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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 인터뷰 | 히어가 리슨이 되는 순간 신경이 쓰여요

하나 하나 취향대로 물건을 고르고 오래 쓰겠다는 마음으로

7번째 물건 인터뷰이, 먼지몬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요?

이전엔 막 사고 쓰는 편이었는데 요새는 취향에 맞는 물건이나 

자주 쓸 것 같은 물건을 고민해서 고르고 오래 쓰는 사람이 된 것 같아요.


나의 물건을 소개합니다


Part 1. 향수

- 요즘 내가 푹 빠진 물건 : 향수

요새는 향수에 관심 있는데 얼마 전에 공방에 가서 한 방울 한 방울 취향에 맞춰 만든 향수에 빠져있습니다. 자기 전에도 뿌리고 나갈 때도 뿌리고 이불에도 뿌리고요. 취향을 담긴 물건은 애정하게 되는 것 같아요.


 좋아하는 향과 싫어하는 향을 알려줄 수 있나요?


어렸을 때는 플로럴 계열을 많이 좋아했어요.

보통 올리브영 같은 데서 샀었는데 나이가 들면서 취향이 변하더라구요. 

요새 좋아하는 건, 플르부아라는 브랜드의 'Morning Soil' 이라는 향이에요

제가 원래 알던 향은 아니고 지금 동생이랑 같이 살고 있는데 

그 친구가 굉장히 깔끔한 향을 좋아해서 욕실에 핸드워시로 두고 쓰고 있어요. 


하루는 손을 씻었는데 종일 손에서 그 향이 났는데 너무 좋은 거예요. 

우드, 화이트 머스크 향이 많이 섞였더라고요. 

이런 것도 괜찮구나 싶어서 친구들이랑 향수 공방에 향수를 만들러 갔어요. 

취향껏 만들었는데 다들 취향이 완전 달라서 신기하기도 하고.


내가 어떤 향을 좋아하는지 사실 잘 모르잖아요. 

근데 서른 몇 가지의 향을 하나하나 맡으니 확실히 호불호를 알 수 있어서 좋았어요. 

좋아하는 향은 콕 집어서 말하기 좀 그렇지만 화이트 머스크가 제일 나은 것 같고, 

싫어하는 향은... 냄새라고 해야 되나 비린내 같은 거... 피비린내를 별로 안 좋아해요. 고기를 먹다가도 뭔가 그 맛이 좀 비리다 싶으면 싫어해요. 


 이 향수는 어디서 만들었나요?

성수에 있는 '뤼미에르'라는 곳이에요. 


 그곳에 함께 간 친구들은 어떤 친구들인가요?

대학교 때부터 계속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이에요. 친구들이랑 이것저것 만들러 다니곤 해요. 


작년에는 방탈출 카페에 꽂혀 있었어요. 

만나기만 하면 방탈출을 해서 작년까지 거의 50개 넘게 다녔었는데 좀 지겨워져서.


그전에도 다 같이 모여서 DIY를 만들기도 했구요.

지점토 같은 걸로 인센스 스틱이나 마블링 스틱도 만들고, 그런 걸 되게 좋아하는 친구들입니다.



향수를 만들었다는 건 향이 나에게 주는 가치가 있었다는 건데, 오감 중에서 후각은 몇 번째로 나에게 중요한 감각인가요? 그리고 평소에도 향에 민감한 편인가요?


되게 신선한 질문이네요. 생각도 못했어요. 

돌이켜보니까 오늘 가져온 물건이 다 감각과 관련된 거네요. 어렸을 때는 감각적인 것에 관심이 덜 했던 것 같은데 성인이 되고 나서는 그런 여유가 생긴 것 같아요. 


일단 저는 시각이 제일 중요하구요. 다음은 청각이랑 후각인데 

후각이 없으면 조금 더 무미건조할 것 같아서 후각을 2위로 할게요. 


그리고 향에 민감한 편인데, 어쩔 수 없이 맡아지는 냄새들도 있잖아요. 

그럴 땐 민감하지만 그냥 받아들여요.



 혹시 몸에 잔향이 잘 남는 편인가요?

별로 안 남는 편이에요. 사실 몇 년 전만 해도 향에 예민해서 향수를 안 뿌렸었는데,

어차피 전 향수가 아무리 길어봐야 4시간이면 다 날아가요.



 '취향이 담긴 물건을 애정한다'고 하셨는데 지금 살고 있는 방도 먼지몬의 취향으로 가득 차 있나요?

서울 자취방은 저의 숙소 같은 느낌이고, 대부분 본가에서 지내고 있어요.

본가로 이사 올 때 오랜만에 제 방이 생겼거든요, 7년간 없다가. 

부모님께서 이번에는 네가 원하는 대로 꾸며보라고 가구도 사주셨어요. 


몇 년 전부터 갑자기 원목 가구가 너무 예쁜 거예요.  

'빨간머리앤'이라는 미드에서 빈티지 원목 가구들을 보고 너무 예뻐서 

그런 류로 찾아서 방을 꾸며봤는데 너무 행복하더라고요. 


흰색 방에 진한 색 원목을 놓았는데, 어렸을 때부터 방을 그렇게 많이 꾸미지 못했어서

낯설기도 했지만 지금은 너무 좋은 것 같아요.



 제가 집순이다 보니까 향수를 두고 계속 집 얘기만 하게 되네요 (웃음)

먼지몬에게 집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집이란... 너무 갖고 싶은 것? 그러니까 자가 (웃음)

저는 대학생 때부터 꾸밀 수 있는 내 방이 너무 갖고 싶었거든요. 

네이버 부동산 인테리어 코너가 있어요. 하루에 2~3시간씩 그것만 보고 있기도 하고.

어느 날엔 '이런 집을 지어야지' 구상도 해보고. 


대학교 때 버킷리스트 중에 하나가 건축학과 친구를 만나기였어요.

'그래서 이 친구에게 나중에 내 집을 맡겨야지' 이런 생각도 했는데 결국 못 사귀었고요. 

어쨌든 지금도 너무 갖고 싶은? 점점 소박해지고 현실적으로 변하고 있긴 하지만

아직도 그런 생각을 많이 갖고 있어요.


— 그럼 다시 향수로 돌아와서 원래부터 향수를 좀 썼었나요?

대학생 때 쓰다가 암흑기를 거쳐서 요새 다시 쓰고 있어요.


 아침에 일어날 때 말고 또 언제 향수를 사용하시나요?

기분이 좋으면 일하러 갈 때도 뿌리기도 하고, 외출할 때 많이 뿌리는 것 같아요. 향이 좋으니까. 



 나와 가장 잘 어울리는 향을 정의한다면 무엇인가요?

진짜 어려운 것 같아요. 약간 뮤추얼한 향이 저랑 어울릴 것 같았는데 

어제 친구가 이 향을 맡고선 "널 닮아서 달달한 향이네"라고 하더라구요. 

지금 맡아보니까 달달한 것 같긴 한데, 그래도 저에게 어떤 향이 어울리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어요.


 향수에 어떤 비율로 커스텀이 들어갔나요?

바질, 프렌치로즈, 로즈마리, 샌달우드 이렇게 들어가 있어요.

보통 자기가 무슨 향을 좋아하는지 알아도 그걸 조합하기 힘들잖아요. 

조향사분들이 가운 입고 한 명씩 담당해주는데 '이런 향을 좋아한다. 평소에 이런 향을 맡고 싶다' 말씀드리면 향을 추천해주시면서 조합을 해주고 또 어떤 걸 더 넣어보고 싶냐고 물어보시면서 조절해가거든요.


그게 좀 나에게 맞는 향을 골라가는 느낌이었어요.

거기에 있는 향들들을 하나씩 다 맡아보게 하거든요. 그래서 탑노트, 미들 노트, 베이스 노트 한 30가지를 다 맡아보고 마음에 드는 것들을 노트별로 적어두면 그중에서 어울리는 향들끼리 집어주셔서 저는 편하게 방울만 떨어뜨려서 만들었어요.


 추천해 주고 싶은 향수나 브랜드가 있다면요?

브랜드는 잘 모르지만, 아까 말씀드렸던 플르부아의 'Morning Soil'을 추천드리고 싶은데 

호불호가 있을 것 같아요. 아침의 흙 같은 느낌이 나는데, 생각보다 향이 오래 남아요.



 만약 내가 향수 브랜드를 만든다면 어떤 의미를 담는 브랜드가 될까요?

보통 좋은 장소에 가면 향으로 기억될 때가 있잖아요. 

예를 들어서 산림욕, 깊은 숲에 들어가면 향이 너무 좋고

교보문고도 향으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래서 저라면 제가 좋아했던 장소들을 향으로 만들어서 브랜드로 만들고 싶을 것 같아요.


이번 여름에 갔던 호텔 중에 하나가 명동에 있는 호텔 스위트라는 데였거든요. 

진짜 좋았어요. 객실에 들어가자마자 향이 너무 좋아서 기억에 남았어요. 


 커스텀한 향수가 하나밖에 없는 향수라서 다 쓰고 나면 아쉬울 것 같아요. 

다음에도 커스텀 향수로 만들어 사용할 의향이 있으신가요?


향이 너무 만족스러웠어서 어떻게 만들었는지 비율이 적혀 있는 종이 따라서 똑같이 만들 수도 있고 

아니면 아마 1~2년 뒤일 것 같은데, 또 취향이 달라져 있을 수 있잖아요. 

그때 가봐야 알 것 같긴 해요.


 향수로만 발현되지 않더라도 오감을 충족감을 느끼는 활동이나 경험들을 많이 가지고 있네요. 

향수를 뿌릴 때는 보통 어디에 뿌리나요?


생각보다 '이런 데 뿌리면 오염되기 쉽다' 하는 말들이 많잖아요.

오염되지 않으면서 맥박이 많이 뛰는 곳에 하면 좋다고 하는데 저는 그냥 이렇게 손목이랑 목에 뿌려요.


 혹시 커스텀 향수를 지인한테 선물할 생각도 있나요?

그건 진짜 어려울 것 같아요. 한 방울씩 맡아보면서 고민해야 하는데, 웬만큼 그 사람의 취향을 아는 게 아니면 어려울 것 같아요. 






 자취 생활 동안 발견한 나의 취미는 어떤 것이 있었어요?


취미.. 제가 사실 한 가지를 오래 못하는 편이라 원데이 클래스는 되게 좋아했었어요. 친구들이랑 원데이 클래스를 많이 다녔던 것 같아요. 


물을 먹여서 만드는 마크라메 공예, 라탄 공예도 하고. 근데 요새는 생각보다 많이 안 하게 되네요. 


그래도 원데이 클래스가 가장 최근 취미이긴 해요. 또 요새는 영화 보는 데 좀 빠져 있기도 하고, 코딩도 만드는 거잖아요. 

뭔가 창작하는 게 하나 생겨서 그런지 좀 다른 걸 창작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도 하구요.







 원데이 클래스 중에 가장 재미있었던 건 뭐였어요?


의외로 기억에 남는 것은 클라이밍. 사실 원데이라기보다는 친구가 원데이 클래스 선생님처럼 혹독하게 스파르타식으로 가르쳐줬는데 레벨을 깨나가는 즐거움이 있더라고요. 

다들 열정적으로 벽에 달라붙어서 찍고 올라가는데 뭔가 나는 그런 열정이 없어. (웃음)


하지만 그 공간에 있으면 약간 옮은 것 같은? 나도 모르게 채찍질당하면서 하다 보니까 

문득 그 단계 단계를 깨나가는 그 기분이 너무 좋더라고요. 

"내가 이걸 한다고?" 하는 그런 성취감 때문에. 원래 몸 쓰는 것도 별로 안 좋아하는데 

나도 이런 걸 좋아할 수 있구나, 알게 됐어요. 그래서 원데이 클래스가 좋은 것 같아요. 

이것저것 다양하게 경험하면서 나에 대해서 몰랐던 걸 알게 되니까.



 '예전에는 물건을 막 사고 쓰는 편이었는데 요즘은 취향을 고민해서 고르고 오래 쓰게 됐다' 고 적어주셨어요. 이런 변화는 어디에서 왔다고 생각하나요?


저는 사실 물건에 애착이 큰 편이 아니라서 인터뷰 주제를 듣고 많이 고민했었거든요. 근데 말을 하다 보니까 하나둘씩 나에게 의미 있는 다른 물건들도 떠오르네요이전에는 습관이 안 되어서 그랬을 수도 있고 물건이라는 게 별다른 지위를 차지하고 있지 않았는데, 대학교 졸업하고 회사 2년 차쯤부터 여유가 조금씩 생기다 보니 취미 활동도 하고 나에 대해 더 알아보고 싶은 그런 기분이 들었나 봐요. 


어렸을 때는 스포츠도 많이 안 했는데 요즘은 겨울에는 스키를 타러 가고, 여름에는 수영을 하러 가는 취미를 가진 사람들과 같이 어울리다 보니까 생전 처음 스키를 타보고 볼링도 처음 쳐보고 너무 재미있어요. 물론 0점 퍼레이드이긴 했지만 (웃음) 뭔가 그렇게 하나둘씩 발견해 가는 게 너무 재밌어서 점점 관심이 많이 생겼던 것 같아요. 내 취향은 뭘까 난 뭘 좋아할까 이런 것들에.




Part 2. 뱅앤올룹슨 이어폰


 - 평소 제일 많이 사용하는 물건 : 뱅앤올룹슨 무선이어폰

원래 음향 기기에 대해 관심이 없었는데 생각보다 제게 큰 영향을 주더라구요. 이전 회사를 다닐 때 심적으로 힘들었던 때가 있었어요. 매일매일 터지는 이슈들에 대응하기 벅차고 어딘가로 도망가고 싶어질 때였는데요. 오롯이 집중하고 싶어서 소니 무선 헤드셋을 구매했었어요. 이전엔 그 정도 가격대의 헤드셋을 산적이 없어 주저했는데, 홍대 청음샵에서 한번 헤드셋을 쓰는 순간 세상에 나 혼자 있는 기분이 너무 맘에 들어 그 자리에서 구매했습니다. 그 후로 회사에서 없어서는 안 될 물건이 되어버렸어요. 적막감이 큰 안정감을 주더라구요. 

멘탈이 쿠크다스가 될 때마다 끼다 보니 버릇이 되었습니다. 이제 헤드셋 없이 살 수 없게 되었는데, 코트와는 어울리지 않아 추가로 청음샵에 다시 가서 덥석 구매한 게 뱅앤올룹슨 이어폰이에요. 사장님이 꺼내주셨을 때의 설렘이 아직도 느껴지는 것 같아요. 약간 사치에 가까운 쇼핑이었지만, 물리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사람들에게 치일 때 섬세한 사운드를 듣고 있으면 힐링을 넘어 황홀하기까지 할 때가 있어요.


 코트에 어울리지 않아서 헤드폰에서 이어폰으로 넘어오게 되었다니 이유가 너무 귀여워요. 이 이어폰을 얘기하기 위해서는 헤드폰 이야기를 꼭 해야 한다고 하셨는데요.


저는 에어팟을 처음에 접했을 때 '이어폰이 9만 원짜리라니 미쳤다.' 이런 생각을 하던 사람 중에 하나였거든요. 근데 전에 회사를 다닐 때 인상 깊었던 사건이 있었어요. 제가 회사에서 일을 할 때 모두와 업무가 연결된 역할이었거든요.

그래서 다들 매일같이 '먼지 님, 먼지 님' 부르시는 거예요. 


그거 아세요? 뭐 하나 터지면 갑자기 여러 명이 저를 둘러싸고 이슈이야기를 하면 공황 상태가 올 것만 같은 그런 기분. 아무도 날 안 불렀으면 좋겠고 내 자리가 구석지였으면 좋겠고. 근데 그때 저희 건물에 시도 때도 없이 화재경보기가 울릴 때가 있었는데 소니 헤드셋을 낀 사람이 화재경보기가 울렸는데도 모르고 일을 하고 있는 거예요.


그걸 보고 너무 인상 깊어서 몇 번 빌려 쓰기도 했어요. 그렇게 극심한 스트레스 달고 살다가, 나도 '날 부를 때 모르는 척하고 싶다.' 이런 마음이 사실 좀 더 커지던 어느 날 청음샵에 가서 들어보고 샀는데 확실히 신세계이긴 했어요. 가끔 길 가면서 걸을 때 헤드셋을 끼고 다니면 좀 위험할 정도로요.


공간 음향이라는 게 있잖아요. 전소연의 삠삠이라는 노래는 뒤에서 스케이트를 타는 소리가 나오면서 시작하거든요. 그걸 들을 때 '누가 오나?' 하면서 뒤를 돌아봤는데 아무도 없는 거예요. 소리가 그 정도로 리얼했는데 회사라는 장소가 이전과는 다르게 보이더라고요. 


장소는 나의 의미가 덧붙여진 공간인건데 회사가 그전까지 너무 스트레스를 받는 곳이었다면, 헤드셋을 낄 때는 조금 더 견딜 만한 공간으로 바뀌는 느낌이었어요. 남의 소리 안 듣고 온전히 나에게 집중할 수 있고. 그렇게 듣다 보니 이제 음질이 안 좋은 이어폰은 낄 수가 없는 거예요. 



이게 이렇게 좋구나 하면서 새로운 취향을 알게 된 거죠.

이전에는 저에게 음향기기라는 이미지가 강했다면 이제는 정말 취향이자 말 그대로 파트너가 된 것 같아요.

이 무선 이어폰도 청음샵에 가서 샀는데 사장님이 트레이에 뱅엔 올룹순 이어폰을 쓱 얹어 오시더니, 딸깍 빼서 주셨는데 모양도 고급스럽고 너무 예쁘니까 홀린 듯이 귀에 껴봤어요.

음질이 너무 좋은 거예요. 


근데 이게 10만 원 정도 더 비쌌거든요. 

사실 그 정도의 예산이 아니었는데 그냥 홀리듯이 끼고 너무 만족스러우니까 이 정도는 투자할 수 있지 않나 싶었어요. 그래서 그 자리에서 바로 샀는데 뭔가 이걸 끼고 있으면 호화롭다는 그런 기분이 드는, 정말 온전히 내 취향 같고 음역대가 풍부하다 보니까 더 감각적으로 들려서 좋아요.


 오 좋네요 혹시 들어봐도 될까요?

연결해드릴게요. 혹시 좋아하는 노래가 뭐예요? 


 좋아하는 노래 요즘 전소미님의 패스트 포워드, 신곡이에요. 

잠깐만요. 어라.. 뭔가 아침에 충전 몇 번 했는데 충전이 안되어있네요.

이게 사실 소프트웨어적으로는 좀 부족한데 음질이 너무 좋아서. 뱅앤올룹슨이 저도 몰랐는데 음향 기기 쪽에서는 좀 유명하다고 하더라고요.



 그럼 충전하는 동안 다음 질문 드릴게요. 가끔 노래를 듣다 보면 위로를 얻을 때가 많은데 이 이어폰으로 가장 많이 들은 노래가 있다면요? 


음악은 좀 부끄럽네요. 

너무 밝은 것보다는 어두침침한 노래 좋아해요.

빌리 아일리시의 ‘idontwannabeyouanymore’ 맨날 듣구요. ‘Six Feet Under’ 나 최근에 새로 나온 노래인 ‘What Was I made For?’ 라는 곡도 좋아해요. 한창 좋아했을 때는 빌리 아일리시 노래를 듣는데 눈물이 나는 거예요.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그때 힘들었었나, 듣는데 부정적인 감정을 담아서 부른 노래에 공감해서 눈물이 난 건지 모르겠는데. 이 친구가 오토튠처럼 목소리를 내는데 그게 너무 좋아서 진짜 질릴 때까지 많이 들었어요.


 사람들한테 치일 때 꼭 듣는 노래가 있는지가 궁금해요. 

요새 너무 평화로워서 그렇지 않은데 빌리 아일리시 말고도 되게 좋아했던 게 사카모토 류이치 플레이리스트 중에 ‘내가 사랑한 류이치사카모토의 음악’을 너무 좋아해요.

말하다 보니까 우울한 노래를 되게 좋아하는 것 같아요.


 한 노래에 꽂히면 좀 질릴 때까지 노래 듣는 편인가요?

좀 덜 질리는 편인 것 같긴 해요. 

질리려면 한 달 내내 그것만 들을 때도 있고, 근데 빌리 아일리시는 아직도 안 질리는 것 같아요. 

왜 그랬지? 작업할 때 크게 안 거슬려서 그런가 봐요. 


 집에 있을 때도 노래를 많이 듣나요?

제가 별로 노래를 많이 듣는 타입이 아니거든요. 집에서도 별로 듣는 편이 아니고 사실 향도 그렇게..

그러니까 뭔가 감각되어버리면 너무 신경에 거슬리니까, 안 듣고 안 맡고.

무색무취 이런 편인데. 또 음악은 틀어놓으면 내 정서가 거기에 따라가니까 잘 안 듣는 편이거든요.


 음악을 들으면 눈물을 흘릴 정도로 감각이 예민하니까 오히려 통제를 하려고 하는 것 같기도 해요.


진짜 별로 안 좋아해요. 

동생이 클래식을 좋아하거든요. 

구글 홈 미니가 있는데 걔한테 가끔 밥 먹으면서 비발디 사계를 틀어달라고 하고, 녹턴을 틀기도 하기도 하는데 굉장히 우아한 기분이 들어요. 근데 밥 먹는데 우아한 음악이 흘러도 되나 하는 생각도 들고. 그러니까 각각의 때에 맞는 정서가 있는데 그게 음악으로 덮이는 게.. 아직 잘 모르겠어요. 근데 저녁에 아무것도 안 할 때 그냥 핸드폰 할 때 들리면 되게 기분 좋긴 하더라고요.


 노래는 주로 언제 듣는 편인가요?


일할 때도 좀 들었고 근데 많이 들으면 귀도 아프고 하다 보니까 지겹기도 하고

뭐랄까 집중도 약간 종류가 다르잖아요.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집중과 들으면 안 되는 집중, 그래서 들어도 상관없을 때만 듣는 편이긴 해요. 

말하다 보니까 많이 듣는 건 아닌 것 같네요. 




 노래를 듣는 걸 좋아하지만 자주 듣지는 않는군요

모든 순간에 음악에서 정서를 얻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런 걸 듣다 보면 집중이 깨질 때가 있어서 저도 무언가를 시작할 땐 음악을 끄는 것 같아요. 


그런가 봐요. 제가 영화 같은 데에서 울어라 하면 울고 그런 타입이거든요. 

근데 그게 너무 피곤하잖아요. 피곤하니까 잘 안 하고 싶은 게 있어요.

사람이 드라마 좋아하고 영화 좋아해도 매일 틀어놓지는 않잖아요. 뭔가 그런 거랑 비슷한 느낌인 것 같아요. 


— 들리는 소리를 듣는 건 괜찮은데 내가 직접 내 귀에 꽂아 넣는 소리와 함께 뭔가를 병행하는 게 어렵더라구요.  먼지몬도 자연스럽게 들리는 소리를 듣는 것에 더 흥미가 있는 것 같아요.


맞아요. 리슨(listen), 히어(hear) 구분하잖아요. 약간 그런 의미인 것 같아요. 

그냥 히어는 상관없는데 리슨이 되기 시작하면 막 신경이 쓰이잖아요.


— 매일 음악을 들으면 귀가 감각을 잘 못하는 느낌을 받아요. 한 3일 정도 에어팟을 안 끼다가 갑자기 노래를 들을 때 내가 좋아하는 노래가 나오면 너무 좋거든요. 오히려 뜸하게 노래를 들을수록 더 깊게 감각을 할 수 있더라구요.


맞아요, 사실 요새는 더군다나 많이 듣지 않는 편이거든요. 

왜냐하면 여름에 폭염이거나 폭우일 때 밖에 잘 안 나가다 보니까 집순이가 되어 버렸더라고요. 

그래도 최근에는 영화를 많이 봤어요. 영화에 나오는 음향들이 엄청 인상 깊었었어요.


 어떤 경우였어요?

영화 '오펜하이머'에서 음악이 엄청 중요한 건 아니었는데 신기하게 사운드를 썼더라구요. 

그러니까 소리를 쓸 거라고 생각한 부분에서 안 쓰고, 안 쓸 거라고 생각하는 곳에선 쓰고. 철저히 오펜하이머 관점에서의 그런... 폭탄이 터질 때 아예 소리를 없앴잖아요. 


그게 오히려 먹먹했을 때의 감각을 느끼게 하는 건가 싶어서, 오히려 비움으로써 채우려고 하는 게 있잖아요. 그래서 진짜 천재다 싶었어요. 그 외에도 소리들이 있고 없고가 영화를 볼 때 크게 느껴져서 사운드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회사에서 힘들었을 때 외부 소음으로부터 차단의 용도로 사용했었잖아요. 

지금도 그런 용도로 사용을 하고 있나요?


그때도 정서적으로 힘들었을 때 한두 달 이외에는 그런 의미까지는 아니었던 것 같기도 해요. 

보통 사무실에서 헤드폰을 쓰고 있는 게 별로 좋은 건 아니잖아요. 부르는데 못 듣고.

어쨌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힘드니까 어찌 됐든 쓸 거야' 이런 마음으로 구매해서 썼던 거 같아요. 

그치만 사람이 계속 힘들지는 않으니까, 그때 이후에는 그런 의미가 옅어졌던 거 같아요. 


 처음 봤을 때 케이스가 되게 특이하다고 생각했거든요, 케이스도 약간 금빛인데. 흔히들 에어팟이랑 버즈를 많이 듣잖아요. 이 둘과는 다른 이 이어폰만의 장점을 이야기해주신다면?


얘는 소프트웨어적으로는 생각보다 별로예요. 소니는 막 이것저것 기능이 뭔가 많잖아요. 

물론 제가 기계치라서 잘 활용을 못하기도 하는데, 어쨌든 얘는 거의 그런 게 없어서 '음향, 음질' 하나밖에 없어요. 심지어 사람들이 많은 곳에 가면 끊기는데 그렇게 화가 날 수가 없어요. 네 음향밖에 없어요. (웃음)


 장점을 말해달라고 했지만 단점만을 (웃음). 하지만 그 장점이 다른 단점들을 상쇄할만하네요.

근데 사실 제가 애초에 이어폰에 관심이 별로 없었어서 둘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정말 한 번 업그레이드되었던 음질을 포기하기란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이제 충전됐을 것 같은데 들려드릴게요.



 음질이 너무 좋네요. 만약 이 물건이 없어진다면 대체할 물건은 헤드셋인가요?

헤드셋 밖에 없긴 한데, 헤드셋은 무겁고 땀 차고 코트랑 어울리진 않아서 없어진다면 슬플 것 같아요.

저 진짜 무선 이어폰 많이 잃어버렸거든요. 한 4번을 잃어버렸을 거예요. 

제가 물건을 별로 신경 안 쓴다고 했잖아요. 근데 어쩜 얘는 사고 나서 극도로 신경을 많이 써서 잃어버리지 않고 1년을 버틴 거예요. 


 그제 인터뷰를 했던 분이 스피커를 가져왔었어요. 먼지몬은 이어폰을 가져왔잖아요. 

근데 둘이 물건을 선택한 이유가 너무 달라요. 그분은 스피커를 '음악을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어서' 듣는대요혼자 듣는 것보다 이 시간에 맞는 노래를 함께 듣고 싶어서.


근데 먼지몬의 이유도 또 너무 다르게 멋진 게 '나만의 세계에서 나를 고요하게 만들고 싶어서'잖아요.

음악이라는 동일한 주제인데 그 방식과 목적이 너무 달라서 신기했어요.


저는 너무 어려울 것 같아요. 

안 그래도 비슷한 경향의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 집에 가게 되면, 바로 스피커를 켜주고 원하는 노래를 자유롭게 들으라고 하더라구요. 근데 저는 듣고 싶은 노래가 딱히 없는 편이라 그런 상황이 낯설기도 하고. 보통 제가 선곡을 많이 하지는 않아요. 그게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저는 사실 플레이 리스트를 공유하라고 하면 약간 부끄러울 것 같기도 해요.



— 이어폰이 나의 고요한 세계를 만들어주는 방식이었는데 이외에도 나만의 차분해지는 방법이나 루틴 같은 게 있나요?


집중하기 위해서 노력했던 때도 있고, 너무 우울해지지 않기 위해 노력했던 때도 있어요. 사실 기분이 들뜨면 좋아하는 편이거든요. 


술을 즐기는 것도, 좋아하는 사람들과 유쾌한 분위기에서 함께 하면 저도 즐거워지기 때문이에요. 오히려 에너지가 떨어지거나 너무 가라앉지 않기 위해서 많이 노력하는 편인 것 같긴 해요.


내 생각에 잠기고 계속 혼자서 고민하다 보면, 잡생각이 너무 많이 들어올 때가 있는데, 그렇게 내면에 깊이 파고드는 게 저한테는 좋지 않더라구요.


사실 개인이 얼마나 심오한 자기 세계를 이루고 있겠어요,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하는데. 그래서 다른 사람들과 만나는 경험과 균형 있게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 것 같아요. 혼자 가라앉고 있으면 별로 좋지 않잖아요. 




답이 나오지 않는다면 아무 생각 없이 고민을 좀 덜 하고 불안을 좀 줄이려고 하는 것도 좋은 것 같아요.

기분이 좋지 않을 때 이전에는 책을 읽거나 다른 사람 이야기에서 해답을 찾으려고 했다면 요새는 '내가 호르몬이 약간 요동칠 시기인가?' 아니면 '내가 충동성을 조절하지 못하는 상태인가? 운동을 언제 했더라' 이런 생각을 좀 더 하게 돼요.


어차피 정신은 육체에 지배되고 호르몬의 영향을 너무 많이 받으니까 그런 쪽에 집중하게 되었어요.


 우리가 객관적이라고 생각하는 행동들이 나중에 돌이켜 보면 너무나 이성적이지 못하고 나의 컨디션에 의해서 발생된 사건일 때가 많죠. 마지막으로 사람들이 이 인터뷰를 보고 먼지몬을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했으면 좋겠나요?


이제 좀 걱정이 돼요.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해서 (웃음)



저는 20대 중반 때 갑자기 크게 느낀 적이 있어요. 

내가 생각하는 나랑 실제의 내가 약간 좀 많이 다를 수 있겠구나. 

그럼 나는 정말 어떤 사람일까, 아직도 잘 모르겠네요.


아직 저도 제 자신을 어떤 사람으로 정의해야 될지 모르겠지만 요새 느끼기로는 생각보다 예민한 것 같고, 생각보다 엄청 그렇게 차분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방방 뜨는 것 같지도 않고. 그냥 어떤 사람으로 정해야 될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이걸 보고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인 것 같다'라고 느끼실 그런 감정들이 오히려 더 궁금해요.


 여기까지 긴 긴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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