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하고 귀한선물
프롤로그
가을은 풍성한 수확의 계절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조용한 이별을 준비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내 아버지는 병상에 누워 계시고, 하루하루가 작별의 순간처럼 다가온다.
평소 당연했던 것들이 이제는 더 이상 당연하지 않음을 깨닫는다.
그래서 오늘, 아버지와 함께한 소중한 하루를 기록하려 한다.
이 기억이 언젠가 내 삶의 버팀목이 되리라 믿으며.
본문
오늘 오후 2시에 정책토론회를 마치고, 4시 반쯤 아버지 병실을 찾았다.
영양제를 맞고 계신 아버지께 시골집에서 수확한 밤과 수수, 벼, 보리 사진을 보여드리며 근황을 전했다.
아버지는 사진을 보며 “우리 막내 잘했다.” 하고 미소를 지으셨다.
나는 최근 브런치에 글을 13편이나 올린 이야기도 들려드렸다.
“막내가 열심히 사는구나. 아버지가 자랑스럽다.”
그 한마디가 내 마음을 따뜻하게 적셨다.
잠시 후 오래 묻어두었던 질문을 꺼냈다.
“아버지, 어머니께 집과 땅이 많다고 속여서 중매 결혼하셨나요?”
아버지는 웃으며 조용히 답하셨다.
“땅 많다고는 했다.”
농담 같지만, 그 속에 숨은 사연이 느껴졌다.
기억이 혼미해질 때면 나는 어린 시절 이야기를 물어본다.
“아버지, 제가 어릴 땐 어땠나요?”
“준섭이는 잘생기고 모범적인 아들이었고, 순희는 공부 잘하고 독립적인 딸이었다.
우리 막내는 귀엽고 사랑스러운 딸이었다.”
그 말에 마음이 따뜻함으로 가득 찼다.
아버지는 자꾸 침대에서 내려오려 하셨다.
“죽을 수도 있고 힘들 거야.”
스스로 중얼거리는 그 말에 눈물이 흘렀다.
“아버지, 건강하게 오래 계셔 주세요.”
말하며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아버지도 눈시울을 붉히며 내 손을 잡으셨다.
“막내 사랑한다. 고맙다. 수고 많다. 넌 내 전부다. 네가 있어 행복하다.”
그 말들은 내 가슴 깊이 새겨졌다.
나는 녹음 버튼을 눌러 이 순간을 기록했다.
아버지를 웃게 하고 싶어 원숭이춤, 개다리춤을 흉내 냈다.
몸치인 내가 허둥대자 아버지는 손뼉 치며 크게 웃으셨다.
팔로 하트, 손가락 하트, 엄지 척을 보내시던 모습에 내 마음도 환해졌다.
출근길 복도 저 끝에서 개나리춤을 추던 수연이의 모습이 스쳐 갔다.
그 장난스러운 춤은 햇살처럼 기쁨을 주었고, 아버지 역시 흐뭇하게 웃으셨다.
나는 아버지의 눈썹을 다듬고 얼굴 잔털을 정리해 드렸다.
손톱을 깎고 로션을 발라드리며, 그간 받은 사랑을 조금이라도 돌려드리고 싶었다.
아버지는 정갈해진 손을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으셨다.
그날 나는 아버지께 브런치에 올린 글 이야기를 더 들려드렸다.
“아버지에 대한 글이 벌써 아홉 편이나 돼요.”
그 말씀을 듣고 아버지는 놀라신 듯 눈을 크게 뜨셨다.
“글 잘 쓰는 딸이 좋다. 나에 대한 얘기를 기록으로 남겨 고맙다. 나도 읽어보게, 큰 글씨로 뽑아다오.”
아버지의 그 말에 마음이 뭉클해졌다.
또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막내딸이 바쁜데도 날 자주 보러 오고, 옷도 챙겨주고… 고맙다.”
그 한마디에 눈물이 핑 돌았다.
다가오는 추석 이야기를 꺼내며 나는 말했다.
“아버지, 이번 추석에는 선물로 부드러운 순면 위아래 옷을 사드릴게요. 그리고 새 차로 모시고 고향집에도 다녀오자고 약속드릴게요.”
아버지는 어린아이처럼 환하게 웃으시며, 그 선물과 약속을 무척 좋아하셨다.
창밖에는 가을 낙엽이 흩날렸다.
한 잎 두 잎 떨어지는 소리에 아버지의 긴 세월이 겹쳐졌다.
풍요로운 수확의 계절이지만, 내 마음에는 낙엽처럼 쓸쓸한 감정이 내려앉는다.
그러나 나는 안다.
떨어지는 낙엽도, 기침 소리도, 작은 웃음도 결국은 그리움으로 남을 것임을.
에필로그
우리가 나눈 대화, 내가 다듬어 드린 손톱, 웃음을 터뜨리시던 모습.
이 모든 순간은 내 가슴 깊이 새겨진 소중한 기억이 되었다.
계절은 다시 돌아오겠지만, 이 가을의 하루는 다시 오지 않는다.
떨어진 낙엽 한 장에도 아버지의 온기가 담겨 있는 듯하다.
그리움은 자주 찾아오겠지만, 가장 선명한 것은 사랑의 기억이다.
평범한 하루였지만, 아버지와 나눈 웃음과 눈물은 내게 특별한 선물이 되었다.
앞으로도 이 하루를 떠올리며 아버지의 진심을 되새길 것이다.
우리 이야기는 낙엽처럼 조용히 가슴에 내려앉아, 삶의 한 페이지를 채워간다.
글 잘 쓰는 딸이 좋다. 아버지에 대한 글이 아홉 편이나 된다 하시니 놀라시며, 나에 대한 이야기들을 기록으로 남겨 고맙다고 하신다.
예전 같으면 마음에만 남고 흩어졌을 순간들이 글로 이어져 다시 살아나는 게 신기하다 하신다. 나도 읽어보게 큰 글씨로 뽑아다오 하신다.
막내딸이 바쁜데도 자주 보러 오고, 옷도 챙겨주어 늘 고맙다 하신다. 추석 선물로 아버지께 부드러운 순면 위아래 옷을 사드린다 하니 무척 좋아하셨다.
또 추석 때는 새 차로 고향집에 모시고 다녀오자 약속드리니, 아버지 얼굴에 그리움과 기대가 함께 번져나갔다. 자식과 함께하는 길이라면, 그 자체가 선물이라고 하시는 듯했다.
이 기록은 이어질 것이다.
다음 연재 예고
다음 회에는 아버지의 첫사랑 우정자 님과 함께한 이야기를 연재할 예정이다.
그 순수하고 젊었던 시절의 이야기는 또 다른 웃음과 눈물을 안겨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