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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나무 Aug 30. 2024

직업: 되고 싶은 게 많아서 1/2

N잡러, 투잡, 쓰리잡... 이젠 아주 흔한 단어가 되었다. 

여기 브런치만 봐도 직업이 딱 하나만 있는 작가님을 찾기가 더 어려운 것 같다. 

제목처럼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에 아마 가장 뭐가 많았던 건 '직업'이었던 것 같다. 


25살까지 생각했던 직업은 딱 하나였다. 

하지만 그 직업 갖는 걸 보기 좋게 실패했다. 생각해 온 직업은 하나뿐이었지만 마음 깊숙이 되고 싶었던 건 참 많았던 것 같다. 아직 내면의 나를 제대로 마주하지 못하지만 존재는 알고 있는 상태. 마음속에 있는 나는 못 만나도 마음속에 품고 있던 아이슬란드를 만나러 갔다. 지난 25년간 바라왔던 것을 26년째 해에도 원해야 하는 것은 아닐 거란 생각이 들었다. 여행하면서 한밤중에 어렵게 오로라를 만날 수 있었고 몇 초 뒤 사라질지도 모르게 찰나에 일렁이는 오로라 앞에서 간절히 떠오른 소원은 하나였다.


같이 아이슬란드 봉사활동을 했던 친구 Marco가 찍고, 사용권 허가 받은 사진.

0.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일단 직업은 차치하고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은 '가슴은 한국에 눈은 세계로'를 실천하는 사람이다. 쭉. 그리고 오늘도 바라는 바는 세계평화인 사람. 브런치 제목처럼 하고 싶은 것도 많고 변화도 많은 삶인데, 그거라도 변함이 없으니 다행이다. 내가 세계 평화를 외치는 데에 거창한 이유는 없다. 그저 거기에 내 친구가 있어서. 그렇다면 이 넓고도 뜬구름 잡는 말을 어떻게 실천하느냔 말이다.


1. 전공을 버리다.

그러니까 25살이 될 때까지 영어교육과를 졸업해 선생님이 되고 싶었고, 정말 진심으로 열심히도 했다. 1년 동안 영화 한 편 안 보고 공부해도 할 만했고, 노는 날도 없이했으니 난 내가 공부한 양이나 노력에는 하나도 부끄럼이 없다. 그게 문제였다. 너무 혹독하게 하니 잘 될 리가 없다. 그래서 2년 차엔 좀 더 너그러이 하니까 오히려 최종까지 갔지만 소수점으로 낙방. 한 번 학교에서 기간제로 근무해 보니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또 달랐다. 나랑 안 맞는 점이 자꾸 튀어나와 내 길이 맞는가 하는 의혹 또는 혹이 되었다. 혹은 자꾸만 커져 내면의 나에게까지 가서 닿았다. 


아이슬란드로 떠났다. 오로라 앞에 서면 누가 대답이라도 줄 것 같았다. 오로라 초록빛은 현실에 가려져있던 꿈을 비춰주었다. 오로라 앞에서 대답을 준 건 나 자신이었다. 몇 초만에 사라질지도 모르는 오로라 앞에서 내가 빌었던 소원은 그저 책뿐이었다. 여행자들의 여행을 도와주는 책을 내게 해달라고 비는 내 목소리에 교사라는 꿈이 들어올 틈은 하나도 없었다.


➡️ 하고 싶은 직업이 많다면 하나를 온 맘 다해 노력해 보고 비정규직으로 맛보기라도 해보면 진짜 '하고 싶은지 아닌지' 고? 스톱?을 정할 수 있는 것 같다.

 


2. 영국계 회사에서 일하고 싶어서

책을 쓰려니 영국계 회사에서 일을 해야 했다. '영국이 좋아 영국으로 떠났고 영국 캠브리지 대학에서 배운 방법으로 영어를 가르치는 저자는 현재 영국계 회사를 다니고 있다'라는 말을 저자소개에 넣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이상하게 그 문장에 꽂혔고 어디선가 읽은 것처럼 미래의 내 책에 실린 구절이 눈에 선하게 보였다. 한 단어의 거짓도 없는 진심이었다. 하지만 아이슬란드에 가있던 사이 영국계 회사 중 최고봉이라 할 수 있는 주한영국대사관 면접이 잡혀버렸고, 나는 굴러들어 온 면접 기회를 제 발로 걷어찬 멍청이가 되어있었다. 


아이슬란드에 내린 비만큼 많은 눈물을 흘리고 나니 더욱더 굳어졌다. 반드시 영국계 회사에서 일하고 마리라. 교사되는 시험은 두 번 떨어지니 시들해지고 오히려 한 번 더 봤다가 붙을까 걱정이 되어 못 봤으면서, 영국계 회사는 두 번 떨어진 후 모조리 찾아다니며 지원했다. 영국인 친구를 스카이프에 앉혀놓고 면접 연습을 했다. 모르는 영국인을 섭외해서 면접 연습을 또 했다. 반년이 걸렸고 옥스퍼드대학 한국지사에서 영국인들과 잔뜩 일할 수 있게 되었다. 


➡ 하고 싶은 게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두 번 정도 실패를 해보고 나면 그제야 내가 진짜 '하고 싶은지 아닌지'를 알 수 있는 것 같다.


With my UK-based teammates  - 5년간 원없이 영국인들이랑 일했다. 환상이 깨졌다. 깨지고 난 현실도 좋았다.

3. 작가가 되고 싶어서

영국계 회사에 왔으니 이제 워라밸도 좋겠다, 저자소개도 논리적으로 쓸 수 있겠다, 출판사 투고만 하면 될 것 같았다. 사실 책 출간 준비는 6년을 했기에 '하고 싶은 것'이 너무나도 명확했다. 출판사 투고를 약 60곳에 하고 실패해도 어떻게 고칠까만 고민했지 별로 좌절하지 않았다. 투고 방법을 바꿔서 전략 3개를 쓰니 이번엔 출판사에서 출간하자고 먼저 연락이 왔다. 메일 보내자마자 1시간 ~ 1일 내에 총 4군데에서. 전략 3개는 별 건 없고 다음과 같다.

i. 요샌 흔하지만 당시에는 좀 획기적이었던, 사진 카드뉴스 형식의 출간기획안 (요샌 안 하면 안 되는 필수다!)

ii. 출간 전-중-후 홍보 방법 10개가 포함된 출간기획서 (알아서 잘 팔릴 거란 나이브한 생각은 해본 적도 없다.)

iii. 80% 정도 완성된 원고 (송부용 원고샘플은 10%만)


나는 책 출간에 관해서만 15시간짜리 강좌를 열은 적이 있는 만큼 책을 내고 싶어서 한 것들을 여기 한문단에 다 담을 순 없다. 챕터 100개의 책을 위해 사진 100장, 영어 패턴 100개, 연습 문장 400개, 여행영어 400개, 문법 설명 100개, 여행 꿀팁 100개, 피아노 배경음악 자작곡 100곡, 그리고 부록까지 6년 치 모든 걸 남김없이 쏟아부었다. 앞으로 다신 이쪽 류의 책을 내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다 끄집어냈다. 책을 내고 나니 작가 활동이라고 불리는 강연, 인터넷 강의촬영, 독서 모임 강사, 인터뷰, 홍보 이벤트, 두 번째 & 세 번째 책 출간 등이 따라왔다.


하고 싶은 게 많은 사람은 이동 시간을 줄여야 한다. 책 출간 작업이 가장 바쁜 50일 간 회사 1분거리에 레지던스를 구했다.  

➡️  하고 싶은 게 많으면 진짜로 '하는 게' 중요하다. 일단 하면서 생각해야겠지. 고민은 그냥 걸어 다닐 때, 자기 전 침대에 누워서, 머리 감고 샤워할 때, 이럴 때 한다. 나머지 시간은 다 실천하는 데 쓴다. 조금 강하게 말해서 '하고 싶은 게 많은 자, 멀티가 안 되면 욕심 내지도 말라.'

책에 대해서 내 입으로 말하긴 그렇고, 이 리뷰가 참 마음에 들었다.



4. 미국회계사로 일하고 싶어서

온몸을 갈아서 책을 썼다. 전 세계 약 100명의 친구들의 도움을 받았다. 

외국어 분야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하지만 내 삶이 변한 건 크게 없었다. 

가끔 강연을 가고 가끔 다른 사람들에게 책 쓰기를 알려주고 내 책으로 수업을 하고. 꿈을 이뤘는데 무료했다. 기쁜 건 맞는데 책 쓸 때 뛰던 가슴이 느껴지지 않았다. 때마침 회사도 그랬다. 그토록 바라던 영국계 회사에서 일을 해보니 역시나 내가 가진 환상이 많이 부서졌다. 해외여행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내 고정관념을 깨부수어주기 때문인데, 멀리 여행 안 가도 출근하여 겪을 수 있으니 돈도 벌고 일석이조였다. (그렇다고 영국이 싫어진 건 아니었다. 환상을 걷어내고 날 것을 볼 수 있어서 더 좋았다.) 


그 와중에 나보다 나를 잘 아는 친구가 미국회계사(AICPA)를 추천해 줬다. 하루 알아보니 또 하고 싶어졌다. 그 길로 다음날 AICPA 학원을 끊고 학원 앞에 집을 구했다. 회사를 소홀히 할 마음은 전혀 없었기에 출퇴근, 학원 통원 시간을 줄이고자 집을 구한 것이었다. 그렇게 2년 뒤 합격을 하였다. (정말 고생했는데, 이렇게 한 줄로 쓰이다니, 구구절절한 합격 수기 링크라도 덧붙여본다: AIFA 국제금융회계아카데미 ) 그때 학원 선생님 중 한 분은 권오상 CPA라고 유명한 분인데, AICPA를 따고 나면 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해 모르는 게 없는 분이셨다. 그런 얘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하고 싶어졌다. 이직을 서서히 준비했다. 


➡ 하고 싶은 게 많으면 학원을 끊어보는 것도 좋은 것 같다. 학원은 재미없고, 따분한데 이걸 견딜 수 있다면? 진짜 좋아하는 거겠지.


5. 한국 대기업에서 일하고 싶어서

영국계 회사에서 이직을 해야겠다고 생각이 든 계기가 몇 개 있었다.

아주 행복해야 하는 날 출근길에 지하철에서 그만 쓰러진 것이다...


             - 다음 주에 '직업'편 2/2, 이어서 결론을 연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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