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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픔, 아버지의 아픔

사랑이 남긴 자리, 시간이 지키지 못한 마음

by 최순옥
프롤로그 — 병실 문을 닫고 흘러내린 눈물

아버지를 애써 찾아뵙고 돌아오는 길, 나는 늘 울곤 한다.

작년보다 힘듦이 반은 줄었다지만, 살아 있다는 안도감 뒤편에서 아버지의 지난 삶을 떠올리면 가슴이 저렸다.

22개월째 병상에 계신 아버지.

올해 3월 초 심정지 이후, 나는 정말 최선을 다했을까.


아버지는 못줄과 소변줄의 불편함을 매일 견디셨고,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나는

‘내가 뭔가 잘못한 건 아닐까’,

‘이 고통이 혹시 내 책임은 아닐까’

하는 마음에 한참 동안 스스로를 가늠했다.


때로는 무서웠고, 죄를 짓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럼에도 나는 아버지를 찾아가는 발걸음을 멈출 수 없었다.

그 발걸음 속에는 사랑, 책임, 그리고 끝까지 지켜야 한다는 다짐이 묶여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삶과 의지 — 꺾이지 않는 마음의 근육

아버지는 15년 전 뇌경색을 겪으셨을 때도

“20년은 더 살고 싶다.”

고 말씀하셨다.

올해는 39년생. 그 연세에도 중환자실에서 손가락을 성근 하게 구부리며

“3년, 5년은 더 살고 싶다.”

고 말씀하셨다.


몸은 예전 같지 않았지만, 살고자 하는 마음은 여전히 생생했다.

나는 그 손가락 하나, 그 눈빛 하나에 모든 사랑과 희망을 담아 응답하고 싶었다.


딸의 고민 — 사랑이 클수록 무게도 깊어진다

나는 늘 내 선택을 되돌아본다.

병실 한가운데서 아버지를 바라보며

‘더 잘할 수 있었던 것은 없었을까’,

‘정말 최선을 다한 걸까’

스스로를 책망했다.

그 질문의 무게가 가슴을 눌러 숨이 막힐 때도 있었다.

때로는 죄책감에 마음이 떨리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아버지와 함께하는 순간마다 진심을 다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아버지의 작은 움직임, 미소, 손짓 하나가

내 무너진 마음을 다시 붙잡아 세웠다.

아버지와 함께 보내는 시간은 길지 않지만,

그 안에서 나는 삶의 의미, 사랑의 모양, 책임의 무게를 배워간다.

나의 갈 길은 어디일까?


폭풍우 속에서 — 2024년 3월, 나를 무너뜨린 하루


아버지가 발병한 2024년 3월 이후, 교수 면담만 100여 차례는 했다.

어느 날, 대장암이 전이된 것 같아 다시 확인해 달라 요청했을 때 교수는 무표정하게 말했다.

“나이도 많으신데… 그냥 편하게 보내드리죠. 뭘 또 검사를 합니까.”

그 말에 온몸이 무너져 내렸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저는… 다시 검사하겠습니다.”


나는 모든 자료를 챙겨 국립암센터에 접수했고,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으로 향했다.

그날은 마치 세상이 울어주는 것처럼 폭풍우가 쏟아졌다.

뒷자리에 앉은 아버지와 간병인.

백미러에 비친 아버지 얼굴을 보는 순간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파 참지 못하고 펑펑 울었다.

아버지가 들을까 봐 입술을 깨물며 목소리 없이 울음을 삼켰다.

그날의 비는 내가 대신 울지 못한 눈물을 대신 흘려주는 듯했다.


오진이 밝혀지던 순간 — 내가 아니었다면 사라졌을 진실

암센터 교수님은 내 정성스러운 기록들을 살피더니 말했다.

“따님 정성이 대단하네요. 이건 회의를 한번 열어야 합니다.”


5일 후 전화가 왔다.

“전이가 아닌 것 같습니다. 기존 병원에서 다시 검사하세요. 이상한 부분이 있습니다.”

나는 다시 기존 병원 교수에게 전이 여부 재검을 요청했다.

그리고 결과는… 전이가 아니었다.

그 순간, 온몸의 힘이 빠져나갔다.

2024년의 내 삶은 거의 내 것이 아니었다.

숨조차 조심스레 쉬며, 모든 시간을 아버지를 지키는 데 사용했다.


중환자실 교수님은 말했다.

“이런 보호자는 처음 봅니다. 정말… 대단하세요.”

하지만 나는 스스로에게 계속 묻고 있었다.

“내가 왜 이렇게까지 했을까?”

그 질문은 지금도 내 안에서 울린다.


아픔 속에서도 이어지는 사랑

그 질문의 답은 결국 하나였다.

내가 그렇게 했던 이유는, 오직 사랑이었다.

논리도 계산도 아니었다.

살리고 싶다는 마음 하나였다.

아버지의 아픔과 나의 아픔은 다르지만 결국 서로를 향해 닿아 있었다.

그 고통 속에서도 우리는 서로를 지켜보고, 서로에게서 살아갈 힘을 얻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단 하나.

이 순간을 함께하고, 아버지의 존엄과 삶을 끝까지 지켜드리는 것이다.


아버지가 앉던 의자—

그 자리는 이제 비어 있지만,

그 안에 담긴 사랑은 여전히 내 안에서 자라며 나를 지켜주고 있다.

병실 문을 나서며 쏟아지는 눈물은 단지 슬픔이 아니다.

그건 사랑이 남긴 무게,

그리고 책임이 삶을 통과할 때 흘러나오는 증거다.

아버지에게 드린 작은 선물, 큰 기쁨

그날, 일요일에 나는 아버지께 특별한 선물을 드렸다.

고급스러운 시계를 선물한 것이었다.

아버지가 한동안 시간을 확인하기 힘들어하시던 걸 알고,

조금 더 큰 글씨로 시간을 볼 수 있는 시계를 고른 것이다.

“이거 정말 좋은데?”

아버지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고, 그 미소 뒤로 작은 눈물이 맺혔다.

시계의 선명한 숫자와 고급스러운 디자인은

아버지의 손목에 유난히 잘 어울렸다.

“이렇게 예쁜 시계를 주다니… 고맙다.”

아버지와 나의 닮은 시계

그 말 한마디가 내 마음 깊은 곳을 울렸다.

또 하나의 선물,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네이비 색상의 모달 잠옷 두 벌도 함께 드렸다.

부드럽고 촉감이 좋은 모달 잠옷을 입어보시고는

“정말 편하다. 이건 내게 딱 맞는 색상이야.”

라고 하시며 행복해하셨다.

그 말 한마디에,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아버지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는 순간만큼은

세상의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감동이었다.


작가의 말 — 최순옥

이번 글에서는 아버지와 나, 두 사람의 아픔을 담담히 펼쳐보고 싶었다.

병실에서 느끼는 죄책감, 두려움, 책임감은 말로 설명하기 어렵지만

글로 써 내려가면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지고 정리되는 느낌이 든다.


사랑은 사람을 힘들게도 하지만, 그 힘듦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된다.

아버지가 내 안에 남겨 놓은 자리—

그 사랑은 시간이 지나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예고편 — 24편에서 이어질 이야기

다음 24편에서는

아버지에게 내가 ‘진짜로’ 해줄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찾아가는 여정을 담을 예정이다.


죄책감과 두려움을 넘어서,

아버지의 삶을 어떻게 지키고

그 과정에서 나라는 사람도 함께 지켜낼 수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는 시간이 될 것이다.

사랑과 책임이 다시 맞닿는 그 순간,

나는 또 어떤 마음의 진실과 마주하게 될까.

그 답을 찾아가는 여정을 다음 편에서 이어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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