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배꼽이 어때서?
바꿀 수 없는 특권을 누리는 것에 대해
"엄마, 난 왜 언니가 없어? 나도 언니가 있으면 좋겠어"
어느 날 첫째가 말을 했다.
"넌 먼저 태어났으니까, 대신 넌 동생이 있잖아~ 그리고 언니라서 좋은 점도 얼마나 많다고"
"언니는 좋은 점 없어... 힝.."
진심으로 서운해하는 눈동자를 보며 죽었다 깨어나도 절대로 만들어줄 수 없는 언니를 어찌하지 싶었다.
"근데, 넌 왜 언니가 있으면 좋겠어?"
"응~ 그럼 나를 챙겨주고 놀아주고 막 귀여워해 주잖아!"
"엄마도 얼마나 널 귀여워해 주는데..."
내 기억에서 찾아보면 엄마와 이모는 분명히 다르고, 엄마와 언니도 달랐다.
부모가 아닌 다른 누군가의 챙김을 받는 느낌을 말하는 것 같았다.
"그럼, 엄마가 언니 할까? "
"뭐? 그런 게 어딨어? 엄마는 엄마지!"
말도 안 된다며 펄쩍 뛰었다.
"아냐 놀 때는 언니라고 생각해! 언니 하자 동생아~~"
나의 논리에 배시시 웃으면 "그래 언니!"하고 답했다.
그렇게 엄마와 언니의 이중생활은 시작됐었다.
이 날 이후, 자주 언니와 엄마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면서 우리만의 룰을 만들어갔다. 그런데 그게 싫은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5살짜리 둘째였다.
"엄마, 왜 언니는 자꾸 엄마를 언니라고 불러? 엄마는 엄만데!"
도대체 이해도 안 가고 재미도 없다는 투로 말하는 둘째에게
"응, 언니도 동생이 되고 싶은가 봐. 동생이 되면 어떤 기분인지 느껴보고 싶데~ 혹시 너도 동생 말고 언니가 돼보고 싶은 적 있어?"
"아니~싫은데!"
절대로 언니는 되기 싫다는 아이였다.
물론 나도 생각은 없지만 왠지 살짝 놀려보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왜~동생 생기면 귀엽고 더 재밌게 놀수 있을 것 같은데?"
"찌러~(싫어)!"
그렇게 저녁을 먹으며 한바탕 웃고 분주하게 씻고 잘 준비를 했다.
낮잠을 조금 자서 잠이 안 온다는 아이를 토닥여주는데 아이가 갑자기 조용히 말한다.
"엄마? 배꼽을 꿰매면 안 돼?"
"응? 배꼽이 아파?"
"아니, 엄마 배꼽 말이야.. 그것 좀 꿰매면 안 되냐고?"
"내 배꼽? (내 배꼽은 잘.. 있는데..) 왜?"
"...... 동생이 나올까 봐..."
저녁부터 조그마한 아이 머릿속에는 엄마가 동생을 낳으면 어쩌지.. 하고 생각을 하고 있었나 보다.
배꼽을 꿰매기만 하면 동생이 못 나온다고 생각한 이 순수한 아이의 말..
옆에 곤히 잠든 첫째가 있었지만 난 크게 웃어버렸다.
이상하게 나는 이런 말을 들으면 눈물이 난다. 너무 귀여워서 눈물이 난다고 하면 정신이 이상한 여자라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나에게 이런 순간이 타인은 모르는 엄마 최고의 구간인가 보다.
불쑥불쑥 만나는 아이만의 흉내 낼 수 없는 상상력을 만날 때도 그렇고, 편견 없이 보는 순백의 시선을 내게 나눠주는 순간에도 그렇다.
이런 천사 같은 아이들을 내가 키우고 있다니 어제의 "힘들어 죽겠다"란 마음은 보이지 않을 만큼 저 멀리 날려버린다.
가격으로 매길 수 도 없는 순간, 하루하루를 같이 살아가고 있음이 눈물 나게 감사해진다.
엄마들은 무슨 보약이라도 먹는 걸까? 저렇게 많은 것을 신경 쓰고 해낼까? 궁금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내가 엄마가 되어보니 알 것도 같다.
엄마의 원동력은 남들은 모르게 이런 선물의 순간들을 누릴 수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순수한 때로 돌아갈 수는 없는 어른에게 주는 특권을 맘껏 누리는 사람... 그게 나다.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