카들과 부모님과 함께 먹었다.
제철 맞은 농어를 엄마·아빠 앞접시에 연신 올려드렸다.

밤은 깊어가고, 아빠는 올 여름 휴가는 인천에, 둘째네는 어디로 가고 싶다 말씀하셨다.
덤덤히 말씀하시는데, 나는 바보처럼 노을 삼킨 논을 떠올리며 울컥했다.
왜 자꾸만 아빠가 더 늙어 보이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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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눈에는 아직도 여섯 살 큰언니가 선하다 한다.
사고로 죽을 뻔했던 순간도, 일흔세 살이 된 지금도 생생히 떠오른다고 한다.

“나도 열네 살인 조카만 보면, 다섯 살 때 나랑 논에서 긴 나무줄기로 낚시 놀이하던 때가 선해.”
맞장구치다 말고, 가슴 속 깊은 곳이 찡하게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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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나의 고향.

시간이 멈춰 있는 곳인 줄 알았는데,
이곳은… 시간이 순환하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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